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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은 책들

어렸을 때부터 책을 너무 빨리 읽는 습관이 있어 항상 의식적으로 천천히 읽으려 노력중인데, 요 며칠 그런 걱정 안 하고 줄거리가 서로 엉켜도 상관없다는 심정으로 책을 몇 권 읽었다.
한국책들은 구할 수 있는 책이 꽤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뭐 기대를 크게 하지 않고 읽었지만 나름 즐거웠다.
 

2006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는 박주영의 <백수생활백서>. 책읽을 때가 가장 행복한 주인공이 필요한 만큼의 책을 살 수 있는 노동을 빼고는 의미없는 일 따위는 하지 않고 책을 읽으며 지내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의 생활태도가 나의 사고방식과 너무 비슷해서 (백수 체질인거냐;;) 즐겁게 읽었지만 막판에 가서는 책에 대한 불타는 소유욕에 물려버리고 말았다. (책도 물질적인 소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건 나만의 생각인가.) 이 소설 역시 많은 드라마들처럼 기본적으로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집안의 딸래미 이야기라 약간 공허하다. 그래도 꽤 참신하고 즐거운 인생관을 만나 좋았던 책. 근데 제목이 재미가 없다.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괜찮게 읽어서 읽어보기로 했는데 등장인물들이 원조교제하는 여학생들, 관능소설 작가, 공허한 생활에 지쳐 시작한 중년 에로배우 등이다 보니 책 전체가 좀 노골적…;;;이었지만 뭐 아예 막장으로 가지는 않는다. 포인트는 그들의 외로움과 너덜너덜해진 인생이야기라고나 할까. 라라피포란 제목의 의미가 재미있다. 길에서 마주친 외국인의 “a lot of people” 을 잘못들은 것.

<라라피포>와 마찬가지로 여러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어 각각의 주인공이 다르지만 결국은 그들간의 접점이 있는, 전체적으로는 연결된 이야기. 여고의 한반의 몇몇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각각의 시점으로 보는 자신의 모습과 다른 친구들(또는 그냥 학급 동료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냉정과 열정사이>는 그냥 그렇게 읽었지만 그래도 에쿠니 가오리는 잘 읽히는 글을 쓰는 것 같다. 요즘에는 그리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지내므로 나는 여고생일 때 어떤 모습이었을까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음.

이 소설은 에쿠니 가오리의 또다른 소설인데 개인적으로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 삼십대 중반이 넘도록 형제가 함께 살면서 주로 집안에서 하는 취미생활 – 직소퍼즐이라던가, 십자말풀이 – 을 즐기는, 또 휴가 때는 항상 어머니의 집을 방문하는, 그야말로 절대 매력없는 타입의 두 남자 이야기이다. 읽다보면 소위 매력있는 모습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약간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찾아보니 영화로도 만들어진 것 같던데, 과연 재미있을까.

그리고 영어판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하루키의 책은 소설보다 비소설을 더 좋아하지만 처음으로 읽은 영문판이라 한글로 번역된 일본책의 감칠맛을 느낄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이미 다른 책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하루키는 몇십년째 꾸준히 달리기를 해 왔기에 장편소설을 쓸 수 있는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즉 그에게 달리기는 단순한 취미 이상으로,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외로 작가들은 세간의 오해와는 달리 성실하게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달리기 이야기와 더불어 소설을 쓰기 시작하게 된 이야기나 또 재즈카페를 운영하던 이야기 등의 추억들이 적절히 버무려져 흥미롭게 읽었으나 3/4쯤 읽자 지구력이 꽤 떨어졌다. (10분 이상 뛰어본지가 너무나 오래된 저질체력인 내겐 보스턴 마라톤이든, 일본이나 뉴욕 마라톤이든 다 똑같아 보여 읽는 것도 중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