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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피노 여행기 – 3일차

제 3 일

모처럼 밤에 안 깨고 6시까지 잤다. 예전에 출장 다닐 때 매일 매일 다른 나라들을 다녀도 쿨쿨 잘 잤는데 언제 인가부터 잠자리가 바뀌거나 생각할 일이 있으면 밤에 깨서 뒤척이게 된다. 나이를 먹어서인가? 암튼 6시에 일어나 글도 쓰고 하다 보니 8시 좀 넘어 남편이 일어난다. 오늘도 날씨가 나쁘지 않다. 도서관 친구들 얘길 들어보니 여름에도 비 안 오는 날이 흔치 않다던데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다.

또 동네 산책을 한 바퀴하고 집으로 돌아와 컵라면으로 아침을 먹었다. 사과도 깎아먹고. 아무리 양식을 잘 먹는다 해도 역시 라면만큼 입에 붙지는 않는 것 같다. 역시 발코니에서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집에서 관리인이 머리를 쑥 내밀더니 오늘은 청소해주시는 분이 안 온다고 수건이며 커피를 더 갖다 준단다. 어차피 정리 안 해줘도 되는데 팁 굳었다.

라면 먹고 커피를 만들어 텀블러에 담아 또 해변으로 나선다. 오늘은 일단 해변 쪽이 아닌 마을 끝 쪽까지 차로 가 보았다. 끝에 공원 입구라고 되어있는데 길을 따라 들어가보니 숲 속으로 계단을 만들어놓았다. 계단을 따라가는데 짧은 길이지만 옆에 바위며 수풀이 예쁘다. 끝은 작은 해변으로 통해 있다. 토피노 시내가 자그만 반도처럼 되어있어 북동서 3면이 바다인데, 여긴 북쪽 끝인 셈이다. 개 두 마리를 데려온 아주머니와 아주머니의 친구를 만났는데, 아주머니는 어제 오면서 눈이라고는 보지도 못했단다. 우리는 정말 생고생을 했구만.. 참..

 

아담한 해변과 산책로를 빠져 나와 토피노에서 40Km정도 되는 유클루렛이란 곳으로 갔다. 서쪽의 긴 해안이 토피노와 유클루렛을 연결하는데, 여기도 토피노처럼 주업이 관광인 것 같지만 좀더 규모가 컸다.(아주 조금 컸다. 여전히 작은 바닷가 마을..) 가는 길에 또 다른 해변에 들러보고.. 기네스북에 나온 롱비치. 긴 백사장이다. 머리 위로 독수리(!)가 날아다녀 딸기를 꼭 안고 차로..


세상에서 제일 긴 해변이라는 롱비치..


엄청난 조수간만의 차이 때문에 아침에 가보니 모든 나무들이 해변 끝까지 떠 밀려와있었다

유클루렛에서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고 半島酒家라고 되어있는 중국집에서 식사를 했다. 남편은 탕수육과 치킨볶음밥세트를, 그리고 나는 샌드위치 수프 세트를 먹었는데, 충격적이게도 샌드위치에 딸려 나온 수프가 완탕수프! 웃겨서 쓰러질 뻔함. 그러나 맛은 제법 좋아서 싹싹 긁어서 다 먹었다. 오늘도 저렴한 가격에 어디서나 밥을 먹게 해주시는 우리 중국 이민자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배를 두드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참, 여기도 차를 판다. 티 백 자스민 차. 1.25 달러.


어디에서나 싸고 맛있는 중국음식


그러나… 샌드위치와 완탕수프의 콤비라니….ㅠㅠ

아침에 비는 안 왔지만 흐리던 하늘이 드디어 비를 쏟아 붓기 시작한다. 정보책자를 읽어보니 토피노의 강수량이 밴쿠버 대비 2배라는데 비 오는 시간은 반이란다. 그만큼 집중호우도가 높다는 얘긴데, 정말이지 한국에서 여름에 소나기 쏟아지는 것 보는 듯 하다. 비가 많이 오는구나 하면서 TV를 틀어보니 태풍(!)이 지나간단다. 밴쿠버며 빅토리아(우리의 다음 목적지. 우리가 사는 브리티쉬 콜롬비아 주의 주도이기도 하다.)가 모두 태풍으로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불어대고 있단다. 여기도 비가 거세지고 발코니 유리가 덜컹거린다. 안쪽으로 쑥 들어와 자리잡은 잔잔하던 모텔 뒤 항구조차 잔물결이 하얗게 일어난다. 차를 만들어 과자를 먹으면서 바람 부는 걸 바라보다가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나 폭풍우 치는 바다를 보러 가기로. 방수바지를 덧입고 방수자켓에 장갑에 무장을 하고는 갔는데 정작 바닷가는 그다지 바람이 심하지 않았다. 이제는 바다도 지겨워져 동네로 돌아와 도서관(정말 조그맣다..) 구경도 잠깐 하고. 오히려 동네는 바람이 몸이 날려갈 것 같이 심하게 분다. 모텔로 돌아와 글을 쓰고, 오늘 저녁은 모텔 주인이 소개시켜준 음식점에 가보기로 한다.


한국에서 태풍을 겪어본 사람들에게 이정도는 껌이지 머..

Rain Coast Café는 특이하게도 아시안 퓨전 음식을 제공한다. 음식값은 역시 비싸다. 중국집 빼고 토피노는 빵집도 식당도 숙소도 모두 비싸다. 우리는 굴을 구워 미소로 맛을 낸 소스를 얹은 것과 참치를 깨 가루에 굴려 겉만 살짝 익힌 것, 굴을 라임과 허브 소스로 익힌 것, 그리고 타이식 볶음 쌀국수를 주문했다. (이름들이 너무 어려워 다 잊어버림) 소스들이 다 특이하고 맛있었다. 모양도 예술적.. (그러나 카메라를 잊고 안 가져가 사진은 못 찍음) 전채 3가지 시키고 메인으로는 쌀국수 하나만 시켰는데 야금야금 배가 불러져 국수를 싸왔다. 젊은 백인 주방장이 어떻게 이런 맛을 낼 수 있는지 궁금했다.






깜빡 잊고 카메라를 안가지고 간 덕에… 대충 이런 모양이었던 듯..

비바람이 불어대는 거리를 떠나 모텔로 돌아오니 날씨채널은 태풍이라고 난리다. 관리인도 전화를 걸어 혹시 정전이 될지 모르니 손전등을 준단다. 에혀..

TV를 보고 있는데 깜박 깜박한다.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가 또 켜지고.. 결국엔 정전이 되고 만다. 미리 씻고 잘 준비해놓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