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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의 찬 바람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시간이 너무 빨라서 그 뒷모습을 어이없이 바라만 보고 있는 느낌이다. 하긴, 뭐든지 상대적인 법이니까, 어쩌면 시간은 원래 빨랐었는데 어릴 때는 지금보다 길게 느껴졌던 건지도 모르지. 아무튼, 밴쿠버의 겨울은 낮이 짧아서 하루하루가 더 금방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침 6시나 늦어도 7시면 눈이 반짝 떠지던 어설픈 아침형 인간이었던 나지만 결혼 후에는 점차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쪽으로 바뀌어서 9시나 때로는 10시까지도 자곤 한다. 밤에 남편과 함께 영화를 본다던가 얘기를 하거나 하다 보면 12시 전에 자는 날이 별로 없어서인 것 같다. 물론 불규칙한 출근시간도 한몫 하겠지. 그래서 조금 있다 보면 오후, 그리고 또 밤이 온다.

연말이 가까워오니까 뭔가 좀 마음이 어수선하다. 마음 속으로 뭔가 좀 설렁설렁 찬 바람이 들어온다고나 할까? 회색 하늘과, 추워지면서 산책 나가길 거부하는 딸기(옷을 입히려고 하면 이불 속이나 소파 위로 도망가 동그랗게 똬리를 틀고 숨는다. 그래 봤자 결국 질질 끌려나가지만. 나가서도 집 쪽으로만 열심히 걸어오고 방향을 바꾸면 꼼짝도 않고 입 내밀며 시위..), 그리고 4시 반이면 깜깜해지는 긴 저녁이 마음 속의 찬 바람을 더 실감나게 해준다. 물론 겨울만의 즐거움이 있긴 하다. 난방을 따뜻하게 틀어놓고 차를 만들어 과자라도 오물거리면서 책을 읽거나 이렇게 글을 쓰거나 음악을 듣거나… 혼자서도 잘 노는 편인 나는 이렇게 보내는 하루가 심심하지 않고 즐겁다. (많은 밴쿠버 사람들이 그렇게 겨울을 지내는 것 같다. 도서관에서 일하다 보면 정말 책을 많이들도 빌려간다. 물론 제철 만난 듯이 스키를 타러 다니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 체질은 아닌 것 같고.) 그렇지만 찬 바람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속에서 윙윙거린다.

남편도 마음에 찬 바람이 부는가 보다. 요즘 우리가 밖에서 저녁을 먹는 일이 잦아진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 여기선 밖에서 먹을게 없어 하고 투덜거리는 일도 더 잦아진다.

한국을 완전히 떠난 지 3년이 되는 겨울, 가족들이 많이 보고 싶고 입에 맞는 먹거리들과 가끔씩 만나 의미 없는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으며 깔깔거리던 친구들이 많이 그립다.
하지만 냉정하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가 생각해보면.. 그래도 여기가 우리에게 더 잘 맞는 것 같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람이 살면서 100% 행복할 수는 없는 것 같다. 하나를 쥐려면 손에 있는 다른 것을 놓아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겠지. 오늘도 몇 년 전 겨울밤, 갑자기 불러내져 술 한 잔 앞에 놓고 밤이 깊도록 기억에도 안 남을 긴 얘기를 주고받던 시간들을 그리워하면서, 여기에서의 삶에서 우리가 새롭게 좋아하게 된 것들에 대해 감사하자고 애써 생각해본다.

 


 

아영엄마 (2005-12-06 07:36:33)
아영아 첼로집에 놀러와 항상 문열려있다

Ana (2005-12-06 07:41:06)
^__________^

보영 (2005-12-06 16:55:45)
셤공부시작하려던 내마음에 찬물을…우짜라고…

두성 (2005-12-06 19:19:31)
모든걸 다 가질순 없지만 또 상대적으로 더 가졌다고 해서 일상의 고민들과 질문들이 사라지진 않겠죠. 두분 모두 힘내시길 ^^

MADDOG Jr. (2005-12-07 09:40:04)
머.. 사실.. 걍 놀고 싶은게지. 그리고 ‘한국’보다는 지나간 ’20대’가 그리운 것 뿐이고.. 지금 한국에 돌아간다고 해서 20대 때처럼 살 수 있겠어.. 어디.,..

Ana (2005-12-08 11:35:27)
셤 공부라길래 뭔가 한참 생각했네.. ㅎㅎ.. 이것봐. 모든 건 선택의 문제라구.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기도 하지만, 하나를 잃으면 또 하나를 얻기도 하지.

Ana (2005-12-08 11:36:28)
두성씨 반가워요~ 형미씨랑 재미있게 지내고 계신지? 그쪽 소식도 좀 알려주세요.. 뭐 홈피 이런 거 안 만드세요?

두성 (2005-12-08 18:32:33)
홈피는… ^^; 형미씨는 pregnant 상태구요 입덧이 심해서 휴가중입니다. 내년 7월에 애가 나온다나? 암튼… 누구말처럼 업보인가 봅니다. –;

MADDOG Jr. (2005-12-09 04:07:21)
ㅎㅎㅎㅎ 축하한다. 어머니 좋아하시겠네.. 형미씨한테 잘 해줘.. 안그럼 애가 나중에 커서 결혼할 날까지 니 흉 볼거다. “니 아빠가 너 가졌을 때 얼마나 mean하게 굴었는지 아니..??” 하면서

Ana (2005-12-09 15:21:43)
오오오!!! 축하해요!! ^^ 애기 낳으면 다들 홈피 만들던데.. 자기 애기가 젤 이뿌다구.. ㅋㅋ

두성 (2005-12-09 17:56:50)
요즘에 가장 적응안되는게 축하한단 얘기 듣는거지만 뭐 감사하구요, 경욱 주말에 전화하마. 여기시간에서 18시간을 뒤로 돌리면 거기 날짜와 시간이지?

MADDOG Jr. (2005-12-10 03:59:28)
17시간… 써머타임 끝나서.. 거기서 오후 1~2시쯤 전화하는게 젤로 좋지 우리한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