Monthly Archives: September 2003

4년차 아줌마

수요일 오후..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잠시 쉬면서 영어학원 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월요일에 있었던 첫시간은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대만에서 30년 전에 이민온 아줌마 선생님이 자기 처음에 왔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면서 앞으로 잘 해보자고.. 선생님이 둘인데 나머지 한 남자 선생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게 생겼다.. 느물느물한 타입.. –;;; 첫 수업이라 각자 자기 소개들 하고 그러다 왔는데, 오늘 수업도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어제가 우리가 결혼한 지 3년이 되는 날이었다. 마침 남편이 일 때문에 사람들을 만날 일이 있어 간단하게 커피랑 도넛을 먹으면서 축하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아주 긴 시간이 지난 것 같기도 하고, 벌써 그렇게 되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암튼, 앞으로도 지금처럼 잘 지내기를 바란다. 남편은 뭔가 외식이라도 거하게 하자고 하고 있지만 어제는 약속 때문에, 그리고 오늘은 학원가는 날이라 그냥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게다가 낮에 커피숍을 경영하시는 작은 슈나우저 비니의 엄마가 비니 발톱 깎으러 오면서 시나몬 빵을 구워 오셔서 먹었더니 아직도 배가 빵빵…)

이제 밴쿠버도 슬슬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22일이 “가을의 첫날”이라는데.. (이 나라 식으로의 입추 정도 되나보다) 그렇게나 비가 안 오더니 얼마 전부터 거의 매일 비가 내리고 있다. 바람도 정말 차가워서 아침 저녁으로는 플리스 상의를 입어도 추운 느낌이다. 언제인가부터 여름보다 겨울을 더 좋아하게 되어서(왠지.. 따뜻한 옷을 입고 차를 마시면서 창 밖을 보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이 곳의 우울하다는 기나긴 겨울이 어떨지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4시도 되기 전에 어두워지는 건 별로 재미없는 일일 것 같다..

날씨가 추워지니까 큰 개들이 많이 안 온다. 덕분에 힘든 일은 많이 줄고 대신 작은 개들이 전보다 좀 늘어나서 다행이다. 은정이의 미용 솜씨가 꽤 괜찮은지 왔던 사람들은 계속 오는 편이다. 가을부터는 미용 일이 좀 준다는데, 우린 어떨지 모르겠다.

암튼, 여기 살면 신기하게도 마음은 편하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다들 한국에 있을 때보다 돈은 없지만 마음은 편하다고 한다. 우리도 그런 것 같다. 별로 걱정할 일도 많지 않고.. 총격 사건등의 강력범죄가 종종 일어나긴 하지만, 그래도 뉴스를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한가한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주요 뉴스는 마리화나 합법화, 마약을 안전하게 주사할 수 있는 시설 마련(차라리 나은 것 같다. 몰래 마약을 주사하다가 에이즈가 감염되거나 하는 것보다는…)이더니 어제는 어떤 사람이 기르던 치타가 도망갔다나..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리포터가 직접 그 자리로 가서 치타가 아직 안 나타났다고 보도를 하고 있다. 앵커는 낄낄 웃으면서 몸조심하라고 농담을 던지고 있고.. 아무튼 아직은 한가한 도시다. 치타는 잘 뛰니까 여기까지 와서 딸기 잡아가지 못하게 조심이나 해야겠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