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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중순부터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12월 초부터는 수업이 서서히 마무리되고, 학기말 고사가 끝난 중순 경부터 크리스마스 연휴 전까지 학교는 조용하면서도 연말연시 특유의 설레이는 분위기가 감돈다. 그렇게 일하는 듯 일하지 않는 듯, 마지막 주의 업무를 마쳤다.

그 사이 두 번의 스노우슈잉을 가고, 손님들을 여러 번 초대했다. 예전 기록들을 들춰보니 이렇게 연말에 사람들을 만나 시끌시끌 보낸 것은 2011년 이후 처음. 2012년부터는 딸기 건강 상태도 안 좋아지고 해서 K씨도 나도 여력이 없었던 것 같고, 특히 딸기와 엄마가 떠난 2014년부터는 연말 뿐 아니라 세 해 내내 손님 초대를 한 기억이 거의 없다. 올해는 어쩌다 보니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났고, 또 손님을 초대하려면 집이 깔끔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조금 벗어나게 되어서 (캠핑을 다니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ㅎㅎ) 우리집에서의 만남을 여러번 계획했다. 물론 주 요리 담당인 K씨의 동의와 협조 때문에 가능했던 일.


12월 둘째 주 토요일. 저녁엔 K씨 회사 파티가 있었고, 아침에 날씨가 너무 좋아서 산에 가기로. 이 날의 목적지는 몇 주 전 스노우슈잉 맛보기로 갔던 사이프러스 홀리번 트레일. 무료인데다 사람들이 많고 길 안내 표시가 잘 되어 있어 우리같은 초보자들에겐 딱이다. (자세한 정보는 https://www.outdoorvancouver.ca/hollyburn-mountain-snowshoe-trail/에. 올라가면서 보이는 광경을 담은 동영상도 있다.)

출발 후 2.5Km 지점에 여기 이후부터는 관리하지 않으니 각자 알아서 가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여기서 1Km 정도 더 올라가면 정상이라 360도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곳의 경치도 꽤 좋아서 이 날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휴식을 위해 언덕을 오르는 나.

밴쿠버 바다가 보이는 언덕. 산에 가면 컵라면을 먹어야 한다(!)는 K씨의 주장으로 보온병에 뜨거운 물과 컵라면 두 개를 싸갔다. 다른 사람들은 샌드위치나 에너지 바, 보온병에 싸 온 핫초콜릿 등을 먹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산 위에서 자주 보이는 새. 가슴팍에 솜털이 잔뜩 있어서 따뜻해 보인다. 사람들이 음식물 부스러기 등을 던져주는 데 익숙해졌는지 뭔가를 기대하는 듯 우리를 쳐다보았다.


내려오는 길에 근처에서 스키를 타고 있던 친구분들을 잠시 만나 차를 마셨는데, 거기 매점에서 파는 핫초콜렛이 어찌나 맛있게 느껴지는지 깜짝 놀랐다. 음료 자체가 맛있었다기 보다 추운 눈밭에서 떨다가 느낀 따뜻함과 달콤함 때문이었겠지. (이 날부터 시작해서 직장에서도 쿠키 등을 가져오는 시즌이라 설탕 섭취가 늘었던 한 주였다.)

그리고는 다운타운의 식당으로 향했다. 대부분 모르는 K씨 회사 사람들과 배우자들이 모이는 파티라 꽤 어색하지만, 매년 맛있는 식당을 예약하는 데다 주류도 자유롭게 즐길 수 있어 K씨보다 내가 더 즐거워하면서 참석하곤 한다.



올해 연말엔 K씨의 오랜 로망이 두 개나 이루어졌다. 연말에 예능프로를 틀어두고 만두를 빚어 다같이 나눠먹는 게 그 하나고, 사람들을 불러 다함께 거실 프로젝터로 영화를 보는 게 다른 하나였는데,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룸.

K씨가 전 날 만두피를 반죽해서 숙성해 두고, 요리의 달인 P님이 손수 만드신 김치를 가져오셔서 쓱싹쓱싹 속을 만들어 여럿이 만두를 빚었다. 빚으면서 바로 쪄서 먹고, 저녁때는 S님이 육수를 만들어와서 만두국을 끓여먹고. 저녁 후에는 다른 분들이 가져오신 케익과 과일을 차와 함께 디저트로 먹으면서 영화를 봤다.

쪼끄만 우리집에 무려 열여섯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파이 이야기 감상. 나를 비롯해 몇 사람은 이미 본 영화지만 워낙 좋게 본 영화라 다시 봐도 즐거웠음. 영화를 다 보고는 차를 마시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아쉽게 헤어졌고, 로망을 이룬 K씨는 기뻐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후문.



크리스마스 이브 날은 흐렸지만, 몇 주 전부터 벼르던 대로 스노우슈잉을 하러 갔다. 이 날은 새로운 루트에 가보고 싶어 독마운틴 트레일로. 정보는 https://www.outdoorvancouver.ca/winter-trail-guide-dog-mountain/

독마운틴 트레일은 폭이 좁은 곳이 많아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음에도 중간중간 정체가 있었다. 날씨 좋을 땐 매우 혼잡할 듯.

1Km 지점에 얼어붙은 호수가 있다.

다리 위에 쌓여있는 눈 ㅎ

이런 표지들은 거의 눈에 묻혀버리기 때문에 겨울에는 무용지물이다. 오렌지색의 길쭉한 장대를 중간중간 꽂아두는데, 그걸 보고 따라 가야 함.

이 트레일은 완만한 데다 길이가 4.5Km 밖에 되지 않아 끝까지 가고 싶었지만, 입구에 크리스마스 이브라 일찍 (4시, 원래는 밤 10시까지 개방) 닫는다는 공고가 붙어있어 호수까지만 갔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이 날의 마무리는 작은 사고로.

트레일을 벗어나 주차장을 향해 걷던 중, 고작 2Km 밖에 걷지 않은 아쉬움을 달래며 스노우슈즈를 벗다가 내 가방에서 물통이 떨어져 언덕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 내려가기엔 경사가 너무 급해 포기하려는데 K씨가 길을 삥 돌아 내려가 주워다 주었음.

저 아래서 물통 찾아 헤매는 K씨. 트레일이 아닌 곳이라 눈 속으로 푹푹 빠졌다고 한다.

의기양양하게 물통을 구해 올라오는 사진에서 웬지 전문 산악인의 포스가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