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이면 우리 식구가 밴쿠버에 이민온 지 1년이 된다. 한편으로는 한 일 없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제 겨우 1년 밖에 안 되었나 생각될 정도로 오래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처음에 밴쿠버 공항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이민온 것을 후회한 적은 없으니(아버지가 편찮으시거나 식구들이 보고싶을 때 같이 못 있었던 게 아쉽긴 했지만 이민 자체를 후회한 적은 없다)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여기가 우리한테 더 맞는듯 하다.
이제 1년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
2월 초 우리 세 식구는 밴쿠버에서 북서쪽으로 페리로 20분 거리인 섬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섬에 있는 수퍼마켓에서 직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남편의 파트타임 일도 정리를 하고, 가게는 일단 E에게 인수를 하기로 하였다. 작년 말부터 채용공고가 나왔는데, 여러가지 조건이 마음에 들었지만 가게가 걸려 있어 엄두를 못내고 있었는데, E와 얘기가 잘 되어 지원을 한 것이다.
면접을 하러 갔더니 사장님이 우리들의 화려한(?) 이력서를 보고, 다른 더 좋은 일자리가 나면 금방 나갈 것이라 우려를 해서 일단 며칠간 일해보고 서로 마음을 정하기로 했었다. 그래서 일단 파트타임으로 사흘간 일을 했는데, 하는 일은 남편은 가게 재고정리, 나는 캐쉬어 일이다. 남편은 정육점 일에 비하면 너무 편하다고 하고, 나도 워낙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해 가게에서 손님들을 맞는 것이 재미있었다. 작가나 화가 등 예술쪽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손님들이 다 너무 좋아, 친하게 지내면서 영어도 많이 늘릴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남편도 뒤에서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병 등을 바꾸어 주면서 손님들과 대면할 기회가 많아 좋은 영어공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또 조용한 섬생활을 해볼 수 있다는 것과 아파트를 제공한다는 좋은 조건이 마음에 들었고, 사장님도 우리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래서 엊그제 최종 결정을 하였다.
우리가 들어갈 아파트는 방 하나 짜리인데, 처음에는 방 두개짜리를 받기로 했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중 아이들 있는 집이 있어서 우리가 그냥 양보하기로 했다. 대신 지금 우리집보다 작기 때문에 가게 안쪽에 잘 안 쓰는 짐을 넣어둘 수납공간을 제공받기로 했다.
이민 온 동기의 하나이기도 했지만, 남편도 나도 예전부터 춘천같은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어했기에 결정은 쉬웠다. 게다가 이 곳은 아주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닌 지금 우리집에서 배타는 시간 포함 한 시간 거리이기에 그다지 시골로 들어간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것 같다. 여기서 친하게 지내고 있는 남편 선배댁이나 미니미네는 많이 서운해 하는데 아무리 한시간 거리라고 해도 섬이라니까 거리감이 느껴지나 보다. 나도 이민와서 만든 소중한 인연인데 좀 섭섭하긴 하지만 쉬는 날 자주자주 만나자고 얘기했다.
꽤 큰 가게라 우리 말고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십여명 더 있어 또 좋은 인연을 만들게 될 것이고, 항상 볼 사람들이니까 다들 잘 지내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이 딸기도 참 예뻐하고, 친절해서 좋다.
다음주엔 내내 짐 싸느라 분주할 것 같다. 이사하는 날 미니미 아빠, 장군이 아빠, 한솔씨가 와서 도와주기로 해서 든든하다. 정말 우리 주위에는 고마운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사하고 맛있는 거 많이 사줘야지.. ^^
오늘은 남편 선배 댁에 가서 늦은 설을 맞아 만두를 먹기로 했다. 지난 번 함께 만든 만두가 너무 맛있었다고 해서 남편이 비법(?)을 전수해주고 함께 밥먹기로 했다. 슬슬 준비하고 나가봐야겠다.
석진 (2004-01-28 18:36:40)
드디어 목가적인 섬생활을 하게 되었군요… 축하해요^^
Ana (2004-01-30 00:33:09)
석진씨 안녕하세요? 새해 행복한 일만 생기시기를~ *^^*
윤민 (2004-02-02 12:50:04)
그 동네 섬생활은 정말 한가할텐데…축하한다! 시애틀 북서쪽 산후안 군도가 생각나네…나도 빨리 탈출해야해!!!!
Ana (2004-02-07 22:57:26)
와 선배님 오랜만이예요! 잘 지내시죠? 뭐 재밌는 소식 있음 우리도 알려주세요.. ^^ 그나저나 얼렁 놀러오세요~
박동현 (2004-05-31 12:11:14)
간만에 들어와보네. 잘 지낸다니 다행이다. 민이 녀석은 같은 서울에 있으면서도 연락도 못하는데, 여기서 보게되는군.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