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ning의 추억 (2)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밤중에 깨지 않을까 싶었으나, 가끔씩 뒤척인 것 빼고는 새벽까지 꿀잠. 온도를 16도 쯤에 맞춰두고 잤는데, 바깥이 너무 추웠는지 (영하 17도) 열일하던 배터리가 기절해서 밤중에 히터가 꺼졌다. 머리가 시리기 시작하더니 트레일러 안에서도 하얀 입김이…
하지만 혹시나 해서 백패킹용으로 사둔 동계 침낭을 가져간 덕분에 따뜻하게 잘 잤음. 침낭이 너무 포근해서 밖으로 나오는 게 어렵긴 했지만.

날이 밝고 K씨가 보조 배터리를 이용, 히터를 다시 가동시켜줘서 그 때서야 꾸물꾸물 밖으로 나왔다. P님과 J님은 벌써 일어나 계시다고.

아이고 추워… (L님 사진 – 이하 오늘의 모든 사진은 L님이 찍으심)

엊저녁에 푸짐하게 먹고 잔 덕에 땡땡 부은 채 P님 댁 트레일러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정신을 차리는 동안 P님께서 옆에서 분주하게..

럭셔리 육수로 끓인 떡만두국 

끓여주신 뜨끈한 떡만두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우리 집에서 가져간 냉동만두랑 냉동떡인데 P님이 직접 만드신 육수에 끓이니 우리집에서 먹는 맛이랑 다른 차원의 맛이 난다… 그리고 L님께서 준비해 오신 달달한 불고기도 맛났고.


매닝 파크 옆에는 스키 리조트가 있다.

K씨는 스키를 타 본 적이 없고, 나는 예전에 회사 단합대회차 스키장에 가 보긴 했으나, 엄청난 저질체력이었던지라 무거운 스키와 부츠를 신는 것만으로도 기진맥진해 졌었다. 그래서 이제껏 스키랑은 안 맞는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P님과 J님께서 밴쿠버 살면서 스키는 꼭 타야 한다고 강려크 주장하셔서 얼떨결에 배워보기로.

부츠 신는 법을 배워봅시다 

나는 P님 부츠를 신어보고 K씨는 J님 부츠를 신어보고. 추운 날씨에 차갑게 굳어진 신발이 잘 안 신겨져서 발도 시리고 힘들었다… 역시 스키는 나랑 안 맞아.. 라고 생각을 했으나… 스포츠 소녀 L님의 환상적인 교습으로 어느새 넘어지지 않고 언덕 아래까지 내려간 나를 발견. (물론 아기들이 연습하는 초보자 코스였습니다.)

오늘 포스팅하는 사진은 다 L님께서 찍어주신 건데, 연습하는 시간대의 사진들은 없다. 일단 버벅대는 나를 가르쳐주시느라 너무 바쁘셨던데다, 아마 찍었어도 자빠진 모습들일 뿐이라 ㅋㅋㅋ

속도를 조절하면서 S자를 그리는 법을 배워 짧은 코스를 스키로 내려간 뒤 다시 리프트로 올라간다.

빨간 손잡이가 옆으로 오면 냉큼 잡고 올라가야 하는데.. 그 때 몸에 오는 충격이 스키타는 것보다 더 힘들어…

이렇게 자빠지면 ㅠㅠ 뒷사람이 오기 전에 얼른 굴러서 옆으로 피해주어야 함. (스키가 무거워서 고난이도임;;)

L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몇 번 오르내리다 보니 주변 풍경도 조금씩 보이고…

웃을 수 있는 여유까정 생김!


 

그 사이 K씨는 J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악전고투 중…

그래도 근력이 있어서인가 리프트를 잘 타는 듯!


K씨와 내 영혼이 가출할 무렵.. J님께서 손수 라면을 끓여 점심을 준비해 주시고…

그 와중에 맛있었다 ㅋ

점심 후 L님은 노르딕 스키 체험, P님과 J님은 상급자 코스로 가시고 K씨와 나는 다시 눈밭을 헤맸다.


네시에 빌린 부츠를 반납하고 L님을 픽업해 캠핑장으로 돌아옴.

J님께서 따뜻하게 끓여주신 대추꿀차! 패키지로 받아먹기만 하는고나..

그리고 오늘도 이어지는 P님의 럭셔리 음식의 향연..

생태찌개! 인생 최고의 생태찌개였다!

L님이 준비해오신 사케를 따뜻하게 데워 눈물나게 맛있는 생태탕을 안주 삼아 먹으니 세상에 부러울 게 없구나~

사케도 좀 마셨겠다, 스키 입문도 했겠다 기분이 한껏 업된 나는 예전엔 좌골신경통 때문에 잘 걷지도 못 했는데 이제 운동 좀 했더니 스키까지 탄다며 오도방정을 떨어댔는데, 암벽 등반을 하시는 J님 부부와 전문가 코스에서 스키를 타시는 L님 앞에서 그런 망발을 해댄 걸 생각하니 참으로 민망하다…


행복한 이틀차를 마치고, 또 일찌감치 잠자리로 기어들어간다. 침낭 속에서 아이패드에 담아간 누군가의 여행기도 좀 읽고, 이런 저런 생각도 하고.

예전부터 속도감 있는 스포츠를 즐긴 적도 없고, 놀이공원 롤러코스터도 못타던 나인지라, 아무리 아기들용 코스여도 언덕에 서면 일단은 공포감과 스트레스가 밀려온다. 게다가 부츠는 무겁고 넘어지기라도 하면 내 몸 하나 일으키기도 어렵고. 그래서 한 번 경험이지 또 탈 일 있겠는가 생각했는데, 며칠이 지난 지금 그 차가운 눈 위에서의 청량한 느낌, 약간의 흥분이 좀 그립다. 웬 일이래 ㅋㅋㅋㅋㅋ 아무래도 몇 번 더 타봐야겠다. 사실 지금 – 한살이라도 젊을(!) 때 – 타지 않으면 평생 다시는 시도해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도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