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민 생활도 3년하고도 10개월째에 접어든다.
외국생활에서 가장 힘든 부분? 당연히 언어다.
좋을 땐 좋지만 작은 문제라도 발생하면 일단 기죽고 들어가게 되는 거다.
한국에서 영어를 꽤 써야하는 직장에 다녔지만 워낙 게을러서 일에 필요한 부분 외에는 갈고 닦지를 않았다. (영어 관련 일을 하게 된 것도 정말 장족의 발전이었다.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만 해도 영어와 운전은 내 인생과 상관없을 줄 알았다. 3학년이 되도록 토익책 한번 안 들여다 보다가 4학년때 발등에 불 떨어졌다. 정말 인생 장담하지 말아야 한다. 회사에 처음 들어가서 첫날부터 영어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데 진땀이 흘렀다.)
그래도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일단 몇년 지나고 나니 영어로 대화하는 일에 있어 쫄지는 않게 되었다. 게다가 나의 업무상대는 대부분 비영어권 국가들이어서 통로는 영어였지만 서로 쉽게 가자는 암묵적인 약속이 되어 있었다.
이민을 온다고 하니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일이나 여행에서 영어로 불편을 겪은 일은 별로 없지만 것도 내 돈 쓸 때 얘기지 남의 돈 벌려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출발을 몇 달 앞두고 갑자기 청취반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싶다. 그 시간에 엄마아빠와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보낼 걸 추운 겨울밤에 강남역에 꾸역꾸역 와서 조급한 마음으로 안 들리는 미국 티비 뉴스를 인상써가며 듣고 있었으니.. 참..)
캐나다에서의 첫 직장은 2주 다니다 짤린 한국인 사업체였다. 당연히 영어는 전혀 필요가 없었다.
다음엔 사업을 해보겠다고 얼마 안 되는 가산을 털어 무너져가는 애견미용실을 인수했다. 처음부터 영어에 문제없는 친구와 함께 시작했으니 뭐 나는 열심히 개 목욕이나 시켰다. 워낙 개를 좋아해 재미는 있었지만 혼자 해야하는 사업을 둘이 나눠먹으니 수지가 너무 안 맞아 6개월만에 손들고 친구에게 넘겼다.
그 다음엔 남편과 함께 한국인 사업체지만 영어를 써야하는 그로서리에 취직했다. 그래봤자 가장 많이 늘은 영어는 담배 이름.. 카드 승인 안 됐다.. 백 줄까 등등..
1년 좀 넘게 일하니 남편도 나도 캐나다가 좀 익숙해졌다. 이전엔 닥치는 대로 일을 찾았지만 이제 하고픈 일을 한번 시작해보려고 알아봤다.
생각하다 보니 한국에서도 사내 도서관에서 한가롭게(그 분에겐 미안하지만 내겐 그렇게 보였다. 본인도 나름의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정리하던 분이 부러웠던 게 기억났다. 그래서 도서관에 지원해보기로 했다.
운좋게 어찌어찌 도서관에 취직이 되었다. 비정규 파트타임이지만 너무 기뻤다. (근데 알고보니 무지하게 노가다다. 하루에 들어오는 책량이 엄청나고 그걸 책꽂이에 도로 갖다 꽂는 일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좀 내공이 쌓이면 체크아웃 데스크서 사람들을 도와준다. (물론 책도 여전히 꽂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농담을 많이 던진다. 나이든 분들이라 더 알아듣기가 힘들다. 그냥 미소를 짓는다.
물론, 여기도 조금 지나면 업무상 쓰는 말에는 곧 익숙해진다.
그런데 직장동료들의 수다수준이 너무 어렵다.
처음에는 다 알아듣는 척 했다. 아니면 열심히 일하느라 못 듣는 척.. 나 영어 못하는 거 알고 쟤들이 깔볼까봐 겁이 났다. 도서관에 다니는 애들이라 책 얘기 영화 얘기를 많이 하니 더 돌겠다. 어릴 때부터 자기들이 읽어온 책인데 나는 전혀 모른다.
가끔씩 손님들이나 동료들이 얘기하다가 잘 안 통하면 Never mind할 때 가장 상처를 많이 받았다. 뜻은 신경 쓰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괜찮다, 는 뜻을 가진 표현이지만 괜시리 혼자서 “됐어.. 말이 안 통해서리~”라고 대답하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해가 바뀌고 애들이랑 어느정도 친해지니까 얘들이 나에게 애정 – 이라기 보다 친구니까 말을 잘 못해도 귀엽게 봐 주는 것 – 이 생긴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못 알아들으면 꼬치꼬치 물어본다. 알아듣는 척하는 것도 미안해서.. 그러면 웬만하면 최선을 다해 설명해준다. 동료 중 하나는 거의 <오늘의 한마디>식으로 알려주는 데 희열을 느끼고 복습까지 시킨다.
나도 예전보다는 말하는 게 훨씬 나아졌다. (사실 동료들이 그렇다고는 하는데 얘네들이 워낙 칭찬에 관대해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적어도 내가 유창한 척 하지 않고 천천히 말할 때 상대방이 더 잘 알아듣는다는 진리를 익혔다.)
4년 간의 이민 생활을 통해 영어측면에서의 발전은 못하면 못하는 대로 천천히가 정답이다라는 것.
암튼, 얼마전 이 내가 죽기보다 싫어하던 Never mind라는 말을 내가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바쁜 어느 날, 이란 할아버지 한 분이 책을 빌리시는데 늦게 가져온 벌금이 있었다. 그걸 알려주는데 못 알아듣고 계속 다른 얘기만 하신다. 어차피 꼭 그 때 내셔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It’s okay, never mind. 했다. 근데 순간 나도 내 말에 놀란다. 내가 그렇게도 싫어했던 그 말을 것도 영어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내가 귀찮은 듯 해버리다니.
너무 미안했다. 여전히 (never mind라는 말도 못 알아들으신듯 한) 다른 말씀을 하고 계시는 할아버지에게 화면을 보여주며 단어 하나씩 얘기하니 드디어 감이 잡히셨나 보다. 활짝 웃으시면서 벌금을 내고 가신다.
나 혼자만 그 표현에 유감이 있는 거겠지만 그래도 식은땀이 날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스스로 창피하기도 하고..
여전히 게을러서 영어공부도 따로 하지 않고 이렇게 한국어 공부에 정진(-_-)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영어 이전에 겸손하고 착한 사람이 되자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