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에서의 아침 한때

3. 22. 토

요즘 특별한 일이 없는 날들의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 일기를 쓰고 뉴스를 보고, 아침을 먹고, 600AM의 올드팝을 들으면서 식탁 한 구석에서 각종 신문과 안내지 등을 쌓아놓고 사전을 뒤적거리면서 공부를 하고, 오후엔 식료품을 사러 간다는 등의 구실을 만들어 운동 삼아 딸기를 데리고 동네를 한바퀴 돌고 와서 저녁을 만들어 먹고, 또 공부를 좀 하다가 씻고 자는.. 그런 식의 하루다. 4월엔 거처를 옮기지만, 그래도 5월에 학교를 다니기 이전까지는 비슷한 일과가 계속될 것 같다. 써리에 가면 도서관 증을 만들어 도서관에 자주 다닐 계획이다.

토요일 아침.
간만에 창으로 햇살이 비쳐 들어오는, 화창한 아침이다.
날이 좋으면 나가서 아침을 먹기로 했기에, 딸기를 데리고 슬슬 나가서 햇살을 즐기며 업타운으로 올라간다. 좀 걸으니 스웨터가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좋은 날씨다. 국제전화 선불카드를 다 썼기에 가다가 필리핀 아저씨가 경영하는 슈퍼에서 10달러짜리 카드를 한 장 산다. 지난번 중국슈퍼서 산 카드는 280분이었는데 이 카드는 360분이나 걸 수 있다. 훨씬 싼 셈이다. 그런데 여긴 10달러만 딸랑 받는다. 지난번엔 GST와 PST 모두 포함해서 11.5달러에 샀는데.. 아직 이 세금 시스템에 익숙하지가 않아 잘 모르겠는데.. 혹시 그 중국슈퍼 아저씨가 우리에게 사기를..? 음음.. 잘 공부해 봐야겠다.

우리들의 목적지인 맥도날드 도착. 아직까지 백수인 처지라 팁 줘가며 레스토랑에 가는 건 생각도 못하고 있는 우리지만, 이런 패스트푸드 점이나 음식을 싸가는 테이크아웃점은 종종 이용하고 있다. 게다가 이 나라는 음식 양이 어찌나 많은지 일인분만 시켜 나눠먹어도 우리에겐 충분하기 때문에 이런 곳이 더더욱 편하다. (그리고 집에 오븐이 있어 제법 모양 나는 음식들도 직접 해먹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외식의 필요성을 느끼진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야 집에서 해먹기엔 너무나 번거로운 순대국(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든가 감자탕이라든가 하는 음식들은 나가 사먹을 수 밖에 없었지만 여기 음식이래봤자 고기 한 덩이 구워놓고 각종 야채를 곁들인 정도기 때문에.. 집에서 해 먹는 게 더 나은 것 같다.)

이 작은 읍내(?)엔 커피와 도너츠를 파는 Tim Horton(여기선 아직 던킨도너츠를 못 보았다. 대신 이 팀 호튼이란 체인이 도처에 많다.), 맥도날드, 스타벅스, 서브웨이 등등 몇 곳의 먹거리 체인점이 늘어서 있다. 맥도날드와 서브웨이 모두 밖에도 테이블이 있기에 딸기를 데리고도 갈 수 있다. (날이 추울 땐 담배를 피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한다.)
일단 남편은 음식을 주문하러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딸기를 데리고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햇빛은 비치고 있지만 여기 차양 아래는 그늘이라 춥고 게다가 바람이 거세진다. 딸기도 오들오들 떨기 시작한다. 음.. 모처럼 밖에서 아침을 먹으며 (비록 맥도날드지만) 기분을 내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조금 후 남편이 브리또와 소시지 머핀, 커피와 요구르트 파르페를 들고 나온다. 남편이 추워하는 딸기를 가방에 넣고 앉다가 테이블을 치면서 커피 컵이 넘어져 내 스웨터에 커피가 쏟아진다. 냅킨으로 닦고 있는데 불어온 바람에 요거트 뚜껑이 날아간다. 커피를 닦다 말고 뛰어가 뚜껑을 주워오고, 아.. 정신 없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앉아 밥을 먹기 시작. 남편은 소시지 머핀(햄버거 빵이 아닌 머핀 빵에 햄버거 패티 하나 달랑 껴놓음)이 맛이 없다고 투덜투덜.. 한 입 먹어보니 정말 맛이 없다. 이런 걸 밥이라고 팔다니.. 역시 맥도날드다. 브리또는 멕시코식 요리인 것 같은데 얇은 밀가루 전병에 계란 스크램블과 작은 고기 볶음 같은 걸 채워넣고 돌돌 말았다. 소시지 머핀보다는 맛이 나았다. 요구르트 파르페는 바닐라 요구르트에 딸기랑 시럽을 얹은 것.
먹는 동안에도 계속 바람이 불어 커피 컵이 또 넘어지고 그걸 수습하는 동안 햄버거를 쌌던 종이가 날아가고.. 허둥지둥하고 있다가 창문 안쪽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서 밥을 먹던 사람이 정신 없는 우릴 구경하고 있다. 뭘 보슈! 밥이나 드셔! 하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십여 미터 저쪽엔 거리 물청소를 하는 사람이 들고 있는 기계에서 나오는 소음이 왱왱왱 들려오고.. 저 사람까지 우리 옆으로 오면 완벽하겠군..

정말 정신 없는 아침식사였다. 그 와중에 파르페 컵에 묻은 요구르트를 핥고 있는 딸기..
이게 무슨 코미디람.. 한가로운 토요일 아침, 테라스에서 우아하게 아침을 먹는 모습을 연출하려 했는데.. 애구.. 내 팔자에 무슨.. 하며 푸념을 늘어놓자 남편이 사진 한 장 찍어준다. (사진엔 이 코미디가 안 나왔지만..) 그럭저럭 먹은 둥 만 둥 하고 일어나 근처 쇼핑몰로 들어가 벤치에 앉아 남은 커피를 마시며 한 숨을 돌린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긴데, 지금 여기의 맥도날드 광고 모델은 오노다. 우리나라의 반미 감정을 촉발시킨 그 오노.. 광고 장면은 오노가 맥도날드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고, 오노의 금메달을 따는 장면과 햄버거를 준비하는 장면을 교차 편집해서 오노만큼 빠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내용인데, 딱 김동성과 겨루던 문제의 그 장면이 방송된다. 맥도날드도 시비가 되었던 내용을 모를 리 없을텐데, 한국 정도의 감정 문제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뜻인가.. 이 광고를 볼 때마다 턱에 얌체 같은 수염을 붙인 그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뭐 그렇다고 해서 맥도날드 불매운동을 한다거나 하진 않고.. 스페셜 할인 메뉴는 사먹어 준다.

좀 쉬다가 파(거의 알로에 수준으로 두꺼운 잎을 자랑.. 요리 한번 할 때 한 줄기면 충분하다.) 한단을 사가지고 집으로.

오후엔 남편 선배가 새로 시작한 식당에 가보기로 했다.
스카이트레인과 버스를 타고 한시간이 좀 넘게 걸려 앨더그로브(지금 아파트에서 동쪽으로 30분 정도 가면 우리가 살게 될 써리가 나오고, 거기서 30분 이상 더 동남쪽으로 가면 나오는 동네다. 미국과 아주 가깝다고.)로 갔다. 사실 운전해서 가면 이 정도는 걸리지 않을텐데 여기 버스는 아주 유람이라도 하듯 천천히 다닌다. 정류장마다 도착 시간이 있어 일찍 갈 필요가 없는 탓이다.
이 곳의 운전자들은 정말 운전을 얌전하게 하는 편이다. 웬만큼 큰 길이 아니면 사람들이 길을 불쑥불쑥 그냥 건너는데, 일단 보행자가 차도에 발을 딛으면 지나가던 차는 반드시 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마어마한 벌금을 물게 된다. 항상 이렇게 조심을 하고 다니기 때문에, 여기 운전 습관은 한국에 비해 아주아주 양반인 셈이다. 우린 아직도 습관이 잘 안되어서, 건너려다 차가 오고 있으면 우리가 그냥 서버리는데, 오던 차가 쫄쫄쫄 서기 때문에 당황하다가 그제서야 건너곤 한다. (물론 여기도 개중에는 과속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특히 젊은 애들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쿵쾅쿵쾅하면서 속도를 내어 달리곤 한다.)

남편 선배네 가게는 작은 초밥과 데리야끼 등을 파는 테이크아웃 일식집인데, 세 사람이 붙어있는데도 상당히 바쁠 정도로 제법 장사가 잘 된다고 한다. 선배가 현재 두 가지 일을 추진하고 있어 비디오 가게는 아마도 남편이 전담해서 하게 될 것 같다.
일단 치킨 데리야끼와 야끼소바, 미소와 캘리포니아 롤을 만들어주셔서 맛있는 식사를 한 다음, 남편이 메뉴판 음식 사진을 부탁 받았기에 이것저것 찍어보고는 옆의 커피집서 커피를 마시면서 새로 시작할 비디오 가게 준비 얘길 한다. 앞쪽에 바라보이는 산이 미국 산들이라고 한다.
얘기를 하다 보니 버스 시간이 되어 (30분에 한대씩 운행) 타고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돌아와서 새로산 전화카드를 시험해보는데, 전화가 잘 걸리지 않고 회선이 사용중이라는 메시지만 계속 나온다. 우째 이런 일이.. 다른 일을 하다가 왔다갔다 하면서 한 시간 정도를 시도하니 겨우 연결이 된다. 싼게 비지떡인 것인가 아니면 싸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해서 그런가..
공부를 좀 하고는 남편과 맥주를 한잔 하면서 이얘기 저얘기 하다가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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