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April 2003

오늘도 무사히..

요 며칠 날씨가 괜찮기에 겨울이 끝났나 보다 생각을 했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비가 왔다. 날씨도 쌀쌀해 집안에서도 스웨터를 입고, 나갈 땐 얇은 패딩 웃옷을 꺼내 입었다. 다행이다. 어제 놀러 갈 땐 날씨가 정말 좋았는데.. ^^

이사 와서 한 두 주간은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지 새벽에 잠을 깨고 그러더니, 요즘엔 잠을 푹 자는 편이다. 아침에도 8시가 되도록 잠을 자고는 한다.
항상 내가 먼저 일어나는 편인데 오늘은 남편이 먼저 일어나 있다. 얼른 씻고 빵으로 아침을 먹는다. 베이글에 치즈를 한 장 얹고 잼을 바른 뒤 바나나를 동그랗게 썰어 얹어먹고 있으려니 감자샐러드와 빵을 먹고 있던 남편이 또 이해하기 어렵다는 얼굴로 쳐다본다. 우리의 입맛은 언젠가는 비슷해질까?

계속 집에 있으려니 생활에 질서가 잡히지 않아 일과표를 짜기로 했다. 남편은 5월 1일까지는 학원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 지금은 숙어를 가르치는데 수업방식이 너무 재미가 없어 듣기를 가르치는 5월 1일까지는 집에서 혼자 공부하겠다고 한다. 일단 남편이 일과표를 짜고 식사시간과 산책시간을 맞추어 나도 일과표를 짰다. 간만에 시간표에 맞추어 공부도 하고 하니 재미는 있었다.

오늘 오전에 오기로 한 아파트 매니저가 오후 2시가 되어서야 어슬렁어슬렁 나타나서 수도꼭지에 빠져있던 부품을 끼워주고 갔다. 이사 와서 첫날 부탁했던 건데 23일 만에 끼게 되었다. 자기 말로는 그 동안 몇 번 들렀다던데 글쎄.. 우리도 꽤 집에 있었는데 그렇게 엇갈릴 수가..? 역시 누구나 다 만만디인 모양이다. 그리고 베란다에 방충망을 달려고 사이즈를 물었더니 다른 아파트에 있는 것을 떼어다 준다고 한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기쁜 마음에 계속 기다렸으나 역시 오지 않는다. 덕분에 하루 종일 기다리다 볼 일 다 봤다. 다른 매니저에게 내일 오라고 말해달라고 부탁했으나 내일 방충망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섯시가 넘어서도 비가 멎지 않아 바람도 쐴 겸 야채와 계란을 사러 나갔다. 네 시쯤만 되면 나가자고 조르는 딸기도 가방에 넣어 함께 갔다. 내일 남편 선배네 들릴 계획이기 때문에 선물로 만들어갈 케익을 만들기 위한 계란이다. 양파와 계란, 딸기를 사고 계산을 하는데 카운터의 주인 아주머니가 “안녕하세요?”하더니 500원을 깎아준다. 자주 와서 단골이라고 생각해서 일까? 이 때까지 중국 사람이 경영하는 줄 알았는데.. 이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혹시 내가 한국말로 실수한 게 없는지 이다. 깎아준 걸 보면 없는가 보지???

오는 길에 집 가까이의 사거리에서 픽업트럭과 승용차의 접촉사고를 목격했다. 사람은 다치지 않았는데 승용차 앞부분이 좀 망가졌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잠시 후 소방차 두 대가 요란스러운 사이렌을 울리면서 도착했다는 것.. 여기서 접촉사고 나면 이렇게 항상 소방차가 오는 걸까? 촌사람답게 흘끔거리면서 집으로 온다. 오기 전에 들은 얘기로는 사고가 나면 어차피 보험 처리를 하기 때문에 운전자들끼리 싸우지 않고 농담 따먹기를 한다고 그러더니.. 실제로 보니까 싸우지는 않지만 다들 인상을 푹푹 쓰고 있다. 역시 사람들에 따라 다른 상황이 되는 것이다.

돌아와 불려놓은 검정콩을 넣어 밥을 올리고 내일 가져갈 초콜릿을 뿌린 치즈케익을 만들었다. 저녁은 햄버거(남편은 질리지도 않는지 매 끼 햄버거를 먹는다. 정말 좋아하는 모양이다.), 미역국, 두부부침 등 그 동안 만들어두었던 반찬들을 다 꺼내 먹었다.

씻고 어머니와 컴퓨터로 수다를 좀 떨고 하니 11시가 되어 뉴스를 보면서 어제 남긴 와인을 홀짝거리고 있다. 딸기는 남편이 먹고 있는 팝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여전히 평화로운 밤이다. 뉴스를 마저 보고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