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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Tofino (4)

9월 28일 화요일

지난 밤도 잘 잤다. 생각해보면 여름 내내 부족했던 잠을 캠핑장에서 보충한 것도 같다. 인터넷도 잘 안 되고, 별로 걱정할 것도 없는데다 계속적인 알콜 공급;;;으로 간을 일을 시켜서 그런가 잠을 잘 자게 된다.  

간만에 날씨가 무척 좋다. 아침에 커피를 넉넉히 만들어서 텀블러에 담아 해변으로 내려갔다. 토피노 해변은 언제 봐도 예쁘지만 맑은 하늘 아래의 해변은 더 예쁘다. K는 바닷가에 앉아있겠다면서 작은 캠핑 의자도 챙겨갔는데 바람이 엄청 불고 의자는 모래속으로 빠져(!)들어가서 그리 오래 앉아있지는 못했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사이트로 돌아가는데 너무 좋아하는 광경 – 숲 속으로 햇살이 스며든다.

사이트로 돌아와서 반찬집 미역국을 데워 밥 (나는 오트밀)과 깍두기와 함께 먹었다. 외식을 많이 하면 탈이 나는 K를 위해 여행 전에 깍두기를 만들었다.

이 날은 차를 쓰지 않고 캠핑장부터 연결된 새로 만들어진 자전거 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보기로 했다. 가볍게 다녀올 생각이어서 간식도 챙기지 않고 따뜻한 물만 챙겨서 나섰다.

올 때마다 공사 중이더니 아주 멋진 자전거 도로가 생겼다. 아직 마무리는 되지 않았지만 캠핑장에서 자전거 타고 다닐 수 있는 게 너무 좋다.

일단 캠핑장에서 Ucluelet 방향으로 가다 Combers Beach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주차장부터 해변까지는 비탈길에 보드워크도 있어서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는 게 맞나 싶었지만 그래도 끌바로 해변에 도착. 혹시나 하고 자전거에 올라본다. 백사장에서 자전거는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고운 모래가 물과 함께 다져져 자전거가 앞으로 나간다.

와…. 너무 좋다. 해변에서 파도를 피해 가며 자전거 타는 기분 정말 말로 표현 못할만큼 즐거웠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날씨도 너무 좋고 바람도 부드럽고 햇살도 따뜻했다.

한참 놀다가 아까 내려온 비탈길을 되짚어 올라갈지 아니면 해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서 자전거 도로를 따라 집으로 갈지 논의. 문제는 해변을 따라가려면 물 웅덩이를 건너가야 한다는 것.

건너편으로 간 K

일단 K가 조금 얕은 곳으로 자전거를 탄 채 건너갔는데 페달을 밟으며 바퀴에서 물이 튀어 바지 양말 신발이 다 홈빡 젖어버렸다. 나는 그 전철을 밟지 않고 신발을 벗어들고 걸어서 건너가려고 했는데, 신발을 미리 벗고 물로 들어갔어야 하는 걸 바보같이 물 속에서 부츠를 벗으려다 큰 파도가 몰려와 얼어버렸다. 얕기는 하지만 파도가 밀려와 중심잡기 힘든 상태에서 자전거를 지탱하고 신발은 한 짝만 벗고 한 다리로 서 있으려니 너무 힘들어서 멘붕 상태가 되었다. 아 내가 왜 신발을 미리 안 벗은 거지… 깽깽이로 버티며 신발을 벗으려고 하는데 아직 길이 덜 들어 잘 안 벗겨지는 부츠가 말을 듣지 않는다. 결국 K가 와서 부츠 벗는 걸 도와주었고 나는 그 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얕은 곳을 골라 맨발로 건너편으로. 아이고 힘들어라. 

자전거에 파도에 밀려온 해초 줄기들이;;;

통나무 위에 앉아서 발을 말리며 청명한 하늘과 바다를 보고 있자니 비록 내 직계 선조는 아니지만 이 땅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버린 분들에게 저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안 그랬으면 자본이 다 점령해서 이 아름다운 광경을 보지 못하게 되었을 수도 있겠지. 제사도 안 지내는 집에서 자란 마당에 갑자기 조상이 고마워진 순간이었다. 

K는 옆에서 양말을 짜고 ㅋㅋㅋ 물도 마시고 한참 앉아있다가 다시 해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데 이게 쉽지가 않다. 모래가 부드러워지면 당장 바퀴가 헛돌고 그나마 달릴 수 있는 곳도 평지보다 힘들다. 아까 그렇게 예뻐보이던 바다가 지겨워질 즈음 (인간이란 게 그렇다..) 다시 자전거도로로 나갈 수 있는 Wikanninish Beach에 도착했다. 화장실 쓰고 물 마시고. 벌써 기운을 다 쓴 것 같은데 캠핑장으로 다시 돌아가려면 45분을 달려야 한다고 한다 ㅠㅠㅠㅠㅠㅠ 우리가 온 길이 그리 길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직선인 해변과는 달리 하이웨이를 따라 연결된 자전거도로는 구불구불해서 훨씬 멀다고. 출발 전에 벌써 힘들다. 간식이라도 가져올 걸…

그래도 힘을 내서 출발. 평지에서는 기어를 6단에 두고 달렸지만 언덕에선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힘드니까 앞서서 가는 K가 얄밉다. 쿠거도 나오고 곰도 나온다는데 나만 두고 저렇게 빨리 가다니. 확 삐져버릴 뻔 했지만 그 이후 내 뒷쪽으로 옮겨서 가끔 실없는 소리를 하는 K 덕분에 빵빵 터지기도 하면서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전기자전거를 타고 우리를 휙 앞질러간 시니어 커플을 보고 전기 자전거를 사야 하나 (안 됨) 심각한 고민을 하기도 하면서.

도착해서 수돗가에서 자전거 소금기를 씻어내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한 후 (정말 살 것 같았다) 가스 모닥불을 쬐며 샤도네이를 곁들여 감바스를 저녁으로 먹었다. 크래커에 치즈도 얹어먹고. (힘들어서 사진 찍는 것도 잊음.) 탄수화물이 들어가자 지친 몸이 좀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기진맥진했던 오후를 보상하려 했는지 가져간 과자를 몽땅 다 털어먹고 나서 이를 닦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다리가 화끈거려서 잠들기가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