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ning의 추억 (1)

2월 연휴 몇 주 전부터 뭘하고 놀면 좋을까 궁리하다가, 스노슈잉의 천국이라는 매닝 파크에 가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매닝 파크는 밴쿠버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여름에 캠핑했던 기억도 즐거웠던 곳.

크리스마스 때 함께 백패킹을 했었던 P님 부부와 직장 리노베이션으로 강제 휴무 중인 L님까지 총 다섯 명이 함께 떠나기로 했다.

날씨도 좋을 거란 예보에, 매닝 파크 주변 스노슈잉 트레일을 검색하고 겨울이면 흰색으로 변한다는 산토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며 희희낙락 기대에 차 있던 중, 아니나 다를까 고질적인 나의 불안증이 엄습했다.

진입로가 산길이었던가? 눈길에 미끄러지지나 않을까? 기온이 낮다던데 고속도로에 살얼음이 덮여 있으면 트레일러가 갈 수 있을까…? 등등등. 우리끼리만의 계획이라면 당일이라도 취소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내가 주동해 판도 키워뒀고 우리 차로 이동할 계획인 L님이 다치시기라도 하면 어쩌나 등등..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떠나기 직전까지 고속도로 카메라 를 확인하며 전전긍긍하느라 정작 챙겨가기로 했던 물건들도 많이 잊고 가서 혹시 1기(!)가 아니냐는 농담아닌 농담도 많이 들었네 ㅠㅠ


토요일 아침. 칼같이 시간을 맞춰 오신 L님의 짐을 우리 차에 옮겨 싣고 동파를 막기 위해 트레일러 안의 물을 싹 빼고, L님이 사오신 맛난 커피를 마시면서 출발. 스포츠 소녀 L님은 전날도 위슬러에서 스키를 타셨다고.

다행히 당일 밴쿠버의 날씨는 쾌청. (그러나 산의 날씨는 급변한다는 걸 예전 Tofino 여행 때 확실히 배웠으므로, 가는 동안에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가는 동안에도 몇번씩이나 고속도로 카메라를 확인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인터넷이 끊겼다 ㅎㅎ 매닝 파크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규모가 커서 입구 표지판부터 캠핑장 진입로까지 30분 이상을 가야 한다.

아무래도 스키장이 함께 있어서인지, 길은 생각보다 잘 관리되어 있었고, 흙을 뿌리는 차들이 이미 부지런히 다니고 있었다. (항상 감사 감사!!)

공원 진입로도 이렇게나 잘 치워져 있었다.

겨울 매닝 파크는 RV를 이용할 경우 Day Use Area에서, 텐트를 이용할 경우 Lone Duck 사이트에서 캠핑이 가능하다.

여름에 땅다람쥐들이 구멍으로 뿅뿅 나오던, 푸른 잔디밭이던 공간이 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었다.

화장실들이 절반씩 눈에 묻혀 있다 ㅋㅋ

P님네는 이미 도착하셔서 그 옆에 우리도 트레일러를 세우고.

집을 짓자~ (L님 사진)

트레일러 안쪽에 아늑한(?) 자리를 마련해 둘러 앉아 점심 먹을 준비. 메뉴는 P님께서 준비하시겠다고 하셔서 이번에도 염치 불구 간식거리들만 챙겨간 우리였다.

함께 밥을 기다리는 위스키 잭들

새들이 밥을 훔쳐먹는 데 도가 터서 눈깜짝할 새 날아와 이것 저것 물고 가곤 했다.

직접 만든 P님의 특제 육수로 끓이신 오뎅국

많아 보여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도 잠시, 순식간에 클리어된 오뎅국.


감사히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옆에 쌓인 눈으로 쓱쓱 마른 설거지를 마친 후, J님은 보드를 타러 가시고 우리는 스노슈잉을 하기로.

스노슈 준비 중인 나. 참 짧구나… (L님 사진)

저 언덕은 눈에 묻힌 피크닉 테이블임 ㅋㅋㅋ

L님 사진

꽁꽁 언 호수 위로 걸어보기로.

호수 위를 사박사박.. 눈이 햇살에 다이아몬드를 뿌려둔 것처럼 색색으로 반짝였다. (L님 사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반짝이는 눈만 바라보고 걸어도 행복했던, 말 그대로 힐링이 되던 시간.


호수 끝까지 다녀온 후, L님이 준비해오신 따뜻한 핫초콜릿을 마시고 있자니 J님이 오셔서 저녁을 먹기로. 저녁 메뉴는 무려 굴 보쌈이었음?!

L님 사진

보드카와 진저비어를 섞어 만든 칵테일에 (빼놓고 간 라임즙은 못 넣음 ㅠㅠ) 야들야들 냄새 하나 없이 맛있게 익은 보쌈과 달콤한 배가 잔뜩 들어간 굴무침.. 나는 원래 고기를 그리 즐기지 않는데 P님이 만드신 건 그냥 맛있음.

저녁을 먹고 우리 트레일러로 옮겨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기로. 자기 전 화장실에 가다가 본 하늘엔 별들이 그야말로 가득차 있었다. 아름답다. 춥지만 않으면 언제까지라도 보고 있을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한 침낭 안에서 또 즐겁다. 내일은 또 어떤 재미난 것들로 하루를 채울까.

2 thoughts on “Manning의 추억 (1)

  1. 림쓰

    이건 사기 같아요! 아니 어쩜 같은데 다녀온거 맞죠? 이 입에 착 붙는 미친 필력!!! 2화를 보러가야지

    Reply
    1. Ana Post author

      읽기만 해도 막 기분이 좋아지는 엔도르핀 샤워 글을 쓰시는 분께서 별 말씀을 ㅋㅋㅋㅋ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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