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

공부한다는 이유로 한동안 멀리하다 다시 읽고 보기 시작한 모국어로 쓰인 글들은 정말 달콤하기 그지 없다. 캠핑 메뉴 등을 검색하면서 언제부터인가 읽지 않게 된 한국 블로그들 읽는 재미도 새로 깨닫고. (여기 사람들 캠핑 메뉴는 우리 취향과 조금 다르다. 미리 준비해 가는 팬케익 반죽이라든가. K씨한테 아침에 팬케익을 먹자고 하면 조용히 라면 물을 올리겠지.)

블로그들이 넘쳐나지만, 아무래도 나와 비슷한 처지나 관심사를 가진 블로그들을 더 열심히 보게 된다. (럭셔리하지 않은) 이민 생활을 한다던가, 책을 좋아한다던가 캠핑을 좋아한다던가 등등. 특히 막 이민생활을 시작한 몇몇 블로거들의 글을 읽고는 우리가 이민 와서 좌충우돌하면서 이것 저것 경험하고 구직활동을 하던 기억들이 새록새록했다.

그래서 딸기가 가고 나서 한참 동안 버려진 집 같았던 블로그를 다시 업데이트하기 시작했다. 기록에 대한 강박이 있는 건지, 블로그라는 게 없던 시절에도 다이어리는 열심히 썼었고 (대학 때부터의 다이어리들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가 이민 초기 이사다니면서 다 버렸었다. 한편으로는 애초에 버리고 올 걸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뭘 썼었나 다시 보고 싶기도 하네..) 결혼을 하고 딸기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딸기네 집 홈페이지를 만들어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덕분에 딸기 어렸을 때부터 떠날 때까지의 기록이 다 남아 있고, 더불어 이민 후 지금까지의 기록도 얼추 남아 있더군. K씨는 휴가를 가기 전에 예전 포스팅들을 검색해서 참고하기도 한다.

예전 기록들(비공개 글들 포함)을 십여 년 만에 다시 읽어보니, 그 때는 이런저런 소소한 느낌들을 되도록 충실하게 기록했었던 것 같다. 요즘엔 내가 느끼는 걸 구구절절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나의 말 (특히 기록이 남는 것들)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그냥 안전하게 가려는 습관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요즘처럼 사진 중심으로 간단간단하게 올리는 것보다는 당시의 생생한 느낌을 알 수 있어서 좋긴 하던데. 이건 좀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블로그에 쓰는 글에 얼마만큼 내 견해를 드러내 놓을 것인지.

암튼 예전 글을 읽으며 한가지 마음이 놓였던 것은, K씨도 나도 원칙적인 삶에 대한 자세는 크게 변하지 않았구나 하는 것.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 뭐 그런 것 ㅎㅎ

6 thoughts on “초심

  1. 바람

    저도 다이어리는 꽤 오래써왔었는데
    종이와 컴 혹은 폰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최근에는 폰스케줄적는거 말고는 생각정리를 잘 못하고있어요.
    여기서는 분위기도 글코 둘 다 게을러그런가
    제대로 놀 줄도 모르고
    삶을 즐기며 천천히 살아가시는 딸기네가 늠 부럽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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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a Post author

      저도 한참 바쁘게 스케줄만 챙기고 지내다가 조용히 앉아서 글 끄적이니 참 좋더라구요. 글 쓰면서 다시 읽어 보고 고치고 그러는게 정말 정신건강에 좋은 것 같아요 ㅎㅎ

      음.. 저희 천천히 살아가는 거.. 그냥 게을러서 그런 거 같은뎅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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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Anonymous

    안녕하세요. 저도 블로그는 기록용으로 사용하는데 예전꺼 보면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게 좋은거 같아요. 비공개된거도 공개된것도 머릿속에는 없는데 글로 남아 있는 경우도 많고 오래된 기록들을 보면 내가 이랬었나 취향도 이상했구나 그런 생각도 하고 상당히 재미있어요. 저는 10년 이전 기록들은 일기장도 없어졌고 블로그는 회사가 망해서 없어지고 해서 잃어버렸는데 아까와요. 나의 인생을 통으로 잃어버린거 같은 기분도 들고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요즘은 백업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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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a Post author

      안녕하세요 ^^
      혹시 저와 이것저것 비슷한 점 많으셨던 S님이 아니실까.. 추측해 봅니다.

      예전 기록들 보시고 “취향도 이상했구나” 하고 생각하셨다니 ㅎㅎㅎㅎㅎ 그런데 저도 제가 쓴 예전 기록들 보면 낯설고 재미있더라구요. 얼마전에 읽은 책에 나온 얘기처럼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예요.

      블로그 회사가 망해서 없어졌다니 정말 아까우시겠어요. 저도 비밀번호를 잊어버리거나 해서 잊고 있었다가 나중에 찾아보니 없어진 서비스들이 있는데 거기에 남겼던 기록들 다시 보고 싶거든요. 저희는 백업을 남편이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확인해 보고 보관하는 곳이며 알아두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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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블로그 팔로워

    정말 대단하세요. 이렇게 기록을 꼼꼼하게 하는 것.

    이젠 이민 초창기에 쓰신 글들도 링크를 해두어서 읽을 수 있네요… 이런 글들이 아영씨의 유산으로 남겠죠.

    다시 한 번 정말 대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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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a Post author

      블로그에 올리긴엔 너무 개인적인 얘기나 삽질한 얘기도 많아서 다는 공개 못하지만.. 그래도 십여년 만에 읽어보니 참 감회(?)가 새롭더라구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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