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 팬데믹

팬데믹이란 문자 그대로 지구상 모든 대륙, 전세계적으로 전염병이 유행하는 상태를 말한다. 때문에, 이 국경을 넘나드는 역병에 대한 대처는 당연히 국제보건기구에서 관장해야 하며, 전세계적으로 동일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른의 사정에 의해 각 나라의 정부마다, 각국의 정서와 정치/경제적인 상황에 맞춰 전혀 다른 해법을 내놓고 있다. 역병이 최초로 창궐했던 중국에선 강력한 중앙정부의 행정조치를 통해서 다른 나라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인권을 무시하면서 초기 진압을 적극적으로 시행했고, (적어도 자국의 언론에서 보기엔) 현재로는 전염병의 확장을 성공적으로 멈춰낸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세계 각국의 상황을 무시한채 초기 대처에 미흡했던 미국의 경우, 뒤늦게 국경을 잠그고 수습에 나섰지만 현재 세계 최고로 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공황상태의 경제 때문에 (전염병이 여전히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규제해제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자연 면역 시스템을 도입했던 스웨덴의 경우, 감염여부에 대한 테스트 자체가 워낙 적고, 공권력을 통한 강제적인 방역이나 격리를 안하다 보니 역병에 대한 통계조차도 정확히 집계 되지 못했고, 단지 많은 사망자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는 것 정도만 알려져 있다.


이렇게 국가적으로 진행상황에 극심한 차이가 있다보니까 (그리고 전반적으로 사회불안요인이 계속해서 존재하다 보니까) 언론과 여론에서는 자연스럽게 “우린 잘 이겨내고 있다”라는 독려가 잇다르게 된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고, 국가적인 위기에서 여론이 스스로를 응원하고 현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건 (몇몇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곤)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문제는 상황이 독려와 응원으로 그치지 않고 (다른 나라의 상황과 비교해서) 우월감에 사로 잡힌다든지, 다른 나라의 문화, 정책을 폄하, 조롱, 비난한다든지 하는 정신병이 코로나 19의 전염력에 버금가게 창궐한다는 것에 있다.

특히 세계적으로는 두가지 특이점이 눈에 띄고 있는데, 자신의 무능을 감추려는 미국 트럼프 정부가 모든 책임을 지속적으로 중국한테 돌리려하고 있고, 여기에 중국정부의 의심스러운 초기 대처(특히 초기상황 은폐에 대한 그치지않는 의혹)와 맞물려, 동양인에 대한 증오범죄가 서구 전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사회적 정신병이 서구권 나라에 그치지 않고, 힌국을 비롯한 동양권 나라에서 조차 중국 사회에 대한 심각한 혐오가 만연하고 있는 것은, 현재의 증오범죄가 단지 인종차별 분만 아니라,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 내면의 불안이나 공포와 양면의 칼날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자국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이나 응원 역시 불안과 공포를 반증한다) 심각하게 보자면, 흑인린치나 마녀사냥, 동성애 혐오와 같이 소수자에 대한 공포를 배경으로 하는 테러리즘이 언제든 다시 전세계적으로 창궐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그동안 선진국 문명사회를 자처하던) 현재 서구권 국가에서 아시안 혐오가 번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는 기성 선진국에 대한 조롱이 (그리고 비교급 자부심이) 번지는 악순환도 반복되고 있다.

또 하나의 특이 사항은 마스크에 관한 것이다. 스페인 독감 이후 여러 차례 중증 전염병을 겪고 연구해온 서구권 보건기구에 의하면, 호흡기 질환의 대부분은 손으로 인한 접촉으로 주로 전염이 되고 실제 비말 감염의 가능성은 충분한 거리를 유지할 경우 매우 낮은 걸로 알려져 왔다. 더우기 서양 문화에서 마스크는 비밀스러움, 범죄, 신분 노출 거부, 반란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서구권 국가 대부분이 마스크 보다는 사회적 거리두기 중심의 방역과 직장 폐쇄에 따른 생계보조 등으로 대응을 해왔고, 팬데믹의 일차 유행이 거의 정리되고 있는 이 와중에도 서구사회에서 마스크 착용의 기능성에 대해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 캐나다 BC주에선 몇몇 소매업이나 공공 교통의 경우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반면, 미세먼지로 인해서 지속적인 마스크 착용 경험을 이미 가지고 있는 중국, 한국 등 동양권 국가에서는 일단 마스크에 문화적 거부감이 없었을 뿐 아니라, (지금은 마스크 착용이라는 것이, 증상이 없어서 감염여부가 불확실한 나 자신으로부터 타인을 보호한다는 목적이라는 것으로 대부분 동의하고 있지만) 초기에는 (과학적 근거가 불분명하고, 심지어 한국 정부 보건부처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권장한 적이 없었다고 항변하는 상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스크 착용이 감염자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는 각자도생의 호신도구로서 인식되었기 때문에, 팬데믹 초기부터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 필수화 될 수 있었다. 초기에 있었던 한,중,일 3국에서의 마스크 매점매석, 품귀 현상이 이를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마스크 착용을 초기부터 일상화 했던 국가들이 더 나은 방역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이로 인해서 자부심에 취한 나머지 타국의 정책이나 문화를 조롱하는 일들이 만연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마치 팬데믹 초기 서구 언론에서, 전염병이 박쥐를 먹는 중국인들로 부터 유래되었다고 하던 여론조작이나, 서구권 국가 들의 밋밋한(!) 통제를 조롱하면서, 좀 더 강력한 보호를 받기 위해 자국 비행기에 서둘러 몸을 실었던 중국 유학생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반면에, 팬데믹 초기 서구권 사회에서 벌어진 동양인에 대한 증오범죄 피해자가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했던 여성, 노약자라는 점은 (증오범죄라는 것이 사실은 약한자를 괴롭히는 비열한 짓이라는 걸 차치하더라도) 다른 문화를 공포나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곧바로 폭력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심각한 정신병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평균 치사율은 그리 높지 않지만 노인/기저질환자의 치사율이 매우 높다는 점, 무엇보다 기존 의학 상식을 뛰어 넘는 전파율과 생존율을 가진 이 신종 바이러스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포심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대부분의 현세대 사람들에게 있어 처음 겪는 미증유의 위기상황을 각국의 정부부처와 시민들이 합심해서 극복해 나가는 것을 보는 건 때때로 감동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이럴때 운전대를 잡고 길안내를 해야 할 세계보건기구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건 매우 아쉬운 일이고, 나라마다 지역마다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팬데믹에 대응하는 건 혼란스럽기 짝이 없지만, 또, 자국 국민들을 계속 죽이는 미국 대통령의 헛발질을 보는 일도 스트레스 쌓이고, 무능한 WHO와 중국 정부가 무언가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은 거둘 수 없지만, 그리고, 세계적으로 엄청난 희생을 치루면서도 근근히 버텨나가기만 하고 있고,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최종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싸움이라 하더라도, 우리, 전 세계는 아직 살아남았고, 지지 않았다. 그러나, 바이러스와 싸워 결국 이긴다 하더라도, 무분별한 국뽕만 넘쳐나고 타인과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한 존중이나 관용이 없다면 이번 팬데믹은 인류역사에 아주 깊고 굵직한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 틀림없다. 특히,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용해서 방역을 이어나가고 있는 현재 상황은, 비록 코로나19가 종식이 된다고 할지라도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사회 운영 시스템에 커다란 변화를 주게 될 것이고, (방역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국제적으로 공통된 전망이나 기준이 없기 때문에 나라마다 자신들에게 맞는 뉴노멀을 창조해낼 것으로 보인다. 만일 우리가 폐쇄적인 자부심과 일그러진 국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팬데믹이 종식된 이후에도 역시 심각한 사회갈등이 유발될 것이 틀림없다. 타인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조금 더 인내하고, 조금 더 긍정적이고, 조금 더 용기를 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