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이 휴일이라 지난 금요일부터 3박4일 캠핑을 다녀왔다.
캠핑장 주변에 알러지원이 있었는지 나흘 내내 계속되는 재채기에다 코도 꽉 막혀 좀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비교적 긴 일정이라 여유를 즐기면서 책도 두 권이나 읽고 잘 쉬다 왔다.
82년생 김지영 by 조남주
요즘 매우 관심 갖고 있는 내용인데다 쭉쭉 잘 읽히도록 쓴 필력은 좋았지만, 소설.. 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K씨가 관련 기사를 읽었는데, 빅데이터에 기반해서 82년생 여성 중 가장 많은 이들에게 붙여진 이름에, 공통적으로 겪는 내용들로 캐릭터를 구성했다고 한다.
암튼, 운 좋게(?) 남아선호사상을 가진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으며, 많은 여성들이 ‘도리’라고 부르는 스스로 씌운 굴레로부터도 자유롭다 자부함에도 불구하고, 상당 부분 내가 경험해 본 차별도 포함되어 있었고, 책에 묘사된 불평등과 차별이 너무 익숙한 이야기인 게 화가 났다.
싸워서 이겨야 하는 차별도 있지만, 스스로 깨야 하는 차별도 있다. 명절 즈음에 K씨에게 종종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왜 그렇게 많은 여성들이 시집/명절 스트레스를 참고 견디는지 알 수가 없다. 명절 노동을 거부한다고 해서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그 시간이 괴롭다고 느낀다면 거부를 해야 내 인생이 바뀌고 내 딸의 인생이 바뀌는 것인데. 만일 남편의 가족과 경제적으로 엮여 있기 때문에 그 스트레스를 겪을 수 밖에 없다고 항변한다면 그 문제는 단순히 여성문제가 아니라 노동경제학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요즘 여성문제 관련되어 이런 저런 기사나 글을 접하면서 뭐랄까, 눈이 뜨이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 지난 번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보고 난 후에 그랬던 것처럼, 나부터도 만연화된 성차별이나 이성 혐오를 인지하지 못했음을 깨달을 때 주로 그렇다. 어떤 매체든 예술 작품이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봐야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다.
무코다 이발소 by 오쿠다 히데오
이 책 날개에 요즘 주목받는 일본 작가로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그리고 오쿠다 히데오를 들고 있었다. 하루키 세대야 이미 원로가 된 것일테고.
이 세 사람 책은 모두 읽어봤는데 오쿠다 히데오 책이 가장 취향에 맞는다. 미야베 미유키 책은 아직 화차 한 권만 읽어본지라 잘 모르겠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가장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좋아지지가 않아 이제 그만 읽어야 할 것 같고.
문닫은 탄광 마을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꽤 귀엽게 그렸다. 안타깝게 볼 수도 있는 현실을 포장하거나 한탄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린 게 마음에 든다. 예를 들어 병수발하던 할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가자 병문안을 가고 오면서 혼자만의 자유시간을 즐기는 할머니의 모습이라던가, 청년단이 마을을 다시 부흥시켜보겠다며 축제 때 이벤트를 기획하지만 그다지 호응은 없었다던가 하는 내용들이 감정을 싣지 않고 담담하고 짤막하게 서술된다 ㅎ
어제 집에 돌아와 짐 정리 후 빨래를 두 번 연달아 돌리고 침낭들 건조기에 집어넣고 저녁을 먹으려고 앉았는데 마침 전직 대통령의 재판을 한다는 속보. 잠시 뉴스를 봤는데, 법정 안 광경이 참.. 씁쓸했다. 정리하고 청소하고, 밟아가야 하는 수순이지만…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