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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되살려 2019년의 Garibaldi Lake 백패킹 기록

며칠전 다녀온 백패킹이 힘들긴 했지만 좋았는지 계속 생각난다. 가장 기뻤던 건 K씨랑 사이좋게 또 기분좋게 다녀와서다. 아마도 지난 백패킹 때 그러지 못해서겠지. 씁쓸하게 다녀와 기록조차 제대로 남기지 않았던 2019년 7월의 그 백패킹을 이제 기록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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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는 Garibaldi Lake 트레일. 왕복 18.2Km에 972m를 오른다. 처음 시도하는 긴 백패킹이지만 경사가 완만해 별로 힘들지 않다는 리뷰를 보고 짐쌀 때 무게를 크게 고려하지 않는 실수를 했다.

짐 늘어놓는 건 언제나 즐겁고 조금은 불안하다.

새벽에 출발했는데 졸린 눈을 비비며 삼각김밥을 만들어갔었다. (맛나게 먹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다. 편하게 사먹을 것을…)

이 트레일은 거의 전구간이 이렇게 생긴 길을 지그재그로 올라가는데, 크게 내켜하지 않았던 K씨는 내내 기분이 별로였고, 볼 것도 없는 비슷한 숲길을 몇 시간째 걷다보니 나조차도 지겨워진다.

눈 앞에 이런 모습이 펼쳐질 때까지는.

영차영차 막판 스퍼트

호수 뒷편 언덕으로 캠핑사이트들이 오밀조밀 들어서 있다. 하이킹하는 사람들도 많아서인가 화장실도 많은 편.

정해진 자리를 찾아 텐트를 편다.
우리의 방만한 짐싸기의 결과 – 백패킹에 맥주가 웬말이며 (백패킹 용이긴 하지만) 테이블이 웬말.

호수물을 떠서 정수해서 마신다. (근데 저기서 양치도 하고 세수도 한다…)
참고로 백패킹에서는 소금이나 베이킹소다로 양치해야 함.

여기도 음식 매달아두는 곳이 있고

취사와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는데, 이 안에도 음식을 보관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유유히 줄을 타고 가 가방 안으로 들어가는 생쥐를 보고 말았지…)

다시금.. 맥주가 웬말이냐고. 그것도 보냉이 되는 가방에 담아서.. ㅠㅠ

이 때를 돌아보면 일정 내내 무척 배가 고팠던 기억이다. 쌀을 너무 조금 챙겨갔고 라면이 아닌 3분 카레류를 가져갔었다. 밥이 모자라서 인스턴트 오트밀도 꺼내 비벼먹었는데 간에 기별도 안 감…

어쨌거나 밥을 먹고, 풍경이 멋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요건 미니어처 포트와인. 한 모금씩 두 모금 딱 나온 듯.

산 위의 밤은 깊어가고. 미니 생수병에 넣어간 보드카도 조금씩 마시고. 조근조근 쌈질…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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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동이 트는 걸 보려고 일찌감치 호숫가에 자리를 펴고. (다시 한번, 백패킹에 의자가 웬말. 뭐 앉아있을 땐 좋았다만…)

커피를 만들어 마십니다. 맛이 없을 수가 없는 풍경.

꽃이 좋아지는 나이

저 높은 곳에도 토끼가 산다.

아침도 밥에 레토르트. 밥은 여전히 부족했다.

아침 먹고 산책. 여긴 어딜 봐도 그림이 아닌 곳이 없다.

그리고는 짧고도 길었던 일박이일을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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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자란 식물 주변에 돌로 보호대를 만들어준 마음이 예쁘다. 야생화가 조금씩 핀 평원을 지나 올라간 길을 되짚어 내려옴.

그 와중에 무거운 배낭 탓인지 내려가 밥먹을 생각에 서둘러서 그런건지 중심을 못 잡고 앞으로 고꾸라지는 작은 사고도… (아픈 것보다 창피한 게 컸던 걸 보면 작은 사고가 맞다…)
거의 다 내려온 즈음에 넘어져서 다행이었다. 앞서 가다 내가 안 오는 걸 보고 깜짝 놀라 돌아온 K씨가 무거운 배낭 덕에 뒤집어진 거북이가 된 나를 일으켜주고 피가 나는 무릎에 손 소독제를 뿌리고 양말로 동여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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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도시로 돌아와 너무나 아름다운 곳에서의 이틀 동안의 냉전과 배고픔을 보상하기 위해 큰 대접에 담긴 비빔밥과 순대국을 열심히 먹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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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몇 년이 지나서 자세한 건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투닥거리며 다녀와 두고두고 씁쓸했던 백패킹의 기억이 이번의 조프리 레이크 백패킹으로 다 씻겨진 느낌이다. 더불어 그 때의 교훈으로 이번엔 짐을 최대한 간소하게 가져가고 음식도 충분히 챙겨가서 피로도 덜했던 것 같다. 어쨌거나 백패킹,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