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내리는 어두운 휴일, 집

몇주전 휴가 때 읽은 책 중의 하나가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었는데, 첫 챕터를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거의 매일 불길한 느낌을 주는 강철빛 회색 하늘이 도시를 덮었다……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의 완벽한 배경이 될만한 하늘이었다. 아니면 종일 침대에서 뭉그적대는 날의 배경이 되거나.

겨울에 들어서면서 여행을 떠나야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내용인데, K씨에게 읽어주자 당장 하는 소리가 “밴쿠버 사는 사람이야?”

암튼 그런 계절로 들어섰다.   

그런 계절엔 역시 수프…

지난 주가 마지막 날이었던 여름 장터에서 늙은 호박을 사다가 호박스프를 끓였다. 양파, 마늘, 샐러리를 달군 팬에 볶다가 야채국물, 호박, 얌을 넣고 강황, 올스파이스, 넛맥등으로 향을 내서 끓인다. 호박이 다 익으면 블렌더에 갈아서 부드럽게 만든다.   

요 며칠간 이렇게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수프가 의외로 만들기 쉽고 보관도 쉽고 아침에 바로 데워 뜨끈히 먹기 좋아서 또 다른 수프를 만들어보기로. 

이번엔 브로콜리 감자 수프. 양파랑 마늘을 팬에 볶다가 야채국물, 감자 뚝뚝 썬 것, 브로콜리 밑둥을 넣고 thyme 약간을 넣고 15분간 끓임. 브로콜리 윗부분을 넣어 5분간 더 끓인 후 블렌더에 갈아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브로콜리를 처음부터 넣으면 색깔이 예쁘지 않다.) 파를 송송 썰어 얹어먹는다. 간단하게 먹기 좋은 수프. 

(두개 다 인터넷에서 찾은 레시피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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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동안 슬럼프여서 새로운 메뉴들 시도해본 것이 언제적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수프들이 의외로 성공을 해서 용기백배. 

서양 요리들이 (물론 복잡한 것들도 있긴 하지만) 잘 찾아보면 영양소도 풍부하고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레시피들이 많은 것 같다. 

일단 한국 요리는 밥과 밑반찬, 국들이 기본으로 들어가면서 메인요리가 더해지는데 국과 밑반찬만 해도 준비가 간단한 것들이 아니어서 전체적으로 시간도 오래 걸리고 더 손이 많이 간다. (우리는 한식으로 먹어도 김치 국 포함 일식 삼찬으로 먹는 편이지만…) 

매일 한식으로 먹는 집은 준비하는 사람에게 아주 감사해야 한다. 정말 오래 준비해서 먹는 건 잠깐이니…

암튼. 

요즘은 장도 매일 필요한 것만 한두가지씩 사와서 바로 조리를 해서 먹고 있는데 쥬키니 호박을 두 개 사서 하나는 스파게티 소스에 넣어먹고 하나가 남았다. 뭘 만들까 검색하다가 쥬키니브레드 당첨. 

혼자서 널브러져 있는 우중충한 휴일 오후에 차랑 먹기 딱 좋은 아이템. (사실은 마침 재료가 집에 다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었지만.) 

건강버전의 쥬키니브레드. 계란, 바닐라 에센스 (재작년인가 작년에 대단히 베이킹을 할 줄 알고 큰 병으로 샀으나 그 이후 뭐 구운 적이 없어 아직 새거. 다행히 유효기간은 내년이다), 올리브유, 설탕을 휘젓고 채친 통밀가루, 계피가루, 넛맥, 베이킹파우더, 베이킹소다를 섞은 후 얇게 채썬 쥬키니호박과 굵게 다진 호두를 모두 섞어 한숟갈씩 머핀틀에 넣고 30분 정도 굽는다. 

굽기 전. 내가 요리법을 찾는 기준은 쉽고 간단하고 무엇보다 설거지가 쉬운 거. 유산지 깔아줘야 함. 

구운 후.

원래는 파운드케익처럼 굽는 건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하니 그냥 숟갈로 조금씩 떠서 구웠다. (그럼 시간이 반 밖에 안 걸림)

반으로 쪼개 봤어요. (똑같지만.) 

호박 씹히는 맛도 나름 괜찮고 호두를 듬뿍 넣은데다 계피나 넛맥같은 향신료를 좋아하는 터라 맛있게 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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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는 오늘 심기가 별로다. 어디가 불편한지.. 많이 가려운지.. 

우여곡절 끝에 알러지검사 결과를 받아서 양고기, 계란, 밥만 먹이는데 (야채는 쥬키니 호박, 브로콜리, 당근) 처음엔 괜찮더니 몇주 연속 먹이니 또 좀 가려워하는 것 같다. 

검사 결과 상 그동안 자주 먹였던 소고기와 칠면조에 가장 큰 반응을 보였는데 그냥 단백질원을 이것저것 번갈아 먹이면 되는 거였나. 이럴 거면 알러지 검사 왜 했냐고… 돈 아끕 ㅠㅠㅠㅠ

그럴 수도 있고 요즘 몇주째 비가 와서 잔디밭에서 뛰어놀지 못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기분이 좋지 않아.(깔때기와 한 몸.)


뫅뫅 가려워 해서 폴맘님이 보내주신 스프레이 뚜껑을 여니 ㅈㄹㅂㄱ. (이런 표현을 쓰고 싶진 않지만 실제로 보면 그렇습니다..) 발라주면서도 난리난리. 그렇지만 바르자 마자 조용해집니다. 바르면 시원하니 좋다는 걸 알텐데 왜 난리를 치는 걸까요. 암튼 현재는 이쁜 딸기 모드.

오늘의 풍경은 대강 이런 모습입니다. 

장갑은 두 짝이라서 지겨워도 두번 떠야함. 

얼른 뜨고 모자를 뜰 생각. 나이가 드니 머리가 시리네요. ㅠㅠㅠㅠ  

6 thoughts on “비내리는 어두운 휴일, 집

  1. 바람

    뭔가 포스팅속에서 겨울내음이 나기 시작하네요..
    여기도 오늘 날씨가 흐려요.
    밤새 바람이 휭휭불더니 오후늦게 빗줄기가..ㅋ
    전 기침이 이주넘게 멎질않아서 죽겠습니당.ㅜㅜ
    날도 요모양이니 컨디션 안좋은데 몸이 더 무거워요.
    (아님 살쪄서 무거운건가..^^;;;)
    직접 구운 빵이랑 스프~ 넘 맛나보이네요.
    전 사온 모닝빵에 인스턴트 스프라두 묵어야겠삼.ㅋㅋ
    뜨개질 그래도 꾸준히 하시는걸요?
    딸구씨 힘내~~ 션한거 발라줄라는데 반항하지말구~~
    근데 보면 애들이 기본적으로 뭔가 뿌리거나 바르는걸
    일단 거부하고보더라구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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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기맘

      근 한달만에 답글다는 이 게으름;;; 기침은 어째 좀 좋아지셨나요;;;;;;
      저 빵은 사온 거예요 ㅋㅋ 게으름에다가.. 아무래도 전문가들이 저보다 빵을 더 잘 굽는다는 결론이? ㅎㅎㅎ
      뜨개질을 넘 열심히 해서 요즘 딴 걸 다 제쳐놔서 좀 조절하려구요. 손목도 좀 시큰거리고 목도 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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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트니맘

    언제봐도 부러운 딸기네 벽난로~^^

    딸기야 스프레이 뿌리는거 넘 싫지?칙칙~소리도 감촉도
    싫을거같아요.트니도 그러더라구요.
    그 스프레이가 안티트러블인가요? 그렇담 반신욕할때
    조금 넣어서 해줘도 좋다고 만드신분이 그러더라구요.
    트니도 피부 안좋을때 안티트러블 꼭 넣어서 반신욕 해줬었다는.
    날씨 영향 애들도 많이 받잖아요.날씨때문에 심리적인 요인까지
    겹쳐서 더 가려워하나 에궁 걱정이네요.

    맞아요.한식 넘 손많이가죠. 그리고 몇가지가 있어야 차린거 같고
    먹은거 같으니 한국아줌마들은 끼니때마다 걱정이 큰거 같다는.ㅋㅋ
    그래도 한식 안먹으면 먹은거 같지 않아서 전 일단 기본적으로 밥!
    밥을 넘 좋아하는듯.ㅋㅋ 언젠가 터빠랑 우린 외국서 못살지 싶다고
    밥 국 김치 못먹으면 우울증오지 싶다고 ㅋㅋ 그러다 하긴 딸기맘님네는
    그래도 한국서 사는거 못지않게 잘 해드시고 사시더라 그런 얘기를 했던
    적이 있다는.ㅋㅋ

    날씨가 구려도 마음만은 구리지 않게 밝게 활게차게 생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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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기맘

      반신욕 물에 풀어도 되는군요.. (근데 손떨릴 듯..?)
      스프레이 소리가 싫은가 하고 솜에다 찍어서 발라줘도 냄새 맡는 순간 난리 난리..이궁.. 안 보이니 더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것 같아 좀 가엾기도 해요. ㅠㅠ
      한참 밥 안 해 먹고 편하게 살다가 (쌀이 떨어지지가 않음?) 딸기아빠가 급 쇠약해지는 것 같아 다시 밥하기 시작했네요. 어젠 가을 무 사서 무밥이랑 무생채 해먹었더니 맛있더라구요.. (무 썰면서 엄청 집어먹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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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폴리맘

    스프스프스프….침이 막 콸콸콸 (스프에 빵찍어먹는거 완전 좋아함. 밥도 말아먹;;)
    정말 준비하는데는 하루 종일 걸리고 먹는건 순식간이라;;; 노동시간대비 사먹는값이 싸다고 느끼는..(먹고난 그후의 설거지는 또 얼마며;;;)
    딸맘님은 정말 이것저것 열심히 해드시니 존경스러움!

    에궁 딸기 많이 힘든가유;;; 폴리도 뿌릴때 질색팔색난리라 화장솜에 뿌려서 발라드려야 그나마 가만히 계심;;; (냉장고에서 병 꺼내기만해도 눈치까고 줄행랑)
    긍데 냉장보관 잘 하믄 꽤 쓰기는 하는데 안티트러블이 보존제같은거 없어서 기한이 서너달정도인걸로?(보관 잘하믄 좀더 쓰구) 보낸게 꽤 된듯하야;;
    에효…딸기씨 힘들어해서 무려 알러지검사까지했구먼. 돈 아끕긴 하지만 그래도 안해봤음 내내 미련이 남았을지도…
    딸기야..어디가 힘드니, 뭐가 힘드니, 말 좀 해주련…이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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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기맘

      밥을 스프에 ㅋㅋㅋ (웬지 저도 그런 기억이 있는 듯 한 건 왜일까요.. 오뚜기 크림스프에다가..;;) 정말 사먹는 게 퀄리티만 보장된다면 노상 사먹고파요. (근데 외식이 넘 비싸서 엥겔지수가 지붕을 뚫을 기세;; 이번에 가 보니 한국 외식비용도 예전만큼 만만하진 않은 거 같더라구요.. 흑..)

      저 스프레이 기한이 서너달이군요. 무척 아껴서 (한번 뿌려 넓게 바름;;) 쓰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조금 더 발라줘야겠네요.
      알러지 검사는 진정 마음의 평화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ㅠㅠ 근데 요즘 밥먹고 발갛게 몸 뒤집어지는 건 잘 없는 것 같아 알러지 검사 덕 봤다고 일단 생각하기로..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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