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여행을 하게 되기까지

언젠가 썸녀가 말했다. “창작일로 밥 벌어 먹고 살려면 뉴욕에 한 번 가보는 게 좋을 거야. 빚을 내서라도 말이야. 정말, 전 세계 예술가들이 모이거든.”

난 잠깐 일그러진 얼굴로 웃으며 또 험한 말로 잘난 체를 했다. “넌 빚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모르는 모양이구나.” 

아… 난… 도대체 왜 그리 재수없는 놈이었던가. 부유하게 자란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으로 가득 차 가난을 풍부한 인생경험으로 등치시키는데 급급했었다. 

그런 날 이미 잘 알고 있던 그녀는 “으이그~ 정말…” 혀를 한 번 차더니 한동안 창밖을 응시했다. 나 역시 이 관계는 금방 끝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강산이 세번 정도 바뀌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좋아하는 사람 저녁 한 끼 정도는 사줄 수 있는 형편이 되었다.

그래도 몇 해 전부터 뉴욕에 가보자는 아내의 계획에 쉽게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일단 항공료나 체제비도 엄두가 나질 않았지만, 거길 간다고 뭐가 재미있을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혔던 탓이다. 다행히 뉴욕의 치안은 많이 좋아져서 이제 여성 혼자 밤에 지하철 타고 다니는 것도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영어가 통하는 새로운 도시, 미술관과 박물관이 많은 도시라는 것 외에 뭘 더 구경할 수 있을지 몰랐다.

비록 이제는 더이상 삐딱한 시각이 멋져보일 나이는 아니어서, 예전처럼 박물관을 노략질 모음이라고, 건축물을 노예 학대 기록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내가 과연 미술품이나 전시 예술들을 보고 감명을 받게 되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8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가야하지만, 그리고 제법 많은 돈을 쓰게 되겠지만, 과연 그만큼 즐거울까? 

매년 휴가 계획을 세울 때면 그렇게 해묵은 공방을 반복하고 있었지만, 

지난 연말 좋아하는 배우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접했다

마침 그가 너무 가혹하게 조리돌림을 당하는 것이 걱정되던 차여서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글까지 썼었는데, 드라마에서 그 말을 해주던 배우가 스스로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매일매일 슬픔을 가눌 수가 없었다.

아무런 글도, 아무런 그림도, 어떤 창작행위도 한동안 하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새 회계년도가 시작하기 전에 연가를 소진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고, 

뉴욕에 가자는 아내의 제안을 이번에는 왠지 거절하기 힘들었다. 

전 세계 예술가들이 모이는 도시. 예술가들이 모여 돈 얘기를 하고, 은행가들이 모여 예술 애기를 한다는 도시

그곳에 뭐가 있길래 그렇게 창작자들이 넘쳐나는 걸까?

마치 양반 족보를 산 벼락부자처럼, 넘치는 돈을 퍼무어 양반님네 유흥거리를 흉내내다 보니까 전세계 예술의 중심이 된 걸까?    

예술의 지형도를 바꾸겠다고 청운의 꿈을 품고 달려갔지만, 상위 0.1%의 재능을 못가진 꿈나무 후보들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지자, 그냥 일단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만일 간다면, 하루라도 젊은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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