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게도, 2017년은 다른 해들처럼 그리 어색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2016년을 빨리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나 보다. 어수선함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해는 바뀌었다.
몇 개월에 걸쳐 누적된 정신적인 피폐함에 더해, 밴쿠버의 올 겨울 초반은 무척 추웠고 눈도 많이 내렸다. 누가 먼저 얘기를 꺼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따뜻한 곳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은 마음은 같았다.
J씨가 다녀왔다던 Los Cabos의 사진을 잠시 들여다 보고는, 다른 아무 사전 조사 없이 여행사에 가서 올인클루시브 추천 상품이 있는지 물었다. 국가도 지역도 정하지 않고. 그리고 여행사 직원이 첫번째로 추천한 곳을 예약하겠다고 했다. 직원은 조금 당황하면서 다른 곳도 있다고 했지만, 지역 이름도 마음에 들었고 (Riviera Maya라니, 멋진 이름이다.) 쉽게 갈 수 있는 태평양이 아닌 카리브해 연안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비행 시간이 좀 길긴 했지만. 그게 출발 2주 전이었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할 때는 비행기 탈 일이 많았지만, 이민 후에 한국 외의 장소에 비행기를 타고 가는 여행은 처음이라 묘하게 마음이 설렜다. 마지막 날까지 리조트 안에서만 지낼 계획이었으므로 글을 좀 쓰게 되지 않을까 싶어 키보드도 따로 챙겼다. 그런데 공항에서부터 K씨가 맹렬하게 여행 기록을 시작한다.
기록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자 수첩도 키보드도 꺼내지 않고 그야말로 백퍼센트의 게으름을 누려본다. 아름다운 색의 카리브해를 바라보거나 그 안에 있어도 비현실적이던, 휘장이 늘어진 수영장 옆 침대 위에 누워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었다.
일주일 간의 호사를 누리고 돌아와 밀린 일 처리를 하고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후, 사무실 컴퓨터 바탕화면에 바람부는 멕시코의 해변 사진을 깔았다.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시금 휴가를 기다리기 시작하는구나 ㅎ
p.s. K씨의 기록은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