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킹할 때 큰 가방을 짊어지고 백패킹하는 사람들을 보면 재미있겠다 싶긴 했어도, 나는 못할거라 생각했었다. 그냥 올라가는 것도 힘든데 저걸 지고 어찌 올라가.. 그런데 좀 다니다 보니 예쁜 곳에 가면 바로 내려오기가 아쉽고,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좀 더 오래 느껴보고 싶어졌다. 차가 다니지 못 하는 깊숙한 자연, 그 곳의 노을지는 모습, 해가 뜨는 모습, 하늘에 뜬 달의 모습.. 실제로 보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정보를 좀 찾아보니 체력도 체력이지만 더 큰 장애물은 비용이었다. 백패킹이란 게 초기 비용이 상당히 드는 액티비티였던 것. 마침 작년에 들인 트레일러도 할부가 한참 남은 채라, 여기저기 가보고 싶다는 나에게 K씨가 어떻게 사람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힝..) 그래서 트레일러 할부 끝나고나서나 생각해봐야 하나 하던 참에,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 친구분들과 으쌰으쌰해서 예정에 없던 첫번째 백패킹을 하게 되었다. 빌린 배낭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오토캠핑용 (=무겁고 부피가 큰) 커다란 침낭을 덜렁 담고, K씨는 거기에 물과 오토캠핑용 슬리핑 패드를 더하고. 먹거리 등 무거운 짐은 친구분들께서 다 지고 가셔서 아직까지 죄송스럽다.. ㅠㅠ
전날의 숙취와 부족한 수면에도 불구하고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지. 그 날부터 틈만 나면 백패킹 관련 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장비들을 마련할 엄두는 못 내고 있었는데, 우리집 쇼핑 담당 K씨가 정보 검색을 시작했다 ㅎㅎ 본인도 백패킹이 재미있었나 보다. (설마 내가 좋아해서라는 이유로만 그런 건 아니겠지? ㅎㅎ)
백패킹을 하려면, 일단 필수로 필요한 것이 배낭, 그리고 침낭과 슬리핑 패드. 선수(?)들은 맨땅이나 해먹에서 자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엔 필요없겠지만 우리는 텐트도 필요하다. (몸만 둘러쌀 수 있는 bivy라는 작은 텐트도 있지만 우리에게 맞는 건 2인용 가벼운 텐트.) 이렇게만 있으면 일단 떠날 수 있다.
배낭 선택이 가장 까다로웠는데, 여러 모델을 산 후 집에 와서 짐을 넣고 메 보고 몸에 맞지 않거나 불편한 건 환불했다. 내가 체구가 작다보니 날씬하고 높게 올라가는 모델은 다 불편해서, 좀 낮게 디자인된 모델을 찾다 보니 결국 정가를 주고 구입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엔 저렴하게 파는 곳도 있던데 캐나다는 왜 이렇게 다 비싼 거야 ㅠㅠㅠㅠ) 나중엔 마음 편히 로컬 비즈니스 돕는다고 생각하고 작은 규모의 상점에서 구매.
슬리핑 패드는 이월상품을 대폭 할인해서 파는 걸로 구매해서 비교적 선택이 쉬웠고, 침낭도 역시 세일 상품을 샀는데, 그러다보니 일반 남성용을 사서 내가 쓰긴 무척 길다… 그래도 비교적 가벼운 제품이라 그냥 쓰기로.
텐트는 아직 못 샀지만 이제 대피소가 있는 곳으로의 백패킹은 가능해졌다~ ㅎㅎㅎ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우 중요한 밥먹을 도구들. 우린 캠핑장에서도 집에서 쓰는 냄비들을 그냥 썼기 때문에 이번에 마련해야 했다. 냄비는 무조건 스테인레스에 널찍한 용량이어야 한다는 주의라 선택이 쉬웠다. 구경하다 보니 수저나 머그컵 등 귀엽고 예쁜 제품들이 많았지만 일단은 있는 걸 활용하기로.
텐트를 사기 전까지는 트레일러 캠핑과 대피소 숙박 백패킹으로 살살 다녀볼 예정이고, 텐트를 산 후엔 페리를 타고 다녀야 하는 곳에 자전거 캠핑을 다녀볼까 한다. (예쁜 곳이 진짜 많은데 페리 승선료가 너무 비싸서..) 우후후 신난다.
그런데 손꼽아 기다리던 주말에 무려 호우 경보 발령 ㅠㅠㅠㅠ
일박이일 백패킹은 아무래도 무리다 싶어 산에는 비 대신 눈이 오기를 바라면서 스노우슈잉을 가기로. 주차장이 평소보다 한산하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꽤 있었다. 우리처럼 주말 기다리며 놀 궁리하는 사람들이 많은게지 ㅎㅎㅎ
일단 주차를 하고 차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든든하게 에너지 보충을 하고 스노우슈를 신고 살살 올라가본다. 예보에 아침엔 눈이 온다고 하더니 눈이 아니라 진눈깨비와 비가 번갈아 오네 ㅠㅠ
그래도 이왕 나섰으니 열심히 올라가 본다. 방수 자켓과 바지도 챙겨입었으니 얼마나 방수가 되는지 테스트도 해 보자 싶고.
와 한적하고 좋다~ ㅎㅎㅎ
진눈깨비를 맞으며 두어시간 정도 걸어 지난 번에 점심을 먹은 곳에 도착. 그런데 언덕의 모양이 지난 번과 좀 다르게 느껴진다. 그 때부터 새로 내린 눈이 몇 미터가 될테니 가능한 일이다. K씨가 언덕 가장자리에 서 있었는데 무너질까봐 왈칵 겁이 나서 안쪽으로 들어오라고 불렀다. (그런데 실제로 그 전날 우리가 간 산에 작은 눈사태가 있었다고! 관련 내용은 여기에.. 워낙 사람들이 많이 가는 산이라 안전할 줄 알았는데, 어디든 항상 조심해야 하는 듯..)
방수옷들이 역할을 잘 해 주어 속에 입은 옷들은 괜찮았으나, 배낭은 레인커버를 씌웠음에도 다 젖었고 (코스트코에서 산 하이킹 가방인데, 있을 건 다 있는데 어딘가 좀 애매함 ㅎㅎ), 방수재질이 아니었던 장갑은 속까지 푹 젖어서 손이 시려웠다. 장갑은 두 개 이상 가지고 다니면서 젖으면 바꿔 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다음번 지름은 방수 장갑이 되는구나.. 하아.)
젖은 옷들을 차에 넣고 얼른 집에 와서 벽난로를 쬐면서, 도대체 호우 경보 내린 산에 왜 기어 올라가 쫄딱 젖어야했을까 싶기도 하면서 상쾌한 공기와 눈을 밟는 즐거움이 아직 남아 다음 번 산행을 계획하게 되는 오후였다.
저는 겨울에 백팩킹 가시는, 그것도 아니고 그냥 차로 가는 캠핑도 대단해 보여서 진눈깨비 내리는데 가셨다니 다른 차원의 분이신거 같습니다. 상쾌한 그 기분은 뭔지 알거 같습니다. 정말 추운데도 상쾌한. 쨍하고 좋은 기분. (그래도 진눈개비는…)
저도 몇번 갈지 몰라서 작년에 그냥 여행용 베낭 메고 갔었는데 사야지 사야지 하면서도 아직 못 사고 있어요. 언제 한번 가서 메봐야 하는데 아직 5-6개월이나 남았다고 생각해서 게으름 피우고 있습니다. 생각난 김에 한번 가봐야겠어요.
백팩킹은 돈잡아 먹는 귀신이예요. 장비 생각하다보면 끝이 없더라구요. 올해는 태양열 충전기도 하나 사야지 생각만 하는데 살라나 모르겠습니다. 60리터짜리도 굉장히 커보이네요. 저는 남편이 90 사야 한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저는 사이즈에 전혀 개념이 없습니다) 했는데 60도 커보여요.
아 저는 써니베일님께서 새벽에 뛰러 나가시거나 피트니스 클래스 들으시는 걸 보면 다른 차원이시란 생각이 드는데 ㅎㅎㅎㅎ
미국엔 정말 좋은 딜들이 많더라구요. 제가 산 백팩도 이 곳의 2/3 가격에 살 수 있는 곳들도 있던데.. 부럽습니당 ㅎㅎ 처음엔 50리터 짜리 생각했는데 제가 고른 모델은 50리터와 60리터가 무게가 같아 이왕이면 좀 여유있게 담자 생각했어요. 대신 내용물의 무게는 그만큼 늘리지는 않을거구요. (무겁게 다니다가 무릎 나갈까봐 ^^;;;)
지난 번 백패킹에서 태양열 충전기가 필요하셨나봐요. 저희도 한번 나갔다 오면 아쉬운 것들이 또 생기고 그렇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