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하루 더 묵어도 안 묵어도 상관없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 숙소를 알아봤었는데, 숙소를 잡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동생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전혀 추운 날씨가 아니었는데 많이 추워한다.
원래 오늘 아침 메뉴는 엊저녁에도 먹은 치킨 샌드위치였는데, 비상용으로 준비해 두었던 컵라면을 꺼냈다.
힘겹게 라면을 먹고 나서도 동생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고, 오히려 고질병인 편두통이 시작된다.
고통스러워 하는 동생 ㅠㅠㅠㅠ
사실 매우 더운 날씨였어서 햇볕을 쬐면 두통이 더 심해질까봐 그늘로 옮기라 했는데 몸을 조금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 한다. 손도 차갑고 추워해서 쳇기가 있는 것도 같고 ㅠㅠㅠㅠ
급기야 차 안에 들어가 침낭을 뒤집어 쓰고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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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나는 천천히 사이트를 정리하고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차를 몰고 캠핑장을 나왔다. 동생은 뒷자석에서 계속 잠을 잤다.
월요일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섬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 페리를 한 대 놓치고.
페리를 기다리다 보니 점심때가 되었다. 아침에 동생이 먹지 못해 도시락으로 챙겨온 샌드위치를 좀 먹고. 거의 기절해 있던 동생이 이 때 쯤 정신을 차렸다. 다행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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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좋은 시간을 보냈던 섬을 뒤로 하고…
나나이모와 가까운 조그만 항구 도시 Crofton으로 향한다. 이번에 동생이 가져온 하루키의 책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에 이 때의 마음과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다음에 또 언제 이 섬에 올 수 있을까? 아니, 두 번 다시 올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당연한 얘기지만, 섬은 어디 다른 곳에 가는 길에 훌쩍 들르듯 방문할 수 없다. 작정하고 그 섬을 찾아가든지, 아니면 영영 찾지 않든지. 둘 중 하나다. 중간은 없다.
배는 세 시간 후 피레우스 항에 도착한다. 나는 짐을 어깨에 메고, 단단한 대지를 밟고, 일상의 연장선상으로 돌아간다. 내가 속한 본래의 시간성 속으로 돌아간다.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그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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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가는 길에 벽화로 유명한 마을이 있다고 해서 잠시 들러보기로 했다.
주차 후 걸어가는데 이 마을의 도서관 발견. 술가게 옆에 도서관이 있네 ㅋㅋ (오른쪽 하늘색 간판이 도서관).
물레방아 뒤 개울도 벽화..
구석 구석 아기자기하게 꾸며 두었다.
평면인데 입체 효과가 나도록 그린 벽화
서브웨이 샌드위치 집 간판도 벽화
또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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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차를 달려 숙소로. 가는 길에 Nanaimo에서 장도 보고.
마당에 차를 세웠더니 말이 얼른 인사를 온다 ㅋㅋㅋㅋ
집 주인 아주머니가 밥을 주러 가니 조르듯이 귀여운(?) 소리를 낸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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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대강 풀어 두고 며칠만에 목욕도 하고. (이 집은 샤워가 없고 욕조 뿐이라 강제 목욕;)
우리가 묵은 다락방 입구에 좁지만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밖에 앉아 저녁. 아침에 짐을 쌀 때 거들지 못 해서 무척 미안해 하던 동생이 저녁 준비를 해 주었다.
말을 구경하면서 저녁 식사.
사진으로 보기엔 그럴 듯 한데 의자는 약간 불안했고 (바닥에 틈이 있어서 다리가 살짝 살짝 빠졌음 ㅋ) 곡물 샐러드에선 콩알만한 돌이 나오고 (이가 아주 약간 떨어져 나감;;) 급기야 말벌도 한 마리 등장. 말벌에 놀라 접시들을 들고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사건 사고의 연속이구나…
동생도 나도 힘든 하루였던지라 사진 정리를 하고는 깊은 잠에 빠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