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빌 아일랜드..

3. 21. 금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 일기를 쓰게 되는지라 아침 얘기 잠깐 하고는 전날 있었던 일을 얘기하게 된다. 지금은 금요일 오전 10시가 좀 넘은 시간.. 약간 축축한 날씨지만 하늘은 비교적 맑다. 웬일로 남편이 새벽 네 시쯤 일어나 뭘 하더니만 (나는 잠깐 일어났다가 다시 자버렸다..) 빵으로 아침을 먹고 나서 조금 있다가 다시 자고 있다.
오늘 아침엔 일단 빨래를 하고.. (드디어 코인시스템을 붙여놓았다. 한번 세탁비는 1.5달러,건조기 사용도 한번에1.5달러다.) 그런데 여기 세탁기 정말 마음에 안 든다.. 세탁이 너무 순식간에 끝나길래 오늘은 옆에서 도대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았는데, 한번 세탁하고 한번 헹구고는 끝나는 게 아닌가!!!!!!!!! 그것도 세탁은 한 10여분 하면서 헹굼은 5분도 안 하는 것 같다. 음음음… 한국에선 세 번씩 헹구는데.. 도대체 비눗기가 빠지기는 하는 걸까? 그리고 유연제는 도대체 언제 넣는단 말인가? 아.. 뭐 이런 푸념 해야 소용없겠지만. 아기들 쓰는 순한 세제를 사다가 써야 할 것 같다.
건조대를 빌려다가 빨래를 너는데.. 건조대가 정말 허접하다. 젖은 수건을 거니까 휙 휘어진다. 무거운 옷은 따로 걸고 하면서 우찌우찌 빨래를 마쳤다. 굳이 건조기를 사용할 것 없이 가습 기능도 할 겸 빨래를 널어놓는 게 좋을 것 같다. 희한한 게.. 여기 겨울은 매일 비가 오면서도 집안은 의외로 건조하다. 완전히 젖은 수건을 걸쳐놓아도 아침이면 빳빳하게 마른다. 특이하다. 그래도 습기가 찬 것보다는 나으니까 다행이다. 대신 우리 짐을 풀면 가습기를 밤마다 틀고 자야지.

어제 3월 20일 목요일 오후엔..

갑자기 날씨가 좋아졌다. 춥고 계속 비가 내리다가 간만에 해가 비친다. 나온 해가 반갑기도 하고, TV만 틀면 계속 보도해주는 전쟁 소식이 지겹기도 해서 밖에 나가보기로 한다.
딸기 채비를 시키고, 그랜빌 아일랜드로 향한다. 그랜빌 섬은 재작년 우리가 여기 왔을 때 가본 곳인데, 작은 섬(정확하게 말하면 섬은 아니고, 한 쪽은 육지와 연결되고 나머지 대부분이 바다에 면한 곳)에 시장, 예술학교, 맥주 양조장, 크고 작은 공방들 등이 모여있는, 나름대로 분위기 있는 곳이다. 여기서는 관광지로 사람들이 많이 놀러 간다.

스카이트레인 제일 앞자리에 앉아 희희낙락 하고 있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 변덕스러운 밴쿠버의 날씨.. 점퍼도 안 입고 왔는데 비가 오다니.. 약간 김이 샜지만 그래도 버라드 역까지 와서 갈아탈 버스를 찾는데, 인터넷이 안되던 터라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비슷한 곳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만에 위치한 작은 섬이라 버스가 다리를 건너자 마자 내린다. 그런데 여기가 어딘지 감이 안 잡힌다. 배도 고프고, 한번 와 본 곳이라 지도도 안 가지고 나온 터에 빗줄기까지 굵어지니 모든 의욕이 사라진다. 사람들에게 좀 물어보고 여의치 않으면 다시 돌아가려고 마음을 먹는다.
버스 정류장서 어떤 할아버지한테 가는 방법을 물으니, 일단 자기와 함께 오는 버스를 타라고 한다. 그리고는 기사 아저씨에게 이 사람들 그랜빌 섬 갈 거라고 내리는 곳을 한참 둘이 얘기한 후 다음 정거장서 내리는 벨까지 눌러주면서 저쪽 가서 작은 배를 타라고 한다. 우리는 비가 내리는데 배를 타면서까지 갈 생각은 아니었으나 이렇게까지 해 주니 안 내릴 수도 없고 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엉거주춤 내려버린다. 남편은 계속 고생하기 싫다고 인상을 쓰고 있지만.. 나는 이왕 왔으니 위치라도 알고 싶어 배를 타는 곳으로 가보기로 한다.
배를 타는 선착장으로 향하는데 비가 점점 그친다. 이 나라 사람들이 우산을 잘 안 쓰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너무 오락가락 비가 왔다 말았다 해서.. 쓰는 것이 더 귀찮은 것이다. 열명이 타면 꽉 찰만한 이 작은 페리의 삯은 편도 2달러, 왕복 3.5달러다. 건너편 까지만 건네주는데(한 2~3분 걸린다), 운전은 대부분 젊은 여성들이 한다. 아르바이트 삼아 하는 걸까? 왕복표를 사서 그랜빌 섬에 도착! 마침 해가 나서 기분이 좋아진다. 개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꽤 많다. 딸기도 신났다. 가방 밖으로 코를 내밀고 킁킁거리기에 여념이 없다.

일단 퍼블릭 마켓에 들어가 끼니를 때우기로 한다. 관광지라 그런지 음식값이 대부분 비싼 편이다. 대신 이 곳은 정말 신선한 과일, 채소며 생선들이 여기저기 푸짐하게 쌓여있다. 우리 동네 퍼블릭 마켓보다 훨씬 더 시장답다. 좀 돌아보다가 빵 가게에서 아몬드 슬라이스가 잔뜩 붙어있는 윤기나는 빵을 하나 사 가지고 밖으로 나와 바다를 보면서 먹는다. 바다라고는 하지만 여기는 만이라, 맞은 편에 또 육지가 보인다. 날이 개어 하늘과 바다를 면한 건물들이 예쁘게 반짝인다. 빵을 먹기 시작하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무슨 새인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귀엽게 생긴 검정 색 새들이 몰려든다. 그리고 멀찍이 갈매기들이 혹시 뭐 안 주나 쳐다본다. 빵 조각을 작게 잘라 던져주니 포르르 날면서 잽싸게 채어 삼킨다. 빵 하나를 가지고 남편과 나, 딸기와 한 열 마리 되는 새들까지 여럿이 나누어 먹고 일어선다.

딸기를 걸리면서 섬의 이곳 저곳을 구경한다. 지도를 보니 조금만 가면 버스가 있다! 가서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섬을 한 바퀴 돌고. (도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나 장난이라도 하듯 우리가 처마 밑으로 숨자 바로 개어버림) 워낙 작은 섬이라 한 바퀴 도는데 10분 정도면 끝이다. 시장 옆으로는 예술품들을 파는 크고 작은 공방들, 갖가지 상점들, 그 옆으로 Emily Carr라는 미술가의 이름을 딴 예술학교가 있고, 작은 언덕이 하나 있고 언덕을 끼고 호텔이 있고, 호텔을 지나면 다른 상점들과 다른 예술 학원이 있다. 이 모든 곳을 둘러싼 해안을 따라 요트 선착장에 크고 작은 하얀 배들이 매어져 있다. 한켠에는 Sea Village라는 작은 팻말이 붙어있는 작은 단지가 있는데, 말하자면 수상 가옥이다. 흘끔 흘끔 창 안을 들여다보는데, 다른 집들과 똑같이 카펫이 깔린 마루와 식탁, 부엌이 있다. 단지 물 위에 있는 것 만으로 왠지 멋져보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몸엔 별로 안 좋을 것 같다. 물 위에서 계속 생활하면 신경통이나 관절이 아프지 않을까.. (별 걱정을 다.. –;;; )
대충 돌아보고, 딸기를 가방에 집어넣고 서점까지 들어가 본 후 맥주 양조장에 가서 맥주를 좀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작은 건물 안에 양조시설을 만들어놓고 맥주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한국에서 사먹던 병맥주와는 아주 다른 맛이다. 더 진하고 부드럽다.
아까 산 왕복티켓은 환불을 받고, 나와서 버스를 탄다. 여기는 소비자가 원하지 않으면 환불해주는 게 당연한 일이라, 환불해주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다. (우리들은 잠시 환불이 안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었다..)

버스를 타고 중간에 내려 바로 앞의 런던드럭에서 보영이가 부탁한 치과용품 사진을 찍는다. 이 쪽은 어학연수하는 한국 학생들이 참 많다. 수업을 마친 때쯤인지 삼삼오오 모여서 째깔째깔 떠들면서 다니고 있다. 내가 만일 어학 연수를 온 학생이었다면 어떤 생활을 했을까 하고 잠시 생각해본다. 10년쯤 전이었다면 글쎄.. 어땠을까..?

스카이트레인을 타니 퇴근시간인지 사람들이 꽤 많다. 이곳의 러시아워는 네시부터 여섯시까지. 우리나라보다는 몇시간 빠른 셈이다.
짧은 소풍을 끝내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래층 매니저 브리아나가 전화를 해서 ‘드디어’ 인터넷이 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고. 딸기를 씻기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컴퓨터를 켜니 간만에 만난 보영과 승열님이 안부를 전한다. 치과용품 사진을 메일로 보내주고. 컴퓨터를 가지고 노는 동안 착한 우리 남편은 찌개와 밥을 데워 저녁을 준비한다. 오늘 비도 맞고 그래서 약간 으실으실하기에 밥과 함께 신라면을 끓여 속을 덥히고 생강차까지 만들어 마신다. 몸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낮에 시내에서 가져온 신문을 사전과 함께 뒤적뒤적 거리다가 잠든다. 읽으면 읽을수록 영어가 어렵게 느껴진다. 아.. 언제쯤이면 여기 신문이 한국 신문처럼 읽힐까.. 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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