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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같은 날

가끔씩 오늘같은 날이 있다.

어제 밤늦게 코스 사이트 둘러보다가 아직 마감도 안 된 퀴즈를 클릭하는 바람에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당장 퀴즈를 풀어야 했고 도서관에서 빌린 자료를 오늘 반납해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에 새벽까지 그 책이 필요한 숙제를 하느라 잠을 못 잤다. 그러니 아침에 무척 피곤해져서 지각하거나 말거나 하면서 흐물흐물 집을 나섰다.

오늘같은 날은 대중교통 이용할 때의 불만이 한꺼번에 겹치는 날이기도 하다.
얼마전에 법으로 금지했는데도 불구하고 버스 기다리는 줄에서 남은 아랑곳없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정말 뭐라고 해주고 싶지만 용기가 없다 ㅠㅠ), 두번씩이나 바로 코 앞에서 떠나버린 버스, 기다리다 탄 버스의 옆자리 애는 30분이 가까운 시간 동안 다리를 덜덜 떨면서 전화기에 대고 쉼없이 큰 소리로 떠들어대고…
압권은,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너는데 주차되어 있던 버스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걸음을 내딛었으나 어느새 미끄러져와서는 바로 귀 옆에서 경적을 울려대 너무나 깜짝 놀라서 말 그대로 펄쩍 뛰어올랐던 것. 게다가 귀가 엄청나게 아파 운전기사를 노려보았더니 건너는 데로만 건너라고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 걸 무시해버렸다.
밴쿠버에 처음 왔을 때 가장 감동적이었던, 길에 보행자가 있으면 차가 무조건 서거나 하던 따위의 일은 이제 먼 과거의 일인 것이다. 한국에 갈 때마다 보행자에게 길 건넌다고 행패부리던 사람들이 미웠는데 여기서도 흔치 않게 볼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이런 날이면 환경 얘기하면서 공공교통 이용하라고 말만 하고 정작 자기들은 승용차 타고 다니는 공공교통 관계자들에게 욕이라도 한바가지 해주고 싶다. (그러나 갑자기 스카이트레인 고장나서 알아서 가라는 최악의 사태는 다행스레 일어나지 않음. 그랬으면 정말 폭발-이래봤자 별 거 없지만-했을지도.) 그리고 환경오염이건 뭐건 일단 빚이라도 내서 차를 한 대 더 사서 몰고 다니고 싶어진다.

암튼, 지칠대로 지쳐 집에 돌아와서는 목욕물을 뜨겁게 받아놓고 한참동안이나 목욕을 했다. 꿀도 얼굴에 바르고. (꿀이랑 섞어 바르려고 가져간 와인은 홀짝 홀짝 다 마셔버림;;;)
나처럼 운동 안 하는 사람은 목욕이라도 자주 하면 도움이 될 듯.

암튼 목욕을 갑자기 하고싶어진 이유는, 읽던 책의 주인공이 노상 목욕을 해댔기 때문. 마침 날도 꾸물거려 따뜻한 물이 그립기도 했다.
한국에서 인기있었다고 전해들은 냉정과 열정 사이가 도서관에 있길래 가면서 읽었는데 (한국책은 금새 한 권을 다 읽어버린다;;) 이야기의 70%는 이국적인 거리 묘사와 고급스런 취향의 요리 이름 등으로 때우는, 나로서는 별로 큰 점수를 줄 수 없는 책. (여행 블로그 정도의 재미는 있었다.) 그러나 옮긴이 (김난주씨)의 필체가 나름 중독성이 있다. 예전에 한참 하루끼 소설 읽을 때처럼 계속 머릿속에 “…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라든가 하는 문구가 메아리친다.
그나저나, 다 읽고 나니 한 권이 더 있단다. 게다가 작가도 다르단다. 그러나 도서관에 있는 것은 이 한 권 뿐이므로 어쩔 수 없다.

어쨌거나 목욕을 하면서 기분도 좋아지고 피곤도 많이 풀린 것 같다. 자주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