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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간다는 것

시간여행을 다루는 만화나 영화에서 흔히 “아픈 곳이 없으니까 날아갈 것 같아…” 하는 대사가 너무 이해가 간다. 언젠가부터 단 한 군데라도 안 아픈 날이 없었으니, 몸에 아픈 곳이 없다는 감정이 어떤 거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가끔, 아주 가끔, 걷거나 뛰는데 허리나 무릎이 아프지 않은 날이 있으면 완전 로또 맞은 기분이 든다. 건강에 감사하게 된다. 

설레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설레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심장이 뛰는 건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전철을 잡아 타기 위해 계단을 뛰어오를 때 이외엔 없다. 소년중앙 신간을 기다리고, 슬램덩크 신간을 기다리고, 극장의 빨간 의자에 앉아 스크린에 빛이 꽂히는 순간을 기다릴 때만큼의 설렘을 또 느낄 수가 있을까? 그래서 어른들은 복권을 사는 것인가?

재미도 없고 욕망도 없다. 예전에는 배우고 싶은 게 그렇게 많았는데, 더 이상 학습욕구가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인간관계의 허무함을 느낀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정을 주는 것에 겁을 낸다. 하지만 동시에, 그나마 사람들과 어울릴 때가 가장 재미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생각을 나누는 것만이 유일한 재미. 이 딜레마를 극복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 대해 조금씩 더 알게 된다. 십 대 중반부터 자아가 형성된다고 봤을 때, 그 후 40대까지는 자신의 실제 모습과 자신이 되고 싶어 하는 워너비 상에 대해 혼돈을 갖고 있었다. 나는 이제껏 내가 혼자 일해야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여럿이 같이 일하는 게 필요한 사람이었다. 나는 이제껏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럽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내 얘길 떠들기 좋아하는 관종 꼰대였다.

직간접적 경험을 통한 지식이 늘어나지만, 그걸 누군가에게 강요한다는 것의 허무함도 같이 알게 된다. 박미선이 “어쩌면 선배님은 그렇게 잔소리-꼰대짓을 안 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양희은이 한 대답은 “내가 뭐라고 한다고 니들이 듣니? 듣지도 않을 걸 서로 피곤하게 왜 말해”였는데, 그것은 진리 (“내 코가 석자야. 남들 신경 쓸 시간 없어.”라고 한 이경규의 말도 진리). 인간관계에서 집착을 버리게 되자, 남들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에 대해 신경을 좀 덜 쓰게 되고, 또 그만큼 자기 자신에게도 솔직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나 스스로에게 기대를 안 하니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타인에게 기대를 안 하게 되니까 사람들을 천연덕스럽게 무시하는 버릇도 생겼다.

어차피 세상에는 내 맘대로 되는 게 별로 없다는 걸 안다. 뭔가를 향해 노력을 한다는 건 물론 존경받을 일이지만, 항상 응당한 보상이 따르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안다. 자연스럽게 욕심이 줄어든다. 집착도 줄어든다. 세상에는 나름 순리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좋아하던 걸 건강 때문에 포기하는 일이 많이 생긴다. 건강 때문에 자기 생활에 규칙을 점점 많이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이제, 어디 한 군데 아픈 것이 너무 당연한 것처럼, 뭔가를 포기하는 것도 너무 당연해진다. 비싼 음식을 먹게 되는 것도, 경제적인 여유 때문이 아니라 먹는 양이 줄어서 그렇다.

똑똑한 사람보다 친절한 사람이 좋아진다. 나도 친절한 사람으로 늙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