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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Boxing Day..

딸기네 집 문을 연 것이 작년 이맘때 쯤이어서, 첫 글을 크리스마스 때 올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는 찾아왔고, 가게도 쉬면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이번달은 다른 달보다 한 일주일정도 덜 일하게 된다. 사실, 예약이 있으면 가게를 열까 했으나 크리스마스와 Boxing Day 때는 아무도 예약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크리스마스 아침에 나가보니 문을 연 가게가 하나도 없었다. 몇군데의 주유소와 거기 딸린 편의점 정도일까..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다들 6시면 문을 닫는다. 친구부부가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이라 외식을 하려고 레스토랑 예약을 하려했더니 5시에 닫는다고 했단다. 서울엔 대목인 날인데.. 계속적으로 다른 모습을 알게 된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오전에는 가게에 손님들이 꽤 있었는데, 모두들 와서는 가급적 빨리 해 달라고 서둘러댔다. 아무래도 오후에는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기위해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서둘러 최대한 빨리 목욕을 시키고 말리고 분주한 아침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는 손님이 없어 한 시간 정도 일찍 문을 닫고 비가 약간 뿌리는 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명색이 크리스마스기에 와인이라도 한병 사려고 쇼핑몰에 갔는데 사람들이 술가게 앞에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일단 KFC에서 저녁으로 먹을 치킨을 좀 사고 돌아와보니 술가게는 문을 닫고 안에 있는 사람들만 마무리 계산을 하고 있었다. 역시 휴일엔 다들 술을 마시나보다. 할 수 없이 근처의 다른 집에서 와인을 사고 집에 돌아와 선물받은 예쁜 초에 불을 켜고 치킨을 먹고 음악을 들으며 셋이서 노닥노닥 조용한 밤을 보냈다.
크리스마스 아침엔 남편 선배와 미리 약속한대로, 고속도로로 한 시간 정도 거리인 미션이란 곳의 한 수도원에 갔다. 언덕위에 있는 작은 성당이었는데, 유럽의 수도원들에 비길 바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소박하면서도 멋이 풍기는 곳이었다. 높은 곳에 있어서인지 수도원 옆 건물에서 보이는 경치도 일품이었다. 오랜만에 바람도 쐬고 드라이브를 해서 그야말로 기분이 up되었다. ^^
한바퀴 돌고 선배댁으로 돌아가 예의 순두부찌개를 만들어 늦은 점심을 먹고 좀 놀다가 돌아왔다. 집에 와서는 반지의 제왕3편을 보면서 예습을.. (이 영화는 극장에 가서 보려고 한다.)

다음 날은 Boxing Day로, 지난번에 얘기했듯이 그야말로 쇼핑의 날이다. 우리는 특별히 살 것은 없었지만 전날 남편 선배가 살 것이 있다고 해서, 분위기도 느껴볼 겸 일찍 일어나 아침 6시에 문을 여는 전자제품 전문점에 가보았다. 6시 5분쯤 도착했는데도 주차장에 차가 꽉 차서(한국 전자센터 규모보다는 물론 작다. 전자센터 두세층 정도?) 옆 건물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보았더니 사람들이 바글바글.. 마치 서울의 백화점 세일하는 날의 풍경을 연상하게 하였다. 우린 서울에서도 백화점 세일 때는 가지도 않았건만 여기와서 구경삼아 이런 곳에 가다니.. ^^;;; 암튼 선배가 원하는 특별판매하는 제품을 획득하여 전화를 걸어봤더니 그 동네는 이미 매진되었다고.. 뿌듯하게 물건을 계산하는데, 한 20분 넘게 걸린 것 같다.
돌아와서는 아침을 먹고 새벽 5시반에 일어난 부작용에 시달리며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가 오후3시가 넘어 다시 눈을 떴다. 호기심에 또 슬슬 몰에 구경나가보았더니 주차장엔 자리가 없고 사람들은 여전히 바글바글하고 월마트나 몇몇 상점은 마치 폭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세일상품 진열장이 비어있고.. 옷가게나 음반 가게는 문을 막고 들고나는 사람들의 수를 통제하고 그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정말 오늘을 위해 1년 동안 돈을 버는 걸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지경이었다. 남편이나 나나 사람 많은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미라 그나마 먹거리를 사려는 구매의욕도 뚝 떨어져 달랑 레몬 한 개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 이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돈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파리 날리는 가게들도 있긴 했다. 잘 되는 가게는 주로 청소년 대상의 옷가게나 전자제품 코너.. 아마도 크리스마스 때 받은 용돈을 쓰러 오는지도..?)

암튼 재미있는 구경이긴 했지만 (캐나다 와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본 날 같다) 솔직히 그다지 실용적인 날 같지는 않다. 지금 생각으로는 내년에는 몰 근처에도 가지않고 조용히 지나가게 될 것 같다. 뭐.. 그 때가서 혹시 꼭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또 새벽잠을 설치며 나가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싼 제품이 있긴 하지만(크리스마스 선물용 초콜릿, 장식품 등은 다 반값 이하에 판다) 그런 것들은 꼭 사야하는 건 아닌 것 같고. 남편 말로는 전자제품은 정말 할인을 많이 한다고 하긴 하는데..

오늘은 간만에 가게 문을 열었는데 계속 쉰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다들 집에서 쉬고 있는 건지 미리 예약한 사람 외에는 손님이 없어 일찍 문을 닫고 들어왔다. 그런데 아주 잘 한 일이었다. 집에 와서 조금 있으니까 눈이 아주아주 많이 오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눈이 조금 내렸길래 반가왔는데 오후에는 정말 10cm이상 쌓일만큼 내렸다. 그래서 집에서 소파에 누워 눈을 보면서 TV를 보면서 한가로운 토요일 저녁을 만끽했다.

내일은 미니미네 이사하는 날이라 거들러 가야한다. 다음 주에도 화요일 하루 일하면 또 이틀 쉬고.. 정말 연말연시이다. 다음 주에는 만두를 좀 만들어 친구들과 만나 떡만두국이라도 끓여먹을 생각이다. 여기 오니까 한국에선 오히려 안 챙기던 일들을 많이 하게 된다. 아무래도 시간이 많아서인가.. 이맘때 서울에서였다면 여러 모임 쫓아다니느라고 바빴을텐데 여긴 모임이래봤자 가족들끼리 만나 저녁 해먹는 게 고작이어서 더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남편은 자칭 만두전문가라면서 자신만만해하는데 부모님들 도움없이 만들어보는 첫번째 만두라 어떨지는 모르겠다. 암튼.. 새해에도 이렇게 계속 평안한 나날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