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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노는 날이다~!!!

새벽 5시 38분. 쉬는 날인데 더 일찍 눈이 떠져 컴퓨터 앞에 앉았다.
첫 번째 페리가 떠나면서 울리는 기적소리가 들린다. 여기도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 5시면 페리를 타려고 여러 대의 차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이사를 하고 정식으로 일을 시작한 지 오늘로 꼭 만 두 달이 된다. 처음 한 달은 오랜 만에 겪는 타이트한 생활에 적응하는 기간이었다면 그 다음 한 달은 어느 정도 일도 익히고 하면서 조금은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하는 것 같다. 지난번 강아지 미용실을 할 때는 그야말로 설렁설렁 운영을 했던지라 주 5일 근무에 하루 7시간도 잘 안 채우다가 하루 8시간을 꽉꽉 채워서 주 6일 근무를 하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시간이 빠듯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쉬는 날 하루에 미뤄둔 집안 일 좀 하고 시내에라도 나가 쇼핑이라도 하고 돌아올라치면 그냥 하루가 다 가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뭔가 좀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고 싶은 욕심이 또 생기게 된 것이다.
우리같이 돈 없고 배경 없는 이민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한 직장에서 계속 일하던 근무 기록이다. 이곳은 참 보수적인 사회여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집을 사려고 은행 융자를 받으려고 하거나 하다못해 신용카드 한 장을 발급받으려고 해도 첫 번째로 받는 질문이 현재 직장에서 ‘얼마나 오래’ 일했냐는 것이라고 한다. 은행 잔고가 얼마인지, 월급이 얼마인지보다 얼마나 오랫동안 성실하게 일했는지가 가장 큰 조건인 것이다. 그래서 계속 세금을 내고 고용보험을 들고 했던 기록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세금보고가 확실히 되고 주 48시간씩 일한 기록이 남으며 또 집까지 제공하는 지금의 이 직장은 우리에게 현재 최상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매일매일 반복되는 같은 일인지라 언젠가는 더 만족스러운 삶에 대한 욕심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일단은 이곳에서 최선을 다해 살자고 생각하고 있다. 일을 마치고 짬이 나면 최대한 자연을 즐기고 또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도 하고.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공부가 하고 싶어지면 필요할 기초 학문-수학이라던가- 을 함께 공부하려고 생각 중이다.)
남편은 몇 년간 가지고 싶어 했던 전문가용(??? 잘 모르겠다) 디지털 카메라 한 대를 드디어 장만했다. 아주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꽤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휴일에 동네 개들(여기도 물론 개 없는 사람들이 없다는.. –;;;)을 찍어주기도 하면서 사람들과 친해지고 또 이 사회에서 한 부분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쌓겠다고 한다.

요즘 마음이 참 편하다. 아침에 베란다 커튼을 열면 보이는 탁 트인 하늘과 산, 그리고 딸기 산책시키러 조금만 걸어 나가면 보이는 예쁜 바다도 일조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부터 왜 그 좋은 회사 그만두었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고, 여기 와서도 남편도 나도 왜 전문직들 때려치우고 이민 왔는지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렇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실 별로 대답할 말이 없다. 그냥 마음이 원했기 때문이랄 밖에. 묻는 사람은 잘 이해를 못하지만 그건 가치관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해를 구할 수가 없는 일인 것이다. 지금의 내 모습도 딱한 처지로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나름대로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나이 들어 늙을 때까지 내 식 대로 살다 갈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생각이 비슷한 남편을 만나 나에게 도저히 설명하기 어려운 질문 따위도 해주지 않고, 또 동반자로 지내고 있음을 고맙게 생각한다.

그 동안 우리의 휴일이면 계속 비가 오더니 오늘은 간만에 날씨가 좋으려나 보다. 햇살이 비친다. 오늘은 아침에 딸기를 산책시켜 놓고 나서 다운타운(우리가 2001년에 여행 왔을 때 지냈던 곳. 마치 서울의 광화문처럼 번화한 곳)에 나가볼까 한다. 캐나다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보다 자연이 좋다는 나라지만, 그래도 인공적으로 예쁜 곳이라면 다운타운이라고 할 수 있다. 간만에 차 없이 페리와 버스를 타고 한가로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내를 걸어 다녀 볼까 한다. 사진도 많이 찍어와야지. ^^


Ana (2004-04-01 15:51:59)
딸기를 두고 차 없이 나가려고 했으나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차를 가지고 슬슬 다녀왔다. 덕분에 딸기만 횡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