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되었다.
예전부터 12월이 되면 다이어리를 장만하고 내년 계획을 세우고(계획 세우는 걸 무지 좋아하는 성격..)등등 마음이 분주해지곤 했었는데, 좀 철이 든 건지 아니면 이제 늙은(?) 건지 약간은 차분해진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다이어리도 예전에 샀는데 거의 안 쓴 것이 있어 찾아내 활용하려고 하고 있다.
지난 번에도 말했지만 12학년 영어과정을 공부하고 있는데, 말하자면 우리나라 고3 국어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나라마다 비슷한 순서가 있는 모양인지 1과는 여기도 시인데, 정말 재미없어 죽겠다. 일단 그냥 산문도 아닌 시인지라 이해하기도 버거운 데다가 정서가 달라서 그런지 사전을 찾아 단어를 조합해봐도 도통 무슨 얘기인지.. 모처럼 계획표(또 계획.. ^^;;;)를 만들어서 이번 주부터 오전에 한시간씩 이 공부를 해보자 마음을 먹었는데 30분 하고 나니 너무 하기가 싫어 컴퓨터를 잡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밴쿠버의 겨울은 단조로운 색깔이다. 출근할 때 멀찍이 북쪽으로 보이는 눈 덮인 산의 모습은 퍽 아름답지만 그 외에는 비, 우중충, 뭐 그런 느낌이다. 사람들이 다들 집에만 있는지 여름엔 일요일마다 닫던 도서관은 이제 일요일에도 문을 열고 사람들에게 책을 빌려준다.
지난 주 일요일엔, 나는 미니미 엄마랑 박과장님 가족이랑 베트남 국수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놀다가 집에 돌아와서 남편과 함께 딸기 산책을 시키고 순두부 찌개를 끓여 저녁을 먹은 후 쉬었고, 월요일은 빨래, 청소, 시장보기 등 밀린 집안일을 해 놓고 오후에는 놀러 온 미니미 엄마와 치즈케익을 만들어 먹었다. 그 사이 남편은 회사의 홈페이지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고.
어제 화요일엔 아침에 가게를 열고, 있다가 저녁 때 남편 사무실에 가서 남편을 픽업해 집에 가는 길에 치킨을 사다가 저녁으로 먹고. (여기 와서 먹어본 치킨은 두 가지(KFC와 Church Chicken)인데 KFC것이 나은 것 같다. 12조각에 13불 정도 하는 세트가 있는데 한 세트면 우리 식구 두 끼가 해결된다.)
저녁을 먹고 나면 영화나 시트콤을 한 편씩 보곤 하는데 며칠 전부터는 “앨리 맥빌”을 다시 보고 있다. 보스턴의 한 변호사 사무실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꽤 재미있다. “프렌즈”의 시니컬한 코미디와는 또 다른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고, 특히 음악이 아주 좋다. 극중에서 지하 바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여가수(실제 가수)가 거의 대부분의 노래를 부르는데, 선곡도 좋고 노래도 아주 잘 부른다. 일종의 법정 드라마이기 때문에 재미있는 영어표현도 종종 들을 수 있다. 그렇긴 하지만.. 얼마쯤 공부를 하면 자막이 없이 100%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요즘 만나는 사람들과는 영어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 나눈다. 미국에서 유학을 한 사람도 있고 캐나다 사람과 결혼을 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이민 1세대들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한참 동안 고민만 나누다가 아이들이 놀면서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기가 일쑤이다.
최소한 여기서 어릴 때부터 자란 1.5세대 정도는 되어야 영어를 듣고 또 말하는 데 거침이 없는 것 같다. 표현 한 가지를 할 때도 책에서 배운 건조한 표현과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과 놀면서 익힌 표현은 차이가 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이 나지 않는 문제이지만 자꾸자꾸 고민이 된다.
주말이 될 때까지 남은 며칠은 비슷한 패턴이 될 것 같다. 주말에는 미니미네 집에 한번 놀러 갈까 하고 있다. 12월 중순이 되면 미니미네 식구는 시댁인 에드먼튼으로 떠나기 때문에 그 전에 그 집에서 벽난로를 때면서 하루 놀기로 했다. 우리 집에는 벽난로가 없지만 겨울에 벽난로(정확히 말하면.. 벽난로 모양의 가스 난로)를 피고 있으면 왠지 아주 아늑한 느낌이 든다. 다음 번에 이사할 때는 벽난로(모양의 가스난로)가 있는 집으로 이사해야지. 연말에는 이사를 한다고 하는데 가서 거들어야 하고..
그리고 남편 선배네 언니가 김장이라고 김치를 잔뜩 주셔서 답례로 한 번 찾아 뵈어야 하고.. 항상 고맙게 이것저것 챙겨주신다. 우린 별로 갖다드릴 것이 없어 또 치즈케익이나 한 판 구울까 하고 있다.
한가로운 밴쿠버라고는 하지만 뭐 나름대로 또 바쁘게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내일모레가 아빠 생신이다.
여기 와서 아직 정신없이 살고 있지만 이런 날이 되면 부모님께 죄송해지곤 한다. 뭘 그리 대단스런 삶을 살아보겠다고 생신 때도 곁에 못 있고 먼 곳에서 전화나 딸랑 한 통 하곤 하니 말이다. 지난 달엔 외할머니 생신이셨고 12월부터는 아빠 생신을 시작으로 3월까지 어른들 생신이 계속되는데 줄곧 그런 죄송한 마음은 가시지가 않을 것 같다. 아무쪼록 건강하시길. 건강하셔서 우리가 자리를 잡으면 오셔서 함께 있고 그러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