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같이 일하는 E가 캐나다 시민권을 따기 위한 시험을 보게 되어 평일이지만 문을 닫고 집에서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쉬고 있다. 남편은 선배의 사무실 컴퓨터 세팅을 도와주기 위해 아침부터 나가서 저녁 늦게야 돌아올 것 같다.
하루종일 혼자 집을 보는 것이 이민와서 처음있는 일인 것 같다. 뭔가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일어나서 TV 좀 보다가 책 좀 뒤적거리고 인터넷으로 우리 홈페이지에 예전에 올렸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며 상념에 빠지다 보니 벌써 오후 4시가 가까워온다. 하긴 뭐.. 이렇게 지나가는 하루를 보내보고 싶었다.
엊그제는 출근하는데 갑자기 광화문 거리가 무척이나 그리워졌다. 세종문화회관과 교보문고부터 시작해 시청쪽까지 거리를 쏘다녀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광화문, 시청앞.. 그 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내가 참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다. 아주 어릴 적부터 집에서 교회를 가려고 자주 타고 다니던 버스의 노선은 남대문을 지나고 세종문화회관을 돌아 시청앞 삼성본관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학교 이외의 많은 시간을 교회에서 보내고 친구들도 거의 교회에서 만났던지라, 중학교 때까지 그 노선의 버스를 셀 수 없을 만큼 타고 다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남산순환도로도 내가 참 좋아한 곳이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도 그 동네에서 친구들과 참 많이 놀았다. 교회에서 정동 뒷골목을 지나 광화문 쪽으로 가서 <선다래>라는 곳에서 짜장떡볶이를 곧잘 사먹던 기억이 난다. 교회를 마치고 나면 오후 서너시가 되는데, 뭐 특별한 볼 일도 없이 여럿이 광화문까지 걸어가서 책을 구경하거나 하다가 군것질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남자친구가 생겨 영화를 보거나 할 때에도 그 쪽에서 만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는 교회 뒤에 있는 회사에 취직을 하여 작은 골목골목이며 식당들까지 다 알게 되었고, 그 동네에서 한편으로는 지겹게, 한편으로는 그립게 기억되는 회사 생활을 보냈다.
그 동네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이민 준비를 할 무렵이다. 캐나다 대사관이 무교동에 있는지라 일을 볼 때마다 버스를 타고 광화문에서 내려 걸어갔다. 일을 마치고 나면 남편과 교보문고 뒷골목의 포장마차에서 떡볶이와 튀김을 사먹고는 했다. 국내수속을 위한 종로구청도 그 부근이었다. 우리나라를 떠날 결심을 하면서 서류를 제출할 때의 기억의 배경도 그 동네였고 결국 이민이 결정되었다는 통보를 들었을 때의 복잡한 심경의 배경도 그 동네였다.
그런 저런 이유로, 머리 속에 골목까지 훤한(지금도 그대로일지는 모르지만..) 그 동네가 많이 그리웠나보다. 생각해보면.. 딱히 그 동네에 간다고 해도 찬 바람이 부는 거리를 떨며 돌아다니는 이외에는 별로 할 일도 떠오르지 않는데 말이다.
석진 (2003-11-27 18:34:39)
끝부분의 내용이 맘에 걸리는군요… 왜 찬 바람부는 거리를 떨며 돌아다니기만 할 거라 생각하죠…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데… 광화문거리는 아영씨 맘의 고향인가보군요. 건강해요^^
Ana (2003-11-28 15:21:50)
석진씨 안녕하세요! 추워졌다는데 건강은 어떠세요? 음.. 물론 가족과 친구들은 따뜻한 곳에서 만나서 놀아야죠.. ^^ 광화문에서는 왠지 실내보다는 거리를 쏘다닌 기억이 많아서 그런 생각이 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