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내내 눈 때문에 단축 근무를 하다 보니 어쩐지 붕 뜬 상태로 주말을 맞게 되었다. 금요일엔 출근해야 했는데도 전날 밤 늦게까지 책을 읽기도.
완독서 3: 종의 기원 by 정유정. 읽고 있던 책이 있었지만 도서관에서 새로 빌려온 한국책의 유혹이 너무 커서 손에 들었다가 하룻만에 다 읽어버림. 흡인력 최고. 예전 작가 인터뷰에서 소설 쓰기 전 지도를 그리면서 구상을 한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데, 그래서인지 항상 구성이 치밀하다. 그게 흡인력의 큰 요인인 듯. (특히 나는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정보라던가 아귀가 맞지 않는 스토리에 좀 민감한 편이라..) 정유정 작가의 책은 7년의 밤, 28, 그리고 종의 기원 세 권만 읽었는데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 특히 S님이 좋으셨다는 히말라야 여행기. 이런 소설을 쓰는 사람의 에세이라니, 어떤 느낌일까.
금요일 퇴근하면서 K씨에게 연락해보니 몇 주 전 포스팅했던, 곧 닫을 예정인 우리의 완소 식당 근처에서 일하고 있다고. 냉큼 스카이트레인을 타고 그쪽으로 향함.
이전에도 젊은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기는 했지만,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리자 손님이 더 늘어서 갈 때마다 줄을 서야함..
이 날도 사타이 샐러드와 나초…
벽에 붙은 이 격언들.. 그리워질 거다.
토요일엔 K씨가 다운타운에서 일한다기에 부지런히 아침을 챙겨먹고 따라 나섰다. 이른 아침의 다운타운엔 홈리스 아저씨들만 보이고..
울리는 시간 대에 지나갈 일이 없었던지, 처음 듣게 된 성당의 종소리. 찾아보니 무척이나 긴 역사를 지닌, 영국에서 만들어져 태평양을 건너 왔다가 또 수리 때문에 수차례 바다를 건넌 종들이라고. http://www.holyrosarycathedral.org/bells/
도서관도 아직 열기 전이라 커피를 마시러 가기로. 맛있다고 소문난 커피집을 검색한 후 열려있는 곳으로 갔다. 보통 아메리카노나 드립 커피를 마시지만 아침에 이미 커피를 마신 터라 라떼를 마셔보기로.
자리도 편하고, 커피도 맛있고, 읽는 책은 구절구절 맘에 와 닿는, 행복했던 시간. 커피샵 커피는 웬지 비싸게 느껴져 잘 안 마시는데, 이렇게 좋은 시간을 보내니 커피 값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커피를 다 마시고 거리를 걷다가 만난, 주인을 기다리던 멍멍이. 이 집도 커피가 맛있다고 하던데 좀 늦게 열어서 다음 기회에.
얼마전 캐나다 수상이 본인의 선거 공약이었던 선거 제도 개편을 백지화했다. 그래서 캐나다 전역에서 이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 날 다운타운에 간 김에 집회에도 참여. 이런 집회에 가면 머리수를 늘려주는 의미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또 있구나 하는, 연대감을 확인하는 기회도 되는 것 같다.
내 볼 일이 끝난 무렵에 K씨도 이동한다고 해서 K씨를 만나 같이 움직임. K씨가 다른 일을 하는 동안 아침에 읽던 책을 마저 읽을 요량으로 또 차를 마시러 갔다. 그러나 K씨 일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 원샷하고 나옴 ㅎ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사카식 오시 스시 (틀초밥)을 하는 식당에 가보기로. 호기롭게 세 가지의 오시 스시를 주문했는데, 이 집의 오시 스시는 위에 (마요네즈인 것으로 추정되는) 소스를 듬뿍 얹은 후 토치에 구워 나오는 것. 두 개 정도까지는 아주 맛있었는데 비슷한 마요네즈 듬뿍 초밥을 연속해서 먹으려니 너무나 느끼했다. 다행히 얼큰한 국물 종류도 하나 주문했던지라 느끼함을 조금씩 씻어낼 수는 있었지만, 다음 번에 또 가게 되면 오시 스시는 하나만 주문해야 할 듯. 전체적인 맛 평가는 그 때까지 보류 ㅎㅎ
어쨌거나 꽤 즐거웠던 긴 주말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