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중순부터 시작해 약 두주간의 캠핑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그동안 우리가 해온 여행과는 좀 달랐다. 일단 일정을 정하지 않고 떠났고 (비수기여서 가능했음), 작년에 한국에서 출발해 일년간 여행중이던 친구 부부와 함께 하게 되었다. 내가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 좀 걱정을 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우리 둘 만의 캠핑보다 몇배나 재미있는 여행이 되었다.
일단 집을 떠나 밴쿠버 아일랜드행 페리를 타고 Goldstream Provincial Park에 도착했다. 미리 알아봐서 샤워시설이 있는 캠핑장에 자리를 정했는데, 텐트를 치고 나서 보니 가까운 샤워장이 비수기라 닫혀있었다. 덕분에 씻으러 갈 때마다 본의 아니게 준비운동을 하게 됨 ㅎㅎ
Goldstream 캠핑장에는 우리 사이트와 가까운 곳에 예쁜 작은 폭포와 계곡이 있어서 종종 산책을 하곤 했지만 (+ 씻거나 화장실 갈 때 걷기 운동) 대부분의 시간은 먹고 마시는 데 보냈다. 친구가 장작을 패는 데 재미가 들려 계획과는 달리 불을 자주 때는 바람에 이것저것 먹거리를 사와서 장작구이를 해먹었다. 중간에 빅토리아를 잠시 둘러본 것 외에는 거의 캠핑장 안에서 시간을 보냄. 마른 먹거리들을 테이블에 놓아두었는데 다람쥐(로 추정)가 훔쳐가서 먹은 흔적에 재미있어 하기도 하고. (작은 헝겊가방에 친구네 부부가 가져온 소포장 시리얼과 잼병들을 넣어두었는데 헝겊가방을 끌고 가서 중간 중간에 잼병을 흘려놓고 시리얼을 까먹었다. 배탈은 안 났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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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째 되는 날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넷째날에 이동을 하기로 했다. 두번째 캠핑장은 Parksville과 가까운 Rathtrevor 캠핑장이었는데 정말 예쁜 해변과 작은 오솔길 등이 마음에 꼭 드는 곳이었다. 바다를 좋아하는 동생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서 8월 예약을 시도해봤지만 시스템 오픈하자마자 예약을 시도했는데도 1초만에 다 차버림..;;
Rathtrevor 캠핑장에 있는 며칠 동안은 연이어 비가 내렸다. 꽤 추웠지만 그래도 우리는 굴하지 않고 젖은 장작을 사다가 불을 피워 (뒤늦게 적성을 발견한 친구녀석이 모든 장작을 가늘게 쪼개놓아서 불을 붙일 수 있었다는..) 고기며 야채를 구워댔다. 심지어 마시멜로까지 사다가 구워먹음. 거기에 당연히 술도 한 잔 하게 되어 정말 몇년치 마실 술을 며칠 동안 마신 기분;;; 또 Rathtrevor 캠핑장 주변지도를 보다가 우리 동네 주말장터에서 파는 치즈공장이 있는 걸 보고 찾아가서 농장의 소들도 보고 치즈도 사오고. 물론 치즈도 와인 안주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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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간의 축축한 캠핑을 마치고 (그래도 비오는 때를 피해 해변과 동네 산책을 다니면서 길잃은 개 찾는 것도 도와주고 이런저런 추억도 생겼다 ㅎㅎ) 8일째 날이 개어 다시 이동하기로. 이곳의 바다가 정말 아름다워서 제대로 된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에 바로 밴쿠버 아일랜드 서쪽 해변으로 향했다. 국립공원 캠핑장은 아직 오픈을 하지 않아서 주변의 사설 캠핑장으로.
인터넷 여행 커뮤니티 리뷰를 통해 찾은 사설 캠핑장은 Surf Junction이란 곳. 사설 캠핑장은 처음이다. 젊은 서핑족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분위기가 색달랐다. 직원들도 자유분방해 보이고. 주립이나 국립공원에서는 주변 자연을 훼손하면 안된다는 의미에서 떨어진 나뭇가지등을 태우는 것이 금지되어있는데 여기에선 잔가지를 청소하면서 불을 피울 수 있도록 모아두어서 모닥불도 한번 때고.
Surf Junction에서 나와 왼쪽으로는 Ucluelet이란 타운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캐나다 서부의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Tofino가 있다. Ucluelet이 더 가까워서 일단은 이 곳을 다녀보기로 했다. 국립공원에 속하지는 않지만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가 일품이었던 Wild Pacific Trail. 공원에 들어서자 마자 감사하게도 배 위에 뭔가를 올려두고 열심히 깨고 있던 해달을 발견. 다들 탄성을 지르며 조금 더 가까이 가 봤는데 우리는 신경도 안 쓰고 성게를 까고 있었다. 이미 볼 것 다 본 기분 ㅎㅎ 그 다음날은 길을 건너는 사슴을 보고 매일같이 멋진 흰머리 독수리들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이렇게 대부분의 날들을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두어시간 주변을 다닌 후 점심을 먹고 저녁거리를 사들고 들어와 낮잠도 자고 쉬었다가 또 맛있는 걸 해먹으며 보냈다. 비가 오지 않는 밤이면 하늘에 별들이 가득했고.
나흘간 사설 캠핑장에 있다가 국립공원 캠핑장이 여는 날에 맞춰 국립공원 내의 Green Point 캠핑장으로 이동. 국립공원에서는 야생동물들이 많이 나오는지 아무 짐도 밖에 꺼내두지 말라고 해서 나갈 때마다 치우는 게 좀 귀찮았지만 캠핑장에 새로 만든 샤워장은 엄청 훌륭했다. 자연 한 가운데 호텔 화장실이 있는 느낌이 들 정도.
Green Point 캠핑장에 있는 동안은 사실 어딜 다닐 필요가 없었는데, 캠핑장 안에서도 나무 사이로 바다가 보일 뿐만 아니라 조금만 걸어내려가면 정말 아름다운 백사장과 바다가 펼쳐져 있다. 이 해안은 캠핑족들에게만 개방하는데다 그나마 비수기라 텅빈 아름다운 해안을 걷고 있으면 아무리 걸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유명한 국립공원 주변인만큼 주변 트레일들을 조금씩 다녀보았다. Pacific Rim 국립공원은 전 세계에 몇곳 되지 않는 온대우림 (temperate rain forest)이다. 숲 속에 나무로 길을 만들어놓아서 울창한 나무와 개울 사이를 누빌 수 있는 트레일도 걸었다.
물가가 비싼 이곳에서도 여전히 잘 해먹었는데 (근처 식료품점 전단을 보고 세일하는 품목들로 돌아가며 마늘버터 새우볶음이나 인도식 카레, 불고기, 부대찌개같은 훌륭한 상을 차려냄) 특히 근해에서 잡은 신선한 생선으로 만든 요리들이 좋았다. 스시 등급의 참치도 조금 사서 한 점씩 먹어보고 연어와 대구로는 K씨가 만화책에서 배운 일본 된장 버터 구이를 해먹었다.
이번엔 친구들이 사진을 자주 찍어서 나중에 받으려고 많이 찍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좀 아쉽네.. 2주 내내 예쁜 것도 무척 많이 보고 맛있는 것도 엄청 많이 먹고 오랜만에 떠들면서 술도 많이 마시고 몸과 마음이 함께 살쪄서 돌아온 캠핑이었다. 요리 준비와 뒷정리의 달인인 H씨와 밥먹은 후 설거지를 도맡아하고 장작패느라 애쓴 친구 D에게 감사를. 또 운전하느라 애쓴 K씨에게도 감사를.
우와, 아나님 이야기만 들어도 너무 너무 좋으네요.
두 주간의 캠핑 여행이라니… (사실 전 캠핑은 한 번도 안 해봤지만서도 ㅋ) 글에서 여유와 행복이 마구 느껴집니다.
언제나 전 좀 나아져서 여행 좀 가보려나.. 지금 상황으론 밥이라도 먹어봤으면..
요즘 밥도 못 먹고 좀 외로워서인지 먹방에 꽂혀서요, “입짧은 햇님”의 먹방을 보며 외로움과 허기를 달랩니다. ㅎㅎ
이번 캠핑 정말 재미있었어요. 사실 사흘 이상 캠핑할 땐 중간에 호텔 같은데서 묵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근데 또 해보니 할 만 하더라구요.
아직도 죽만 드시는 거예요? 그나저나 못 드시는 와중에 먹방을 보신다니 ㅋㅋㅋ 웃퍼요 ㅠㅠ
아차차, 사진들도 예술입니다.
낙조 사진도 좋지만 묵묵히 두 분이 앞뒤로 걷는 사진이 전 참 좋네요.
저도 그 사진 좋더라구요 ㅎㅎ 낙조 사진은 또 모자를 뒤집어써서 롤리팝인지라 ㅎㅎ
안녕하세요, 블로그대문을 처음 만났을때, 소소하면서도 ‘와’ 하는 말이 절로 나왔어요.
그리고 그 첫 느낌만큼이나 글과 사진들도 참 좋네요. 저 누군지 아시지요? 🙂
글 읽다, 벤쿠버 아일랜드 관련 포스팅에 댓글 남기고 갑니다 . 괜히 반가워서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좋은 분의 일상을 저도 같이 나눌 수 있게 되었네요
마음 따뜻해지는 댓글 다시한번 감사하구요 종종 이렇게 뵈어요 😀
p.s 딸기 정말 이쁜 아이네요. 저도 요키를 키운 적이 있었어서 (그 아이 이름은 민수였어요) 그 친구 생각도 나고 했어요.
유토님~ 반가워요 ㅎㅎ
딸기 예쁘다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한 성격(?)하는 녀석이었지만 저랑 남편에겐 세상에서 젤 이쁜 딸래미였거든요. 민수라는 요키를 키우셨군요! 어쩐지 요키와 무척 잘 어울리는 이름이예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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