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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연휴 캠핑

몇 년 전부터 BC 주립공원 캠핑장 예약이 어려워지면서 (업자들이 대량 예약을 한 후 개인에게 판매한다고 함) 올해부터 예약제도가 일부 변경되고, 캠핑장에서는 예약자와 실제 숙박자 이름을 대조하기도 한다고. 인구도 늘고 자원이 예전만큼 널럴하지 않으니 제도들이 조금씩 빡빡해지고 있는 것.

캠핑장 예약이 어렵다는 기사. 마침 우리가 예약해둔 캠핑장이다 ㅎ

1월에 미리 예약을 해 두었는데, 2주 전까지만 해도 추워서 캠핑을 취소할까 생각했었다. 날씨 안 좋으면 고생이라. 게다가 그 기간 동안 쉴 예정이었던 K씨가 갑자기 근무를 하게 되어 첫 날 도착이 어렵게 되었다. 둘째 날 오전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전체 일정이 취소되기 때문에 공원 측과 통화를 해보았는데, 오후까지는 어떻게 미뤄줘도 저녁 도착은 안 된다고.
이렇게 되니까 갑자기 청개구리 본능이 발동. 좀 먼 곳이라 내가 먼저 출발해서 자리를 잡고 K씨는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와야 하나 등등 이리 저리 궁리를 하던 차, K씨 동료가 스케줄을 커버해주기로 해서 일단은 떠나보기로.


짐은 전 날 얼추 싸두었지만, 당일에 둘 다 퇴근이 좀 늦어져서 집에 와서 부랴부랴 얼려둔 생수병과 과일 등을 챙겨서 출발. 저녁은 가는 길에 식당에서 먹었다.

도착하니 이미 9시 반,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한다. 전날 늦게까지 준비하고 당일 근무하고 서둘러 온 터라 지쳐서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찌감치 일어나 5분 거리의 타운에 가서 아침식사.

간만의 맥도널드. 아침 메뉴가 조금은 다양해졌다. K씨는 베이글 샌드위치, 나는 토마토와 페타치즈 랩.

이 날 아침부터 부지런을 떤 이유는 캠핑장에서 약 30분 거리인 Joffre Lake에 하이킹을 가기 위해서였다. 이 코스에서 보이는 호수의 풍경이 아름다워서 인스타그램에 많이 올린단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많아져서 주차도 어렵고 등산로가 시끄럽다는 불만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한 번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 캠핑장을 예약한 거기도 했고.

서너 시간 코스라고 해서 아침을 먹고, 물과 그라놀라바도 든든히 챙겨 갔다. 그런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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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쌓인 눈이 얼어 있어서 너무 미끄럽다.. 그래서 길 옆으로 갈라 치면 50센티 미터 정도 아래로 발이 푹푹 빠진다.

눈 대비해서는 전혀 준비 없이 온지라 당황했지만, 일단 맨 아래 호수까지 엉금엉금 가 본다. 이 코스엔 호수가 세 개 있는데, 주차장 레벨에 하나 있고, 윗쪽으로 두 개가 더 있다고 한다.

호수도 안 녹았어…

망연자실 호수를 잠시 보다가, 그래도 한 번 올라가 보자고 엉금엉금 가는데, 아까부터 멀리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나더니 한 그룹이 내려오고 있다. 끝까지 갔었냐고 물으니 중간까지 가다 안 되겠다 싶어 내려오는데 미끄러워서 너무 힘들었다고. 나던 소리는 넘어질 때 비명 소리였나보다.

아쉽지만 훗날을 기약하기로 하고, 우리도 발길을 돌렸다. 입구까지 또 엉금엉금 나오는데, 우리처럼 제대로 채비를 하지 않고 온 사람들이 안쪽 길 어떠냐고 묻고.. ㅎㅎ

주차장에 와 보니 여기가 지금 어떤 조건인지 알고 온 사람들이 스키를 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직은 스키를 타야 하는 거였구나.

스키 타려 준비하는 사람들.


약간은 허무한 마음으로 타운에서 간단히 장을 봐서 캠핑장으로 돌아간다.

집에서 썰어간 참외, 집에서 갈아 빈 맥주병에 담아간 수박 주스. 거기에 동네 가게에서 산 빵과 샐러드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책을 읽고 쉬다가 캠핑장 근처에 있는 폭포에 가보기로. 왕복 한 시간 정도 코스라고 한다. 가는 길은 왼쪽으로는 계곡이고 오른쪽은 산. 완만하고 쉬운 길이다. 길 끝에서 폭포를 볼 수 있다.

주인과 함께 폭포 구경하는 멍멍이들

폭포 소리는 시원한데 워낙 날이 뜨거워서 더웠다. 날씨가 어찌 이리 극단적인지.

땀을 찔찔 흘리고 다시 사이트로 돌아가, 맥주를 한 잔 마신 K씨는 낮잠을 자고 나는 책을 읽었다. 저녁 때 동네 렉센터에서 샤워를 하기로 했다. 자전거로도 갈 수 있는 거리지만 해가 뜨거워서 그냥 차를 몰고 감. 샤워 비용은 인당 $3.50. 여름에 큰 규모의 뮤직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동네라 (올해는 주최측이 부도나서 취소됨. 얼마 전 꽤 큰 뉴스로 보도되었다.) 유료 샤워가 가능한 듯.

씻고 주변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가기로. 타운에서 한 10분 정도 떨어진 주택가에 평이 좋은 타이 식당이 있어 가보기로 했다.

너무 달아서 약간 걱정이 되면서도 매콤한 음식들과 잘 어울려서 항상 주문하는 타이 아이스티. 뒤로 보이는 눈덮인 산의 풍경 – 캬.

저녁 영업 시작하자마자 들어가서 바깥쪽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샤워 마친 후라 선크림도 안 바른 상태였지만… (피부는 이미 망했나 ㅠㅠ)

구운 돼지고기 샐러드

이 날 추천 메뉴라는 샐러드를 주문. 상당히 맛있었다. 함께 나온 찰밥은 샐러드 소스에 비벼 먹으라고 하심. 샐러드 외에 다른 메뉴들도 괜찮았음.
참, 여기 일하시는 분이 아주 친절한 한국분이셨다. 하지만 주인들은 타이 사람이라고. 밥 먹고 있는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과 앉아있는 사람들이 서로 다 알고 얘기 나누는 걸 보니 역시 작은 마을이구나 싶었다.

든든히 저녁을 먹고 캠핑장으로 돌아가 와인을 마시면서 어둑해질 때까지 책을 읽고, K씨와 읽은 책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나는 낮부터 시작된 재채기와 코막힘으로 티슈를 엄청 소비하고. 그러다 잠자리에 들었다. 밤 동안에도 티슈 소비는 계속되었다… ㅎㅎ


다음 날 아침은 동네 커피샵에서 간단히 먹기로.

K씨는 파니니, 나는 구운 야채 랩. 큼직한 잔에 든 커피와 함께 먹었다.

아침을 먹고 있는데 어제 타이식당에서 일하시던 한국분이 쑥 들어와 우릴 보고는 인사를 꾸벅 하시더니 커피를 사가심 ㅎㅎ 역시 작은 마을에선 자주들 만난다.

캠핑장에 식수용 펌프 (그나마 흙이 섞여 나오지만, 마실 수는 있다고 한다.) 외에는 따로 물이 없어서 커피샵에서 간단히 얼굴에 물도 묻히고.

커피샵 게시판에 재미있는 곰 주의 경고문이 있었다. 좀 떨어진 하이킹 트레일에 곰 여섯마리가 출몰하는데 얘들이 가방을 뺏어간다고 한다 ㅋㅋㅋㅋㅋㅋㅋ 암튼 그 쪽 트레일엔 가지 말라고.


이 날은 도서관 옆에 주차를 해 두고 자전거로 주변 트레일에 다녀보기로 했다. 주차장 옆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미니 산악자전거 코스가 있었는데, 전 날부터 궁금해하던 K씨 출격;

ㅋㅋㅋㅋㅋㅋ


타운에서 숲을 따라 조금 들어가면 One Mile Lake 산책로와 연결된다. 자전거를 타도 된다고. (트레일마다 입구에 각기 개들은 들어갈 수 있는지, 말, 자전거, 전동자전거 등이 다닐 수 있는지 표시되어 있다.)

벤치가 예쁘지만 앉아있으면 당장 모기들이 덤벼든다 

꽤 풍경이 아름답고 물 위를 다니는 듯한 기분도 특이해서 (겁많은 나는 심장이 쫄깃쫄깃해지곤 했지만..) 몇 바퀴나 돈 후 점심과 저녁거리 장을 봐서 다시 캠핑장으로.

날도 덥고 굳이 불을 피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는데, 코를 하도 풀어대서 코 주변이 다 헐어버린 마눌을 먹일 생각이었는지 K씨는 장작불에 구울만한 생선들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저녁 때까지 이런 저런 군것질을 하면서 맥주를 마시고. (나는 사실 냄새와 맛을 느낄 수가 없어서 좀 슬펐다 ㅠㅠ) 내내 코가 막혀있던 나는 K씨가 물을 끓여주어 훈증을 하고는 약간 숨쉬기가 편해져 그 참에 잠깐 낮잠도 자고.

저녁을 먹고는 불을 보며 앉아있다가 또 일찌감치 잠자리로.


떠나는 날 아침엔 캠핑장에서 커피를 마셨다. 작년에는 원두에다 커피 갈고 내리는 살림까지 다 챙겨 다녔지만, 올해는 간단히 스타벅스 가루커피 몇 개 챙겨간다.

집으로 가는 길에도 들러보고 싶은 곳들이 있어서 그라놀라바로 아침을 때우고 짐을 챙겨서 일찌감치 캠핑장을 빠져나왔다.

떠나기 전 어제 자전거로 돌았던 호숫가 아침 산책.

비행기 지나간 자국인지… 하늘에 있는 것도 물에 비친 것도 예쁘구나.

Pemberton을 떠나 Whistler로 향한다. 하이킹 코스도 많고 관광타운이라 점심 먹을 곳도 많다.


Green Lake

가는 길에 들른 호숫가의 의자들이 예뻐서 가보려고 했으나 사유지란다.. 쳇. 그 옆에 있는 벤치에서는 동네 할머니들이 해바라기 하시고.


Whistler 타운은 완전 관광지로 예쁘게 꾸며놓은 곳인데, 연휴라 그런지 어디나 북적북적.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보드와 산악자전거를 타기 위해 곤돌라에 오르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홈메이드 파스타를 파는 곳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예전에 한 번 가봤던 구석의 작은 집인데, 메뉴가 아주 간단하다. 식당보다는 집에서 먹는 듯한 푸근한 맛이다. 만족스러운 점심을 먹고, 카푸치노까지 한 잔 사서 근처 공원에서 마시고 가려고 표지판도 없는 작은 동네 공원에 들어갔는데, 의외로 호수들을 잇는 자전거 도로가 너무 잘 되어 있다. 커피를 원샷하고 자전거를 꺼내 한 시간 정도 재미있는 라이딩.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연휴 마지막 날이라 종종 막히긴 했지만 그래도 음악 들으며 비교적 수월하게 집에 도착. K씨는 캠핑 다녀온 날 저녁은 좀 잘 먹고 싶어하는데, 이 날은 한국마트에서 광어회를 떠와서 먹음. 덕분에 게으름뱅이인 나도 잘 먹었네.

캠핑 다녀오면 빨래며 정리가 한참이라 이 귀찮은 걸 왜 하고 있나 싶다가도, 다음 캠핑은 어디로 가볼까 궁리하고 있는 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