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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일기

K씨는 어느 때고 만화를 읽고 있는데, 지난 겨울부터는 자전거에 대한 만화를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자전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길 어언 몇 개월, 2월의 어느 날 K씨가 자전거 구경을 하러 가자고 한다. 구경만 하리라던 K씨의 생각과는 달리 그 날 나는 자전거를 덜렁 사 들고 들어오게 된다.

처음 정식으로 자전거를 타러 나간 날, 우리 아파트 로비에 세워둔 자전거들. 앞의 라임색이 내 자전거, 뒤의 연올리브색이 K씨 자전거.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탔던 건 벌써 5년 전이다. 2012년, 한 번 타 볼까 하는 생각에 몰에 가서 저렴한 자전거를 하나 장만했었다. (K씨는 누가 준 자전거를 탔다.) 그 해는 딸기가 시력을 잃고 잘 걷지 못하게 되었을 때인데, 함께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고, 딸기가 꽤 즐거워 보여서 여름 내내 자주 타러 다녔다.

그 해 여름이 지나고 겨울부터 자전거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 했는데, 흥미를 좀 잃은 것도 있겠지만 더 정확한 이유를 들자면, 일단 나는 우리 건물 지하의 자전거 보관소에서 자전거를 꺼내서, 무거운 문을 두 개 통과하는 것과, 타고 난 후 다시 자전거 보관소에 끌고 들어가 묶어두는 것이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혼자서는 더더욱. 그래서 이번에 K씨가 자전거 얘기를 꺼냈을 때 ‘작고 가벼운 것’이 내가 내세운 첫번째 조건이었다. 그리고 K씨는 자전거를 타고 나면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사이즈가 안 맞았던 것.)

암튼 보러간 첫 제품이 Brompton. 우리 예산에 비해 가격대가 좀 센 편이라 K씨는 그야말로 ‘보러만’ 간 거였다. 나는 직원에게 이 자전거보다 작은 자전거가 있는지 물었고, 대답은 이 자전거가 시판되는 자전거 중 가장 작게 접힌다는 것. 그래서 바로 마음을 정했다. (K씨 당황.)

한 가지만 보고 바로 사 버린 나와는 달리 K씨는 조사에 조사를 거듭했고, 어렵게 어렵게 마음을 정했는데, 마침 원하는 모델을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찾을 수가 있었다. Surly라는 이 자전거 브랜드는 캐나다에서는 구할 수도 없는, 미국의 조그만 회사에서 만든 제품인데, 마침 자전거로 미국 횡단을 하려고 이것저것 준비를 하다가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든다는 걸 알게된 청년이 자전거 여행을 포기하면서 거의 새 자전거를 중고 사이트에 내놓은 것. 보러 갔다가 사이즈가 K씨에게 딱 맞아서 깜짝 놀랐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자전거 사이즈는 아주 다양하다.)

내가 좀 더 자주 타려는 생각으로 자전거들을 거실에 두자고 제안하였고, K씨는 그렇다면 벽에 높이 걸겠다고 했다가 거부 당함 ㅎㅎ 암튼 자전거들은 지금 우리 집 거실에서 살고 있다. 작은 거실이 조금 더 작아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 먹으면 바로 나설 수 있어서 좋다.

자전거를 사고 거의 두 달 내내 비가 내려서 자주는 못 탔지만 비가 내리지 않으면 냉큼 나가서 동네 한 바퀴 돌고, 또 내 자전거는 접을 수 있으니까 밖에 나갈 일 있을 때 차에 실어두었다가 비가 멎으면 바로 탈 수 있어 너무 좋다. 그 편리함에 결국 K씨도 중고 사이트에서 접는 자전거를 한 대 마련. (접는 자전거는 사이즈가 한 가지라 더 좋다.)

그래서 동네 가까운 공원도 돌고…

Rocky Point Park

Burnaby Marine Park. 짧은 코스라 잠깐 타고 피크닉

캠핑갈 땐 접는 자전거를 챙겨가서 새로운 곳 탐방도 하고…

Sechelt Sea Walk, Sunshine Coast

그러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밴쿠버 웨스트사이트 탐방. 오전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지만 그래도 가보기로. 일단 예전부터 한 번 가보자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Suika.

직접 만든 진저에일은 너무 연했고 돈까스는 종잇장같았고 스시는 밥이 너무 많았다. 완전 실망. 비추.

어쨌거나 밥을 먹고 나니 날이 개기 시작. 친구 C가 좋아한다던 공원에 가 봄. 지나다닌 적은 많은데 정작 산책을 한 적은 없다.

Pacific Spirit Regional Park

선명한 연두색의 어린 잎들이 예뻤다.

이 공원과 아주 가까이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가 있다. 캠퍼스가 바다와 가까워 한 쪽에서 보면 풍광도 아름답고 또 일요일이라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기 좋을 것 같아서 근처에 주차를 해 두고 (학내에는 주차료가 꽤 비싸다.) 해변길을 따라 낑낑 올라가서 캠퍼스 여기저기를 신나게 돌아다님.

늦은 오후가 되자 햇살이 너무 좋아서 (얼마만에 보는 햇볕인지!) 교정에 누워 있었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암튼 교정 어딘가.

학교에 한가로이 누워있자니 옛 생각도 나고 좋았지만 학교에 다시 다니고 싶지는 않다는 결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