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 토요일
새벽에 잠을 깨 일기를 쓰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가 8시쯤 다시 일어남. 호텔 침대는 꽤 편안했다. 방안이 좀 건조해서 가습기가 아쉬웠지만 뭐 여행자가 다 갖출 수 있겠어.. 대신 수건을 적셔서 널어놓고 잤다.
어제 점심때 먹었던 살라미 샌드위치 반쪽이 남아서 싸왔는데 밤에 비닐봉투에 담아 호텔 방 창문 모기장과 유리창 사이에 끼워놓고 잤었다. 냉장고가 없어도 잘 사는 우리 부부.
아침에 K씨가 빵을 봉투째 뜨거운 물에 넣어 데워서 차와 함께 간단히 먹었다. (전자렌지가 없어도 마눌 따뜻한 빵 먹이는 울 남편 ㅎㅎ) 커피의 도시에 와서 커피 한 모금 못 마시고 가는 게 아쉽지만 그닥 땡기지도 않아 다행.
오늘은 버스를 타고 다운타운으로 가기로. 버스 안은 아이들과 함께 주말을 보내러 나가는 엄마들 아빠들로 시끌벅적. 시애틀 다운타운은 밴쿠버와는 달리 주말은 확실히 주말다웠다. 대부분의 식당과 커피샵이 닫혀있었다.
첫번째 들러본 것은 시애틀 공립도서관. 왼쪽의 커다란 건물이 도서관이다. 특이한 외관으로 엇갈린 평가를 받는 건물.
유리창으로 자연채광이 되는 게 참 좋아보였다. 비가 와도 운치있을 듯?
각층 사이가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했지만 완만한 경사로 이어져 굳이 계단을 통과하지 않고도 아랫층으로 계속 돌아내려갈 수 있다.
공조시스템인가..
책을 둘러보면서 북미의 어린이들 청소년들이 부모와 함께 도서관에서 자연스럽게 고전을 읽으며 자라는 환경을 부러워했다. 지금 자라는 어린이들도 새로나온 책은 물론 호빗 (1920년대), 닥터 수스 (1930년대) 같은 책이며 아치 만화 (1940년대) 등을 자연스럽게 읽고 있고, 따라서 기성 세대와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1940년대 만들어진 배트맨 캐릭터를 비롯 여러 오래된 수퍼히어로 캐릭터들이 아직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고. 오랜 시간을 거슬러온 다양한 작품을 읽다보니 문화 이해의 폭도 넓은 것 같다.
역사가 길면 뭘 하겠는가. 거기서 생겨난 문화의 양분을 다음 세대가 이어받지 못한다면. 한국 어린이들에게 길창덕이나 박수동의 만화가 아직 사랑을 받는다면 멋질텐데. 문학도, 음악도 너무 수명이 짧다.
뭐.. 길게 얘기하면 슬퍼질 뿐.
.
한참을 도서관에서 놀다가 바닷가쪽으로 내려왔다. 골동품 가게를 둘러보고 (오래된 것을 오래 보존하는 것도 좋지만 베트남전 때 군용 식품 깡통은 도대체;;) 바닷가에 있는 유람차도 잠시 바라보고 하다 점심을 먹으러 시장으로 향했다.
파이크 플레이스 시장은 바닷가에서부터 시작되는 가파른 언덕에 세워진 건물이라 계단 (156개라고!) 을 헥헥대며 올라가야 했다. 아랫층부터 봤어도 좋았겠지만 일단 요기를 해야겠기에..
점심은 이 시장의 명물인 러시아 빵으로. 나는 연어 빵, K씨는 바바리안 소시지 빵. 연어빵은 연어빠떼, 크림치즈로 필링을 넣어 내 입맛에 딱이었음.
저 뒤에 보이는 스타벅스가 1호점 스타벅스인데, 커피도 못 마실 뿐더러 스타벅스 커피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지나침.
밥은 시장에서 약간 걸어나오면 있는 바다가 보이는 공원에서 먹었다. 시애틀 장점 중 하나는 앉을 자리가 여기저기 많다는 것. 밴쿠버도 그런 편이긴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시애틀 의자들이 더 새 것 같았다.
.
생강을 먹으면 속이 편해져서 마셔보기로 한 진저비어. 그러나 레몬맛이 생강맛보다 진해서 그냥 그랬다. 생강 덕에 속이 좀 뜨끈해지긴 했음.
밥을 먹고 시장구경을 대강 하고 (시장에 작은 가게들이 많긴 했는데, 대부분이 관광객 대상의 허접한 가게들이라 재미가 별로 없었다) 다시 시애틀센터 쪽으로 돌아가 EMP (Experience Music Project) 박물관에서 놀기로. EMP박물관은 음악, 공상과학, 팝컬쳐 관련 전시를 하는 곳이다.
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
입장권을 구입하고 탐험 시작. (찾아보니 온라인으로 구매하면 저렴하게 살 수 있었는데.. 미리 조사를 안 하고 계획없이 갔더니 이래저래 돈이 나가는구나.. ㅠㅠ 하지만 여행 결정을 이틀 전에 한 걸 어쩌겠나..)
새로 시작한 전시 하나가 왕좌의 게임 북쪽 얼음벽 엘리베이터 4D 체험이라 거기부터 갔는데 대기 시간이 엄청 길었다. (사실 줄 자체는 안 길었는데 줄이 안 움직임..) 1시간 이상 걸릴 거란 말에 과감히 포기하고 다른 곳부터 보기로.
상설 전시물인 기타탑.
.
특별전시로는 인디게임 전시회를 하고 있었는데 모든 게임기에 어린이들이 붙어있어 그냥 양보하고 다른 전시를 보러갔다.
지미 핸드릭스 런던 공연 전시랑, 너바나 전시 (커트 코베인이 때려부순 기타들;;) 등을 보고.. 호러영화 전시도 보고. (새벽의 황당한 저주 Shaun of dead에서 주인공이 입은 셔츠, 샤이닝에서 사용된 도끼 등등;) 난 공포영화를 잘 못 보지만 그래도 전시는 재밌게 봤음.
3층엔 사운드 랩.
이렇게 기타도 쳐보고 드럼도 쳐보고 사운드 믹싱도 해보고 악기랑 관련 기계들 가지고 노는 곳. 역시나 애들이 많아서 조금 놀다 나왔다. 다시 왕좌의 게임 체험하는 곳에 가봤더니 오늘은 마감이라고. 내일 올 수 있으면 리턴티켓을 받아가라 한다. 숙소가 바로 옆이니 냉큼 받아서 챙겼다.
멋지구리한 EMP건물.
.
실컷 놀다보니 출출해져서.. 저녁을 먹으러.
저녁은 월남국수. (창문에 푸른 조명이 있어서 국수 색이 무섭게 나왔..) K씨는 소고기 국수, 나는 닭고기 국수. 육수가 꽤 맛있었다.
날도 추웠었고 그동안 국물요리를 전혀 못 먹고 지냈어서 감동하며 열심히 먹었다. 먹고나서 후폭풍 (조미료의 습격)이 걱정되었으나 다행히 조미료를 많이 안 넣은 것 같았다.
행복한 마음으로 호텔로 돌아가 씻고 TV를 보려고 했으나 피곤이 몰려와 곧 잠들어버렸다. K씨는 마지막날이라는 아쉬움 때문에 늦게 늦게 자려고 노력했다고 ㅋㅋ
1시간 줄..ㄷㄷ
외쿡 사람들은 참 끈기있게 줄 잘 서있는 듯.
도서관 참 크고 좋아보이네용.
저도 고양시 살면서 좋은 점 중 하나가 공원 많은거랑 도서관 다니기 좋다는 건데
구비된 책은 살짝 아쉬워요.
글게요. 뭐 기다리는 거 잘들 하는 것 같죠 ㅎ
고양시 도서관도 좋군요. 책을 빌리고 읽으러 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도서구매에 돈을 더 쓰게 될텐데.. 앞으로 그렇게 되길 바라보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