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원래 줫같다.
아마 십대~20대 초반에 암 생각없이 세상에 불만을 터뜨릴때 빼고는 (아.. 물론 그때도 사실 넘 힘들다. 근데, 전두엽의 도파민은 금방 줄어드니까..머.), 사는거 자체가 내내 힘든 것 같다. 특히 부양가족이 늘어날수록, 소신을 찌그러뜨려야 하는 순간이 많아진다 (응팔에서 데모하던 큰 딸을 가둬두던 성동일처럼). 타인과 자기 한 몸 존엄을 지키고 사는 것도 이미 장난 아닌데, 여기에 애들 키워내는 건 정말 새로운 차원인 것이다. 육아와 직장일을 병행해내는 거 자체가 슈퍼맨 슈퍼우먼이 되는 순간이다.
그래도, 국가 입장에서 볼 때 저 말썽쟁이 애들은 미래의 납세자가 된다. 그래서 이 줫같은 인생을 견디라고 양육비용도 지원하고, Family Emergency 라는 명목하에 (개인의 병가처럼) 급하게 쉴 수 있는 휴일을 제공한다 (연가에 포함되기도 하고, 별도 병가로 존재하기도 한다). 국가나 자본가들이 선해서? 천만에! 그것이 노동의 효율을 높히고, 미래 세대의 납세율을 높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근시안적인 기업, 당장의 당기수익만을 바라보는 기업 입장에서는, 이런 각종 노동법 때문에 당장 벌 수 있는 돈이 줄어든다. 그래서 나온 것이 플랫폼 노동자. 대기업과 계약해서 일을 하지만, 그들은 개인사업자, 하청업자 자격으로 기업과 계약한다. 당연히 일하면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 (자재, 기기, 관리, 안전, 안전, 안전)은 온당히 본인 몫이다. 통장에 찍힌 숫자로만 보면 일반 최저임금 알바를 뛰는 것 보다는 많이 받겠지만, 이런 모든 비용이 담겨져 있다는 걸 생각하면 너무 헐값에 자신을 팔아 넘긴다. 대표적인 예가 택배 노동자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나아지지 않는 자신들의 삶. 게다가 말 안듣고 막나가는 아이. 제대로 된 저택에서 중산층의 삶을 살 줄 알았건만 월세 아파트 생활을 전전해야 하는 건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금융위기가 어째서 발생했는지에 대해선 궁금해하지 않는다. 이들의 가난은 이들에겐 마치 천재지변과 같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 가난한 사람들은 아내와 싸우고, 삐뚤어진 자식들과 싸우고, 그 자식이 사고친 학교와 싸우고, 그럴 권리가 없는가? 막말로 일하다가 강도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가도, 자신의 건강과 가족을 먼저 걱정해야 할 권리가 없는가?
내 경우엔, 운이 좋게도 코로나 사태에 비교적 타격을 덜 입은 터라, 사사건건 주변 이웃들에 대해 동정하는 버릇이 있었고, 곧이어 그러한 태도가 정말이지 오만불손한 태도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동정하지 말자’, ”차라리 인간 대 인간으로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밥그릇 싸움을 하자. 차라리 내가 이기적인 인간이 되는 게 상대의 인간적 존엄을 지켜주는 일이다”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인간 대 인간의 경쟁이나 싸움이 되기엔, 현재 노동환경은 이미 너무나 양극화 되어있고, 플랫폼 노동자들 처럼, 기본적인 노동법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천정부지로 늘어나고 있다. 내가 컴플레인 하고 나랑 쌈박질 하는 그 순간 때문에, 그들의 가정이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이 비인간적인 플랫폼 노동 시스템 자체를 없애야 하는 건 맞는 말이다. 그래도 당장, 내가 그걸 없애기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플랫폼 노동자에게 좀 더 상냥하게 대응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지. 그게 연대가 되었든, 동정이 되었든, 그것이 단지 굴절된 자뻑을 느끼기 위한 것이라도 말이다.
나의, 그 잘난, 의도가 어쨌던 간에, “연대”라는 건 종종 그 결과로서만 제 기능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