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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최초 연간 회원

일찍 눈을 뜬 토요일 이른 아침. 밖에는 비가 내린다.
벽난로를 켜고 여린 맛의 녹차를 우리고 잔잔한 음악을 틀어두고. 이럴 땐 비오는 토요일도 나쁘지 않다.

얼마전 돈 쓰는 재미에 살아야겠다고 농담처럼 말했던 게 농담이 아니었던가. K씨와 나 모두 올해의 Black Friday 쇼핑을 이미… (마쳤다..라고 써야 하는데…)

K씨는 원하던 사양의 컴퓨터 부품을 잔뜩 사서 조립하고 있고 나는 처음으로 운동 1년 회원권을 끊었다. 지금껏 직장에서 제공하는 무료 수업만 열심히 챙겨듣다가 한번에 큰 돈을 쓰려니 약간 망설여졌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서너번 이상은 운동을 하는 게 습관이 되어서 낭비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는 자신감에.

덥고 답답한 실내에 있는 것을 싫어해서 핫요가를 시도해본 적은 없었는데, 친구와 이웃의 강력 추천으로 $10에 한 주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체험기간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정작 가보니 이 곳은 일반적인 핫요가 스튜디오가 아니었다. 캐나다 전역에 프랜차이즈로 운영되는 곳인데, 요가 스튜디오라 불러야 할지 피트니스 센터라고 불러야 할지. 따뜻한 방에서 요가 수업 및 강도가 센 운동 수업을 제공하는 곳이다. 등록하면서 핫요가를 해 본 적이 없어서 걱정이라 했더니 자기들은 Infrared Heating이고 핫요가보다 온도가 약간 낮아서 괜찮을 거란다.

첫 날엔 스트레칭 중심의 요가 수업을 들어봤다. 따끈한 것이 기분이 좋았다. 핫요가가 무서운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그래서 다음날엔 피트니스 수업에 가봤는데 와.. 피트니스 수업 강도가 상당하다. 더운 방에서 시끄러운 음악에 빠른 템포로 jumping jacks, mountain climber, burpees, 뭐 이딴 걸 계속하고 있으려니 영혼이 탈출하는 느낌…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방을 탈출해 복도에서 찬 공기를 쐬었다. 정신 좀 차리고 다시 입실해서 운동 마친 후 강사에게 방 온도는 항상 같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그러면서 이 수업이 수업 중 가장 강도가 높은 수업이라고 한다. 아.. 그런 거였군…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많은 양의 땀을 흘린 후 이건 못 하겠다 생각하며 밖에 나와 집으로 향하는데 웬걸, 왜 이리 상쾌한 것이냐. 심지어 다음 수업이 기대되는 것이다. 결국 일주일 동안 매일매일 출석 도장을 찍었다.

이렇게 체험 기간을 꽉 차게 이용한 후 멤버쉽 문의를 해봤더니 마침 연간회원권 Black Fridayday Sale을 시작할 건데 원한다면 며칠 일찍 사게 해주겠다고. 그래서 덥썩 구매.

엄밀히 얘기해서 요가의 어떤 동작들을 활용할 뿐이지 요가 스튜디오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정말 좋아하던 Hatha 요가 강사 S(지금은 사랑을 따라 영국으로 가버림…)가 요가 스튜디오에서 강사가 손뼉을 치며 큰 소리로 운동 독려를 하다가 맨 마지막에 나마스떼 하는 거 들으면 기절할 듯 ㅋㅋㅋ
그래도 어느 정도의 피트니스와 요가의 스트레칭을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들의 취향엔 아주 잘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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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가 운동 다녀와서 씻고 고구마에 소이라떼 마시고 다시 소파 위로. 이제부터는 맘껏 뒹굴뒹굴할 예정. 그래, 이러려고 운동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