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씨는 보통 토요일에 일을 하는데 지난 주는 쉰다고. 모처럼 바람이나 쐬러갈까 얘기했는데 몸도 안 좋고 해서 그냥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겨울치고는 드물게 날씨가 계속 좋아서 출발 이틀전에 기차, 버스, 호텔을 우당탕 예약했다. (여기 버스와 기차는 일찍 예약할수록 저렴하다고 하니 다음번엔 참조해야할 듯.)
마침 12일이 딸기 49재(종교와 상관없이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아 날짜를 기억하고 있었다)라 잘 보내주고 다녀온다는 생각도 들었고.
11월 14일 금요일.
기차 출발시각이 밴쿠버 중앙역에서 아침 6시 30분이라 집에서 5시 버스를 타야했다. 아무래도 국경을 통과하는 기차니까 기차 승차 전에 출국심사도 한다고 해서 여유있게. 4시에 알람을 맞춰두고 눈을 떠 후다닥 옷을 챙겨입고 K씨의 손을 꼭 잡고 어두운 거리를 걸어 버스를 타러 감.
이 날 처음 해보는 것 많았다. 밴쿠버 온지 십여년 만에 기차역도 처음 가보고, 버스 첫 차도 타보고.
표는 미리 프린트해두어서 바로 통과, 출국심사도 간단한 질문 몇개만 하고 통과. 기차를 탈 때 문마다 목욕탕 의자처럼 생긴 예쁜 노란 발받침이 있었는데 나중에 내릴 때 보니 차장 언니가 (정말 차장처럼 모자를 쓰고 뒷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있었다 ㅋㅋ) 하나 하나 내려두는 거였다 ㅋㅋㅋ 귀여워서 사진을 찍었는데 어디있는지 모르겠음;
일단 자리에 앉아 짐을 두고 식당칸에 밥을 먹으러 갔다. 뻔한 샌드위치/시리얼 등의 메뉴들 중에 마침 치킨 데리야키 밥이 있길래 나는 그걸 주문하고 K씨는 칠면조 치즈 샌드위치.
좀 짰지만 먹을 만 했다. 여기도 글루텐프리 열풍 때문에 웬만한 메뉴엔 빵이 아닌 것이 하나쯤은 들어있어 선택의 폭이 조금 넓어짐.
K씨의 샌드위치. 맛 없다고 ㅋㅋㅋㅋㅋ
한번 먹어봤으니 담번에 갈 땐 미리 맛난 걸 챙겨가야겠다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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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우리의 자리. 테이블도 있고 의자도 널찍널찍해서 편안했다. 게다가 바다쪽이라 나중에 우리가 내릴 때쯤 건너편 자리 사람들 (아이가 있었다) 이 차장에게 부탁해 이 자리로 옮기더군.
밴쿠버에서 미국 들어갈 때까지는 자리가 많이 비어있었지만 미국에 들어가면서 거의 모든 좌석이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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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에서 보이는 모습. (아직 캐나다) 무려 일출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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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캐나다인데 화이트락이란 동네다. 저기 놓여진 흰 바위에 얽힌 전설이 있는데, 저걸 주기적으로 희게 칠한다는 얘기를 듣고 빵 터진 적이 있었음.
여긴 봄에 토론토로 떠난 친구부부와 종종 왔던 곳이라 친구 생각도 나고, 조금은 쓸쓸해졌다.
입국 심사는 기차 안에서 심사관들이 돌아다니면서 여권을 체크하면 끝. 추가로 드는 시간이 없는 것이 좋았다. 심사할 때 쯤 되면 자리에 붙어있으라고 몇번이나 방송을 한다.
바깥 풍경은 바닷가와 시골 마을의 반복. 바닷가를 지나 시애틀 킹스트리트역에 도착. 옷가방을 두러 일단 호텔로 가자 했다가 가까운 곳에 유명한 맛집이 있는 것을 알고 점심을 먹고 들어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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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뭐 하루종일 줄을 서는 집인 듯. 안쪽 공간이 좁아서 사서 나가거나 아무 테이블에나 앉아 먹고 나오는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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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이 porchetta 샌드위치. 국물이 자작한 푹 익힌 돼지고기를 빵 사이에 꾹꾹꾹 채워준다. 뒤쪽은 겨자살라미 샌드위치. 오븐에서 따뜻하게 데워져 나오는데 빵도 고소하고 맛있었다. 빵이라 소화를 잘 못 시킬까봐 아주 천천히 꼭꼭 씹어먹었는데 그럭저럭 속이 편해서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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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테리아처럼 긴 테이블에 아무데나 자리를 잡고 앉아서 먹는다. 물병은 계속 리필이 되어 음료수를 따로 주문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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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식사를 마치고 남은 샌드위치도 잘 싸서 가방에 담고 환전을 좀 하려고 역으로. (사실 대부분의 가게들이 신용카드를 받기 때문에 환전할 필요가 없었지만 버스는 현금만 받는다고..)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무인 자전거 대여소. 보긴 참 좋았는데 이 동네는 그럼 소규모 자전거 대여점은 이 시스템에 다 먹힌 건가 하는 생각에 좀 씁쓸. 자전거를 타고 갈까 하다가 너무 추울 것 같아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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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 가서 물어봤더니 역에는 환전소가 없다고. 은행으로 가보라고 한다. 허이허이 은행으로.
멀어 ㅠㅠㅠㅠ
거리 풍경. 아래 사진 전봇대에 매달린 용을 보니 여기가 차이나타운이라는 걸 바로 알겠네.
차이나타운에 있는 한 은행이 들어서니 자기네 은행에 계좌가 있어야만 환전을 해준단다. 그러면서 환전소가 있다는 쇼핑몰을 알려준다. 별 수 없이 쇼핑몰까지 걸어가기로. 한 20분? 정도 걸으면 될 것 같았다. 다음번에는 꼭 미리 환전해서 가야지!
몰까지 걸어가는 동안 시애틀 미술관 (저 망치치는 조형물이 한국에도 있다는 것 같은데..), 도서관, 파이오니어 광장, 파이크플레이스 마켓 등등의 관광지가 있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대강 대강 보면서 지나쳤다. 그 다음날도 뭐 별다른 계획은 없었으니까 다시 오면 되지. 그래도 마켓에서 사마신 애플사이더는 참 좋았다. 안 달고 따뜻하고 피로가 풀리는 느낌.
몰에 도착해서 환전을 하고 (미친 환율 적용에 미친 수수료.. 캐나다 달러 $40이면 지금 환율이 안 좋은 걸 감안해도 $35불, 수수료 포함해도 30불 이상 받을 줄 알았는데 꼴랑 손에 쥔 건 $27.) 다시 한번, 다음번에는 꼭 미리 환전해서 가야지!!!
우야든동 환전을 하고 바로 그 몰에 있는 모노레일을 타고 숙소 동네로 갔다. 이 모노레일은 딱 한 구간만 왔다갔다 하는데 다운타운 이쪽과 우리 숙소가 있는 시애틀 센터. 버스로는 한 20분 거리인데 공중에 레일을 깔아 한 2분이면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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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센터의 상징 스페이스 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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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앞까지 딱 가는 모노레일 철길.
호텔은 상당히 깨끗했다. 냉장고가 없다는 것이 유일한 단점. 일단 짐을 던져두고 침대에 쓰러져 잠시 기절. 이제 배낭여행 이런 건 못하겠다는..
한숨 자고 일어나니 어스름이 깔리고 있다. 뭔가 먹을 것을 찾아 나가보기로 한다. 호텔 주변에 큰 마트가 있고 식당들도 많아 식사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사전 정보를 봤었는데.
마트에 가서 잠시 구경을 했는데 술을 파는 걸 보니 여기가 미국이구나 싶다. (사실 캐나다나 미국이나 다른 것 같으면서 많이 비슷하고 또 비슷한 것 같으면서 또 다르고.) 델리에서 간단한 걸 사먹을까 하다가 2층에 있는 식당으로 가본다. 밥을 먹으라는 K씨의 권유에 들어가봤더니 회전초밥 집일세. 회전초밥집은 예전 한국서 직장생활 할 때 가보고 처음이니 참 오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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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고급진 집이었다. 접시들 옆으로 생선들 원산지가 다 쓰여있었음. 캘리포니아 롤은 진짜 게살을 넣어만들어 지금껏 먹어본 것 중 최고였음. K씨가 먹어본 해피아워 (시애틀의 많은 식당이 점심과 저녁사이의 한가한 시간에 저렴한 메뉴를 팔고 있었다) 메뉴였던 새우 고로케도 괜찮았다고 한다.
저녁도 잘 먹고 뿌듯한 기분으로 마트에 가서 K씨를 위한 맥주 한 병, 나를 위한 생강이 든 코코넛 워터 한 병을 사서 호텔로 가서 씻고 TV를 보다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