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많은 비 – 추위 – 눈이 이어지면서 길이 꽁꽁 얼어붙었다. 워낙 눈 대비를 잘 못 하는 밴쿠버로서는 그야말로 재난에 가까운 일.
주초부터 스노우데이 얘기가 나오다가 오늘 결국 대부분의 학교들이 문을 닫았다. 학교에서 일하다보니 가끔 이런 횡재(?)를 겪기도 한다. (이렇게 이야기할 때마다 부득이하게 꼭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미안해진다. 죄송합니다…)
웬지 선물같은 하루라 잔뜩 게으름을 피우며 온수매트를 켜고 이불 속에서 구독해두고 잘 못 가던 한국어 블로그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2019년을 보내고 2020년을 맞는 감회들이 많았다.
그렇구나. 한 해가 지났구나. 그리고 시작됐구나.
작년 한 해 동안 수퍼바이저 업무를 했었다. 일이 많은데 비해 급여는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일이라 그닥 인기가 있는 자리가 아니었고, 보스의 권유를 받고 1년만 버티자는 심정으로 시작한 일. 이 쪽으로 내 적성이 맞을 거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꼬물꼬물 자잘하게 계획 세우고 스케줄링하는 일도 재미있었고 사람들 이것저것 챙겨주는 것도 웬지 좋았다.
1년을 거의 채워갈 무렵 다른 캠퍼스에 같은 자리가 났다. 작년에 있던 곳보다 더 바쁜 캠퍼스라 과연 맞는 결정인가 싶기도 했지만 이런 저런 다른 이유들도 생기고 해서 몇 주간의 고민, 지원 및 인터뷰 등으로 바쁜 11월을 보냈다.
새 업무를 시작한지 이제 두 주 째라 긴장도 많이 되고 영어에 대한 두려움도 많다. 사람들을 많이 상대해야 하는 일이라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걱정도 많이 된다. (꿈을 잘 꾸지 않는데 새 일 시작하기 전에 며칠 연속으로 직장 꿈을 꾸었다.) 한 편으로는 하루를 바쁘고 꽉 차게 보내는 즐거움도 있고 낮은 단계지만 크고 작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데서 오는 작은 흥분들도 좋다.
내 2020년의 바램은 일단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로 별 일 없는 일년을 보내는 것. 조금 더 바라자면 건강. 나의 건강, 그리고 주변 모든 사람들의 건강.
12월 중순에는 아빠와 동생이 방문해서 가족들과 버무려지는 고마운 연말 연휴를 보냈다. 다들 오래 건강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