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ning의 추억 (3)

따뜻한 침낭을 믿고 온도를 10도에 맞추고, 보조배터리도 밤새 잘 버텨주어 쾌적하게 잘 잤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기에 새벽에 깨서 아이패드로 책도 좀 읽고. (참, 스노슈잉이나 겨울 산행을 해보니, 날씨가 추우면 폰이나 아이패드의 배터리가 빛의 속도로 줄어든다. 쓰지 않을 때는 전원을 꺼두는 게 좋을 듯.)

첫날 P님께서 5불 샤워실 광고를 보셨다고 했고 L님도 리조트에서 5불에 사우나와 수영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꿀정보를 알아오셨는데, 추워서 젖은 머리 얼어붙을까봐 안 갔더니 아침에 웬지 아쉽다. 이넘의 뒷북은 참말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구나. 아니, 돌아갈 날이 되니 그냥 다 아쉬운 걸지도.

하지만 마지막 날이라고 짐만 싸서 그냥 올 순 없지. 오늘 하루도 꽉 차게 놀아보기로.

오늘도 땡땡 부었네~ ㅋㅋ (L님 사진)

꾸물꾸물 P님네 트레일러로 갔더니 엊저녁부터 말씀하시던 김치찌개 냄새가 솔솔~

오마이갓 김치찌개

엊저녁도 많이 먹고 자서 또 먹을 수 있을까 싶었으나, 엄청나게 맛있는 김치찌개에 손이 가는 걸 멈출 수가 없어서 또 많이;; 캠핑장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초호화 식단을 준비해 주신 P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오늘은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타 보기로 했다. L님은 어제 입문하셨음에도 하루만에 선수같은 포스를 내뿜으시고.

리조트로 가서 장비를 빌렸다. 마련된 트레일로 다니려면 사용료를 내야 하는데, 우리는 그냥 호수 위를 걷기로 했다. 직원이 날씨가 따뜻해서 호수는 위험할텐데.. 라고 우려했으나 그 순간 온도계는 영하 10도였다. 아니 이 분 ㅋㅋㅋ 평소엔 몇 도길래 ㅋㅋㅋ

트레일을 살펴보니 스키가 잘 미끄러지도록 길을 내 두었다.

L님 사진

입구에서 약간의 연습을 하고..

햇살은 따뜻하나 넘 추운 중 (L님 사진)

용감하신 J님 처음부터 속도 내시다 꽈당.. 그러나 곧 날아다니심. (L님 사진)

바로 호수 위로 가본다.

꽁꽁 언 호수 위를 신나게 싸돌아 다님. (L님 사진)

이 사진을 찍어주신 후 스포츠 소녀 L님은 바람처럼 가버리시고, 나는 뒤에서 무수하게 나동그라짐. 다행히 노르딕 스키는 알파인 스키에 비해 가벼워서 넘어져도 일어나기는 수월했다.

호수 끝에서 L님이 준비해 오신 따뜻한 달다구리 커피와 너츠바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시 온 길을 되짚어 캠핑장으로.


장비를 반납하고 돌아오니 J님께서 점심상을 예쁘게 차려두셨다.

마지막으로 불도 좀 쬐고, P님의 야심찬 마지막 간식, 굴전(!)에다 J님이 끓이신 라면까지..

한편 K씨는 트레일러 앞에 딱 대놓은 누군가의 차를 보고 꽁꽁 언 눈밭에서 트레일러를 끌고 나올 고민에 휩싸여 있었는데, 마침 그들도 돌아와 그제야 마음 편히 점심을 먹었다지. 평소와 다른 환경에 있다보면 소소롭게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기도 한다. 대부분은 잘 해결되긴 하지만 ㅎ


이제 이틀 동안 잘 쉰 집을 접고 집에 갈 준비를 합니다.

L님 사진

 

L님 사진

우리 차도 이런 낙서가 생길 때가 오네 ㅋㅋㅋ

L님 사진

집에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아쉽다 ㅎㅎ


겨울에는 Highway 1 동쪽으로는 자주 가지 않았어서, 이번에 집에 오면서 산들에 웅장하게 눈이 쌓여있는 광경을 처음 봤다. 정말 멋지다… 가슴이 뛸 정도로. 사진찍을 생각도 않고 눈으로만 봤다.


집에 와서 꼬질꼬질해진 트레일러 샤워 한 번 시켜주고…

스키장에서 사온 스티커를 말끔해진 트레일러에 붙여준다.


집에 오는 길 L님께서 오는 내내 몸이 좀 안 좋으셨다는 걸 알게 되어서 약간 걱정이 되었는데, 이젠 괜찮으시다고 해서 안심이다. 며칠간 하도 넘어져서 무릎엔 멍이 여러개 들고 팔이며 어깨가 며칠간 욱신욱신했지만, 근육을 쓴 후의 기분 좋은 통증. 엊그제는 좌골신경통 증상이 약간 느껴져 왈칵 겁이 났지만 며칠간 필라테스와 요가로 몸을 풀어주었더니 가볍게 지나가는 듯 하다. 하긴, 좌골신경통의 가장 큰 적인 추운 눈밭에서 굴러다니다 왔으니.. 예전 같으면 한 일주일 못 걷지 않았을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곳에서 보내고 온 행복했던 사흘간이었다. 일단 너무나 감사하게도 내내 날씨가 좋았고, 낮 동안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열심히 움직이고, 저녁엔 재테크도 부동산도 아닌,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맛있는 술과 음식을 즐겼으니 뭘 더 바랄까.

잔뜩 받아온 에너지로 지난 한 주 열심히 일했고, 또 다음 휴일엔 뭘 할까 궁리하기 시작. 아, 즐겁다.

2 thoughts on “Manning의 추억 (3)

  1. 림쓰

    읽을수록 담백해서 더 읽고 싶어지는 후기. 너무 잘 읽었어요! 언니의 기억력과 디테일이 담겨져 있어서 더 최고 🙂
    벌써부터 다음 번 출동이 너무나 기대된다는…! ^.^

    Reply
    1. Ana Post author

      비슷한 취향을 지닌 동지를 만나게 되어 참 반가워요. 우리 앞으로 재밌게 놀아봅시다~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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