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후 첫 날

충분한 수납장 덕분으로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났다. 일단 여기저기에 꾹꾹 눌러 넣어두기만 한 상태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집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어제 상자를 다 풀고 정리를 마감하고 청소까지 끝냈다.

집안 정리를 하는 동안은 계속 비가 오더니 오늘은 마침 햇살도 비치고 기분 좋은 날이다. 남편은 12시부터 3시까지 하는 영어 수업을 들으러 가고 나는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이것저것 하고 있다. 딸기도 아침에 남편 학원가는 길에 산책하고 지금은 내 무릎 위에서 기분 좋게 자고 있다.

집안 정리에 대해서는 뭐… 그냥 박스를 풀고 물건을 꺼내고 대강 먼지를 털어 집어넣고의 연속이었다. 처음에 와서는 여기 생활용품의 가격이 생각보다 저렴해서(물론 좋은 건 한국보다 훨씬 비싸다.) 괜히 바리바리 싸들고 왔나보다 후회를 했지만, 상자를 열면서 오랫동안 정들었던 물건들이 하나하나 나올 때마다 어찌나 반가운지.. 역시 잘 가져왔다고 떠들어대면서 여기저기에 배치를 했다. 그렇게 몽땅 싸갖고 왔는데도 새로 장만한 물건도 만만치 않다. 일단 청소기(전압도 다를 뿐 아니라 여기는 카펫이 대부분이라 카펫용 청소기가 필요하다고 해서 두고 왔다. 그런데 여기 청소기들은 어쩜 그렇게 무거운지 한번 청소기를 돌리고 나면 땀이 삐질삐질 난다. 힘도 세서 가방도 휙 끌어 당기고.. –;;), 책꽂이(이삿짐 포장하는데 포장하는 사람들이 너무 낡았다고 두고 가라고 해서 두고 왔다는.. –; IKEA에서 새로 장만한 책꽂이는 아주 마음에 든다. 모양도 세련되고, 세로폭뿐 아니라 가로폭도 넉넉해서 책을 꽂고 그 앞에 장식품들을 잔뜩 올려놓을 수도 있다.), 스탠드(거실에 등이 없다. 따로 스탠드를 사서 켜야 한다.), 컴퓨터 책상(책상도 역시 포장할 때 두고 오기로 결정. 여기 가구는 다 조립식이라 직접 조립을 해야 하는데 남편이 책꽂이랑 책상 조립하느라 땀 좀 흘렸다.), 비치 의자(베란다에 두려고.. 남편은 런던의 하이드 파크에서 이 의자를 비싸게 임대하던 기억 때문에 샀단다. 들고 다니려나..?) 등등.. 대부분 IKEA에서 저렴하고 실용적인 제품들로 구입했다. 청소기는 기능이 중요하니까 좀 좋은 것으로 샀다.
이사를 마치고 나니.. 안정이 되는 것 같다. 너무 힘들어서 두 번 다시는 이사를 못할 것 같은데.. 남편이랑 함께 정리를 하면서 여기서 10년 살자고 얘기했는데.. 과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

이사 전에 우리가 와서 보긴 했지만 정작 이사를 오고 나니 이 집의 단점들이 눈에 많이 띈다. 입주 전에 칠을 새로 해서 벽은 깔끔하지만 일단 집 자체가 오래된 집이라 수납장 등등이 낡았고 화장실 세면대도 오래된 티가 폴폴 난다. 그래도 이런 것들은 생활하는 데 큰 불편은 없는 것들이지만 치명적인 단점은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앞집 베란다라는 것이다. 한국의 아파트들은 대부분 겹겹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었는데, 다니면서 보니 앞이 훤히 트인 아파트들이 (당연하게도) 훨씬 좋아보인다.
그렇지만 이런 몇몇가지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조건들이 만족스럽기 때문에 당분간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위치도 아주 좋아서 도서관까지 걸어서 5분도 채 안 걸린다. (이곳의 공공 도서관은 한국처럼 공부를 하는 곳의 의미보다는 동네마다 곳곳이 있다는 위치상의 편의성과 엄청난 장서/오디오/비디오 자료들로 유명하다. 도서관과 함께 체육시설도 갖춰져 있어 어린이들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항상 활발하게 드나드는 공간이다. 한국에서 <기적의 도서관> 만드는 프로그램을 보고 너무나 열악한 상황이 참 안타까웠는데 여기 와보니 다른 건 몰라도 한국보다 훨씬 선진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도서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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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저녁.
영어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이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식료품을 좀 사가지고 들어왔다. 콩나물밥으로 이른 저녁을 먹고.. 간만에 한가로운 저녁 시간이다. 이제 학교 가기 전까지는 써리라는 지역을 좀 탐험하고 공부도 좀 하고 그럴 생각이다. 지난 달에 계속 차표사서 다니는 게 너무 피곤해서 한달 정기권을 샀는데 최대한 활용해서 돌아다녀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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