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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구직 경험담

취직을 하게 되어 붕붕 뜨던 일주일이 지나고, 이제는 어느 정도 흥분이 가라앉았다. 일도 몇 시간 해보고, 장차 계획에 대해 생각을 하게도 된다. 일하는 시간이 적긴 하지만 공공기관에서 일하게 된 좋은 기회이므로 계속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는 한편, 빈 틈을 메우기 위해 적당한 다른 일을 찾아 틈틈이 해야 할 것이다. (일단은 연말까지는 일하는 시간에 비례해 실업급여가 계속 보조될 것이므로 별 걱정은 되지 않지만, 그래도 조만간 적당한 파트타임 일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지난 화요일엔 오리엔테이션이 있었고, 금요일부터 일을 하러 갔다. 함께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나까지 총 4명. 둘은 도서관에서 이미 자원봉사를 하던 이들이고 하나는 전에 도서관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고 한다. 아무 경험도 없는 나는 정말 행운인 셈이다.
화요일에는 내가 속한 부서의 담당자 E에게 교육을 받았다. 일단 여러 가지 서류작업(도서관 서류, 시청 서류, 노조 가입 서류 등등)을 하고 도서관의 여기저기를 파악하고, 할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E는 앞으로 나의 스케줄을 정해주고 감독할, 말하자면 나의 직속 상관인 셈이다. 그 다음 스케줄은 금요일로 정해졌는데, E가 휴가를 떠나서 다른 사람이 간단히 우리에게 업무지시를 해주었다. 지금까지 파악한 업무는 일단 반납된 책을 수레에 순서대로 정리해 맞는 장소에 가서 책꽂이에 정리하는 것이다. E가 우리의 스케줄을 정하므로, 다음 주에 크게 바쁘지 않은 이상 휴가에서 돌아오기 전까지는 다음 스케줄이 잡히지 않을 것 같다.(도서관은 날이 궂으면 바빠진다고. 그러니 요즘같이 화창한 날이 이어지는 때는 말하자면 ‘비수기’인 셈이다.) E가 오면 일단 얼추 시간표는 정해준다고 했는데, 주 몇 시간 정도 일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오늘은 일단, 지난번에 말한 대로 정리도 해 볼 겸 나의 구직 경험담을 써보도록 하겠다.
3월에 들었던 구직과정에서, 캐나다를 비롯한 북미지역에서의 취업은 80%가 인맥 – 여기서는 network라고 한다 – 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배우고 우리 같은 이민 1세대가 무슨 인맥이 있어 취업을 할 수 있겠냐며 속상해 했었는데, 그 인맥이라는 게 어려우면 어려운 거지만 또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결국 나도 인맥을 통해 취직을 하게 된 것이다.

구직과정 수업내용을 요약하자면, 일단은 적성검사로 무엇을 목표로 잡을지를 결정한다. 일단 취업목표가 정해지면 강사들의 도움을 받아 캐나다 사회에서 먹힐만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꾸미고, 구직요령을 배운다. 80%가 인맥에 의해 채용이 된다면 인터넷이나 신문에는 나머지 20% 만의 구인광고가 나온다는 얘기다. 그러니 그것 말고 정말 숨은 80%의 취업시장을 공략하라는 이야기이다. 방법은 가장 좋은 것이 인맥, 즉 주변의 아는 사람들에게 내가 지금 구직 중이라는 것을 알리고 어떤 직업을 원하는지 말하고 다니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그쪽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조사차 한번 만날 것을 청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 거부감을 표현하지 않는다. 물론 바쁘다고 튕기는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정작 만나보면 웃는 낯에 침 뱉을 수 없으니까 어찌어찌 만남이 이어진다. 만나서는 일에 대한 본인의 의견도 묻고, 궁극적으로는 어떤 식으로 취업이 되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만일 정 인맥이 없으면 cold call이라고, 원하는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또는 들어가고 싶은 회사의 매니저)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 만남을 요청한다.(남편이 취직이 된 경우 – 무조건 가게에 들어가 면담을 요청했다) 처음에 생각하긴 당혹스러울 것 같지만, 일단 얼굴을 익히고 운이 좋아 마침 지금 나와 같은 경력의 사람이 필요하다고 나온다면 인터뷰로 이어지는 좋은 기회가 되는 셈이다. 그럴 확률은 크진 않지만, 없지도 않다. (나도 그랬으니까)
인터뷰를 하게 되면 거의 1/3의 확률로 취업이 되니까 일단 인터뷰를 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곳의 인터뷰는 거의 1시간 이상이 소요되므로 자신들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최대한 사람을 가려서 인터뷰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력서를 잘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인터뷰에서는 주로 자신의 지난 경험에 대해 묻는다. 지난 경험이 지금 지원하는 일과 어떻게 맞아떨어지며, 어떤 식으로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지 설득하는 것이 면접의 포인트이다. 그리고 면접 동안 했던 자기자랑(?)을 확인하기 위해 추천인에게 전화를 걸어 지원자에 대해 묻기도 한다.

아무튼 나의 경우는, 섬에 갔다 나오는 길에 아는 손님을 페리에서 만났는데, 도서관 취업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자 섬에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나를 알기를 바라면서) 조사차 만날 약속을 잡고, 만나서 얘기를 하다가(다행히 가게에 자주 오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사람을 직접 뽑는 담당자(E)에게 나를 소개시켜주었다. E와는 첫 만남이었는데, 간단한 인터뷰를 하고, 현재 이력서를 손보고 있는데 혹시 고칠 것이 없는지 보여주었더니 이력서가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놓고 가라고 했다. 그 조사 인터뷰 후 감사카드를 보냈고(하지 못한 말을 할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나를 기억에 남게 해주는 역할). 만날 당시엔 다음 달쯤 채용계획이 있다고 그러더니 2주 후에 인터뷰에 오라고 연락이 왔다. 가서 관리쪽 담당자(E의 상관)와 E와 셋이 앉아 한 시간 가까이 되는 긴 인터뷰와 간단한 필기/실기 시험(주로 책 순서 보는 법)을 치르고 채용이 된 것이다.

위에 말했지만 이 곳의 채용은 일단 주변에 있는 사람, 즉 자원봉사를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지식도 있고 얼굴도 아는 사람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E도 가게의 손님이었던 사서 아줌마가 소개시켜준 나를 만났고 일단 한번 얼굴을 익혔으니 새로 광고를 내는 것보다는 한번이라도 본 나와 면접을 하자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하는 비 정규직 일이라도 계속적으로 하다 보면 정규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물론 천천히 천천히 모든 것이 진행되는 이 나라에서 그런 기회가 오기까지 몇 년이 걸릴 지는 알 수 없다. 자원봉사를 하다가 이번에 일하게 된 아줌마 하나는 1년 반 동안 자원봉사만 했다고 한다. 운도 따라주어야 할 것이다.

다음 글에 얘기하겠지만, 운도 운이지만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캐나다에서 삶이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한다. 여기 와서 느끼는 것인데, 인맥으로 사람을 뽑는 사회에서 사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 아닌가? 내가 아무리 친한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에게 신뢰가 가지 않으면 나의 상사가 사람이 필요하다고 할 때 추천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 평상시에 모든 사람에게 잘 하는 사람들이 잘 될 수 있다는 것인데.. 개인 중심이라던 캐나다 사회가 요즘은 좀 다르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보영 (2005-05-09 07:21:14)
친절이 해가 될게 없다고 햇엇나? 웃는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햇엇나… 쌈닭인 내게 준 메세지를 가슴에 담앗지… 근데 실행은 생각날때만 하고 잇다…

상계동엄마 (2005-05-11 09:35:49)
열심히사는 우리아들 며느리 기쁜 소식 전해줘서 고맙다 항상 남에게 친절하고 웃음잃지 말고 살아라….

MADDOG Jr. (2005-05-12 01:07:55)
이야…. 우리 오마니가 꼬리글을 다 다실줄 아시고… 이제 컴퓨터 능숙하시네…

Ana (2005-05-12 02:04:15)
어머니가 달인이 되시려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