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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컨테이젼. 페스트

지난 2016년 여름 개봉해 1156만 관객을 모은 영화 ‘부산행’에는 대비되는 두 캐릭터가 나온다. 석우(공유)와 용석(김의성)이 그들이다.

좀비 바이러스가 한반도를 휩쓰는 와중에 부산행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아비규환을 다룬 이 영화에서, 석우는 함께 열차에 오른 딸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과 연대해 사투를 벌이면서 그간 잊고 지낸 삶의 진짜 가치를 깨닫는다. 이와 달리 용석은 바이러스에 대한 극한의 불안과 공포 탓에 혐오를 조장하고 편을 가르면서 급기야 자신마저 위험에 빠뜨린다.

뛰어난 예술 작품은 현실 세계를 반영함으로써 우리네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원인 모를 바이러스 창궐 사태에 직면한 각양각색 군상을 그린 할리우드 영화 ‘컨테이젼'(2011)이, 최근 코로나19가 번지면서 벌어지는 사회 현상을 판박이처럼 그려냈다는 평을 얻어 다시 한 번 회자되는 이유다.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프랑스·1913~1960) 소설 ‘페스트’ 역시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의연한 자세로 운명에 맞서는 사람들을 세밀하게 조명했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폐쇄된 도시를 배경으로 둔 이 소설에서 사람들은 저항 한 번 제대로 못한 채 맥없이 목숨을 내준다. 누군가는 질서를 되찾고자 처절하게 싸우는가 하면,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를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르려는 선동가들도 득세한다. 이 와중에도 의사 리유는 환자들 물집을 째고 고름을 짜내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한다.

카뮈는 소설 ‘페스트’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문학평론가인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는 “카뮈는 우리가 ‘현대라는 노예선에 동승했다’고 봤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 존재는 부조리한 현실에 구속돼 탈출할 수 없다는 의미다. 결국 누구도 노예선에 함께 탔다는 ‘동승의식’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이다. 소설 ‘페스트’는 이러한 동승의식에 바탕을 둔 피할 수 없는 운명공동체를 다룬다. 사회적 구원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거대 담론이 아니라, 개인이 지닌 자유를 행사함으로써 잔혹한 현실 속에서도 최소한의 자기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당부다. ‘페스트’ 속 의사 리우는 그 대표적인 상징이다.”

재난과 같은 인류를 향한 위협은 그 사회가 지닌 맨얼굴을 오롯이 들춰내는 거울이라고들 말한다.

최 교수는 “진실은 고난 속에서 드러나기 마련”이라며 “극심한 불안과 공포로 인해 진실을 외면하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빛나는 인간다움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지금 (코로나19 사태 국면에서) 망설임 없이 대구로 내려가는 의료진 등을 보면서는 빛나는 인간적 위엄마저 느껴진다”고 전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안에서 극단의 혐오 정서를 조장하려는 일각의 움직임을 두고 ‘고수는 핑계가 없다’는 바둑 금언(金言)에 빗대어 말을 이었다.

“혐오는 결국 핑계다. 윤리는 자기화하는 것이다. 모든 해법 찾기는 문제를 자기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서 시작한다는 이야기다. 해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는 게 카뮈의 당부다. 그러다 보면 결국 남에게 핑계를 댈 일은 없다.”

같은 맥락에서 신화학자인 고혜경 치유상담대학원 대학교 교수 역시 “심리학에 ‘해리'(解離)라는 용어가 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큰 충격이나 상처를 입으면 무의식 깊이 그것을 집어넣은 뒤, 그런 일이 아예 일어났는지조차 모르게 된다는 개념”이라며 진단을 이어갔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서로 모순되는 다양한 소리들이 있기 마련이다. 늘 갈등하면서 사는 것이다. ‘해리’는 그러한 갈등 속에서도 우리가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돕는 탄력성을 잃도록 만든다. 문제의 원인을 ‘네 탓’이라며 바깥에서만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가 성숙하는 길은 구성원들이 수많은 갈등을 내면에 담아낼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다. 갈등은 나쁜 것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지닌 특성이기 때문이다.”

고 교수는 “갈등을 외면하도록 만드는 해리는 가장 쉬운 방법인데, 이 경우 상식을 벗어난 양 극단의 목소리만 세상에 불거져 나올 수밖에 없다”며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전반적인 현상은, 성찰 없는 해리 상태가 빚어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분석했다.

혐오의 밑바닥에는 늘 극심한 불안과 공포가 똬리를 틀고 있다. 현재 진행형인 코로나19 사태는 이러한 혐오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고 교수는 “가장 목소리를 높이는 이가 가장 두려움에 떠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최근 신천지 등에서 ‘우리가 피해자’라고 주장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 해리 현상으로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며 “지금 사태는 우리 안에 깊이 잠들어 있던, 그림자처럼 억눌려 있던 욕망의 민낯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계기로도 다가온다”고 말했다.

최 교수도 “혐오는 불안 탓에 자기 스스로를 엉뚱한 곳에 내다버리는 데서 비롯된다.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남을 혐오하지 않는 법”이라며 말을 이었다.

이어 “해리 상태는 선택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 내면의 상처가 제대로 치유되지 않았기에 그 병리가 거울처럼 우리 사회 전체 모습을 그대로 비추는 셈”이라고 부연했다.

“반구(反求)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면 내 안에서 원인을 살피는 것인데, 비판에 직면했을 때 그 말을 한 상대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내가 왜 그러한 비판을 당했는가’를 자기 안에서 구한다는 의미다. 이는 윤리의 밑거름이 된다. 모든 윤리는 내 안으로 문제를 끌어와 문제를 바라보는 데서 싹트기 때문이다.”

그는 “카뮈가 인식한 부조리한 근대는 신이 침묵하는, 신이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엄중한 시대다. 도대체 설명이 안 되는, 느닷없이 몰아닥친 이번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를 한걸음 전진시키는 보다 깊이 있는 문학 등 예술작품이 나오기를 바란다”며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는 일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공유하고, 그것을 갈고 닦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 우리는 이 극한의 상황에서 민낯을 접하기도 하지만, 그 민낯에 저항하는 진짜 얼굴들을 이미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고 교수 역시 “예술은 우리 집단의 고백이다. 현실을 휘감은, 직시하기 힘든 끔찍한 날 것들을 은유하고 함축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한 발짝 떨어져 삶을 반추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라며 “지금 우리는 기막힌 일들을 겪고 있지만,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사람들을 새삼 확인하면서 또 다른 희망을 갖게 된다”고 강조했다.

CBS 이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