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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행복했던 기억들

2006년이 되었을 때의 그 생경하던 느낌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내일이면 2007년이란다. 한국에서는 이미 2007년이 되었을 것이고.. 불과 몇 시간 밖에 안 남았지만 아직 멀게 느껴진다.

매해 연말이 되면 다이어리를 새로 구입해 전화번호며 지인들의 생일들을 옮겨 적고 새해 계획을 세워보는 등 나름 새해를 준비하곤 했었는데, 올해는 마치 떠밀리듯 새해를 맞는다.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카드를 보내는 것도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서야 부랴부랴 보내고 한국의 우리 이쁜 조카에게 선물을 보낸다고 하고서는 멍하니 있다가 1월이 되어 버렸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 출근을 한 탓도 있을 거고 점점 세월의 변화에 무감해져 가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건 좀 이상하다. 전에는 아무리 슬픈 영화를 보아도 눈물을 잘 안 흘렸었는데, 언제인가부터 그 안의 상황이 너무 이해가 되면서 눈물이 줄줄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무감해졌다는 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점점 비관론자가 되어가기 때문인지.. 정말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가슴 설레고 즐거웠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기에 가물거리는 기억을 되짚어 내 인생의 행복했던 날들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어린 시절엔, 솔직히, 아주 즐거웠던 기억이 별로 없다. 학교 생활도 그렇고, 딱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고, 잊었을 수도 있겠지.

처음으로 떠오르는 장면은 고등학생이었던 어느 날. 사정이 있어 성적이 나빴을 수 밖에 없었을 때인데 몇 개월 만에 성적이 상당히 좋아졌다. (부모님들께서 공부 따라잡을 걸 포기하시고 공부하란 말씀을 안 하실 때 청개구리 같이 공부를 가장 열심히 했다.) 그 때 받아온 모의고사 성적표를 보시고 아빠가 나를 번쩍 안으면서 기뻐하셨다. 처음으로 아빠를 기쁘게 해드렸다는 행복감이 들었었다. (얼마나 그런 일이 없었으면.. -_- )

대학 때, 직장 다닐 때, 역시 기억이 안 나거나 즐거운 일이 없었거나.

그리고.. 결혼하고 나서.. 둘 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꽤 여러 곳을 다녔는데, 자금의 압박으로 두 달여 만에 돌아왔지만 상당히 행복했다고 기억 된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후회가 드는 것이.. 왜 그렇게 싸우고 다녔는지.. 그 때는 결혼하고 1년이 안 되었을 때여서 매사 티격태격하는 일이 많았다. 지금 다시 간다면 훨씬 더 재미난 여행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즐거웠고, 가난한 여행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다.
(그러고 보니 여행 때 만난 배낭 여행하던 한국학생들이 우리를 보고 묻던 말이 생각난다. 그 때 우리가 서른도 안 되었을 땐데 우리가 결혼했다고 하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른들도 배낭여행 다녀요?’ 하고 물었다. 그 아이들,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고 있을지..)

여행을 갔다 와서 쓴 맛을 좀 보긴 했지만, (경력이 되는 데도 지원하는 곳마다 퇴짜였다. 면접에서 대놓고 ‘이제 애 낳아야 할 거 아냐?’하던 작자도 있었다. 그것도 공무원 비슷한 조직에서. 어이 상실이라는 건 그럴 때 쓰는 말이겠지.) 그래도, 잘 갔다 왔다고 생각한다.

이민이 결정되었을 때도 기뻤다. 사면초가 같던 당시의 상황에서 뭔가 돌파구가 마련된 것 같았다. 이민을 와서 좌충우돌하다가 도서관에 비록 비정규지만 취직을 하게 되었을 때도 기뻤다. 내년엔 학교에 지원할 생각이고, 2년 후 학교를 졸업하고 풀 타임을 잡게 되면 또 한동안 기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는 인생의 굽이굽이 학교 합격, 취직, 등등 몇 가지 사건들이 있긴 했지만, 사실 이런 기쁨들과 내가 기억하려는 행복과는 아주 미묘하게 약간 다른 것 같긴 하다.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 지금 기억이 나는 것 같다)

지금 당장은.. 뭐가 행복할까..

남편과 딸기와 날씨 좋은 날 공원을 걷거나 할 때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고, 추운 겨울 저녁 남편의 팔짱을 끼고 자주 가는 사천 음식점에 들어가 맛있는 음식을 기다리면서 차를 훌훌 불어 마실 때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큰 것보다는 점점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 나이 들어 좋은 점일까?
내년엔.. 꼭 한 가지만 바란다면 다들 건강했으면 하는 것이다. 나도, 남편도, 한국의 가족들도, 딸기도, 또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도,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