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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 컴플렉스

자. 이제 이틀 후면 휴가라고 생각해봅시다. 8시간 정도 운전해서 고즈넉한 바다 마을로 놀러 간다고 생각해보자구요. 일주일 정도 캠핑을 하는 여행이라고 한다면 더 좋겠구요. 그럼 어디까지가 휴가 준비(일)고 어디서부터가 휴가(휴식)라고 봐야 하나요?

기다리는 시간도 데이트의 일부라고 생각하시는 낭만적인 분도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해는 가요. 특히 데이트에 늦는 상대방을 기다릴 때, 고소한 커피 냄새가 가득하고 느릿한 재즈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가벼운 에세이를 읽으면서, 가끔씩 창에 흐르는 빗물에 굴절된 풍경을 바라보면서 기다린다면 더 그렇죠. 하지만, 번잡한 시내 거리, 예를 들어 강남역 뉴욕제과나 타워레코드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상대가 많이 늦는다면요. 삐삐도 핸드폰도 없는데 말이에요.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해보니 몇 시간 전에 이미 출발했다고 하고요. 마침 비도 내리고, 옆에서 누군가 우산으로 자꾸 찌르고, 갑자기 도로에 앰뷸런스가 사이렌을 울리면서 어딘가로 황급히 향하는 거죠.  음.. 이래도 기다리는 게 데이트의 일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예전에 장기 캠핑을 준비할 때는 이런 부분 때문에 아내와 제법 많이 다퉜습니다. 전 아마도, 텐트를 다 치고 타프도 치고 의자를 펴서 맥주를 한 잔 할 때 비로소 준비(일)를 다 마치고 캠핑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내는… 아마도, 인터넷으로 캠핑 사이트를 예약하는 순간 준비 끝 캠핑 시작인 것 같구요. 그렇기 때문에 아내 입장에서는 제가 텐트를 칠 때, 일주일간 잠을 자야 하는 상황을 고려해 가면서, 최적의 형태로 치기 위해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는 걸 이해할 수 없었을 거예요. “아니, 무슨, 군대 작전 수행해? 왜 휴가를 와서도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하면서 말이죠. 반대로 제가 보기엔 캠핑 짐을 싸면서, 물건 하나하나 짐가방에 넣을 때마다 옛 추억에 잠기며, 그 물건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하나하나 늘어놓는 아내가 못마땅했던 거구요. “아니, 뭐 하는 거야? 얼렁 짐 싸고 얼렁 자야지, 내일 또 새벽같이 일어나서 운전을 해야 할 거 아냐!” 

근데, 사실 어디까지가 준비과정이고 어디부터가 그 과실을 만끽하는 행위인지 구분을 짓는 건 쉽지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도 또 상황에 따라 기준이 다르거든요. 텐트를 다 치고 나서야 캠핑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저조차도, 커피를 내릴 때는 원두를 손수 가는 것부터 시작하는 걸 좋아합니다. 음악을 들을 때에도 천천히 자켓과 속 비닐에서 음반을 꺼내, 행여 지문이 묻을세라 조심히 가장자리를 들어서 턴테이블에 둔 후, 천천히 톤암을 내려서 음악을 듣는 걸 좋아합니다. 저에겐 콩을 가는 순간부터, 음반을 자켓에서 커내는 순간부터 커피를 마시는 일이고 음악을 듣는 일이니까요.

과정과 그 결실, 어쩌면 거기엔 구분 따윈 애초부터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마치 허리 디스크, 탈모, 당뇨, 고지혈증, 무좀에는 완치가 없고, 꾸준한 관리를 통해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을 완치에 준한 상황이라고 봐줘야 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그걸 이성적으로는 이해를 하더라도, 쉽게 생활태도를 바꾸기는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우린 쑥과 마늘만 먹고 21일간 동굴 속에서 버텨서, 마침내 인간으로 환생한 웅녀의 자손이잖아요?

애프터 양 (After Yang, 2021)

제작 : A24, Cinereach, Per Capita Productions

배급 : A24

원작 : 알렉산더 와인스타인 “양에게 작별인사를 (Saying Good Bye to Yang)”

각본 / 연출 : 코고나다

주연 : 콜린 패럴, 조디 터너-스미스, 저스틴 민, 말레아 엠마 찬드로위자야, 헤일리 루 리처드슨

— 이 이후로 스포일러 많습니다 —

그렇듯 우리들은 어떤 결실을 얻기 위해서 적절한 자기 즐거움을 희생하거나 자기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과정을 견뎌내는 것에 익숙합니다. “문제 풀이가 재밌어서 쭈욱 해왔더니 어느새 필즈상을 타버렸네요.” 하는 경우는 무척 드문 케이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나은 질의 삶을 꿈꾸며 공부를 하고, 졸업장을 따고, 자격증을 받습니다. 졸업장과 자격증이 마치 더 높은 소득과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대해 인증을 해주는 것처럼 말이죠. 물론, 대다수의 인생에 있어서 이런 졸업과 인증의 반복은 끝이 없습니다. 영화 속 카이라의 말대로, 어쩌면 인간이란 ‘애벌레의 끝은 나비이다’라는 신념을 가지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실제로 도움을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애프터 양>에서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주인공 제이크는, 말하자면 Authentist (한국말에 가장 가까운 번역은 ‘순혈주의자’일까요? ‘정통 선호자’일까요?)입니다. 앵글로 색슨이나 아리아 인종이 타인종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아시아 문화에 경도되어 있죠) 모든 것이 제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과정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죠. 라면 하나를 먹어도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하면서) 제대로 된 식당에서 요리사가 제대로 만든 라면을 먹고, 사랑스러운 딸 미카가 고추장을 만들었다고 자랑을 해도 “그러니까 네가 재료를 넣어서 섞었다는 얘기지?” 하며 시니컬하게 대꾸합니다. 차를 마셔도 원하는 향을 위해 여러 가지 잎을 섞고, 끓기 바로 직전의 물 온도에서 차를 천천히 우려내어 마시는 사람이라, 세간에 유행하는 분말로 쉽게 타 마실 수 있는 차 같은 건 취급을 안 합니다. 제이크에게 차는 엄숙한 의식을 즐기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대개의 Authentist처럼 제이크에게도 제이크 만의 Authentism 원칙이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은 모든 합당한 절차를 다 거치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영화 첫 장면, 수동 카메라의 포커싱과 노출 조정 과정을 즐기는 에게 빨리 와서 같이 찍자고 독촉하는 것처럼요. 어쩌면 본인은 Authentist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백인 남성으로서, 흑인 아내와 가정을 꾸리고, 중국계 여자아이를 입양해서 키웁니다. 집에서는 이국적인 치렁치렁한 옷을 즐겨 입는 그 스스로는, 자기가 다문화주의의 선두에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입양한 아이, 미카에게 중국 전통을 가르치기 위해서 중국 전통이 프로그램된 안드로이드 (영화에서는 ‘테크노 사피엔스’라는 용어를 쓰니 이 글에서도 이후에는 ‘테크노’라는 용어를 혼용하겠습니다) 을 구매합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Authentism은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와 문화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어서, 을 구매할 땐 리퍼 제품을 구매하는 걸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영화 제목 <애프터 양 (After Yang)>에서 After는 시간적으로 “~다음에”라는 뜻의 전치사로도 쓰이지만, “(Search) after” 처럼 “~의 뒤(자취) (추적하는)의 의미로도 쓰입니다. 제목 그대로 이 영화는 의 활동정지 이후에, 의 과거 궤적 (기억)을 추적하는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하이퍼루프를 통해서 자율주행 차량이 다니는 미래로 호모 사피엔스 인간과 테크노 사피엔스라고 불리는 안드로이드, 그리고 클론이라고 불리는 복제인간이 공존해서 사는 세상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스카이넷을 중심으로 테크노들이 반란을 일으킨다는 거창한 SF 액션 활극은 아니고, 잔잔한 가족 드라마 형태를 가지고 있어요. 물론 배경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없죠. 테크노는 어떤 독점기업의 상품인 것이 분명해 보이지만, 클론은 기관에서 입양을 하는 건지, 그 역시 상거래를 통해서 구매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뭐 사실, 제이크가 클론을 싫어하는데 그런 건 상관없겠죠. 그냥… Authentic 하지 않아서 그런 걸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과 이별을 몇 세대에 걸쳐 겪은, 그리고 그 기억들을 압축해서 메모리 뱅크에 저장한 은 언젠가부터 ‘존재’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영화 상, 다른 테크노와 을 비교할 수 있는 장면이 없어서 테크노들에게 원래 이런 기능이 있는 건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영화 첫 장면에서 빨리 와서 같이 가족사진을 찍자는 제이크의 ‘명령’에 살짝 뜸을 들인다든지, 카이라와 대화 속에서 “솔직한 말씀을 드려도 될까요 (May I be honest with you)?” 하며 말을 꺼내는 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갖고 있는 안드로이드에 대한 상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시간에 걸쳐서 테크노의 신경회로가 진화를 하는 걸까요?

영화 속에서도 그 부분에 대해선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단지 의 모델이 처음 출시되었을 시기에는, 테크노들로 하여금 매일 몇 초간 녹화를 하도록 해서 인공지능이 어떤 장면을 memorable (기념할만한, 잊지 못할)한 것으로 판단하는지 파악하는 비밀 실험이 있었다는 소문이 나옵니다. 그리고 사생활 관련 법 개정으로 그 프로젝트는 현재 중단된 상태구요. 때문에, 몇 세대를 거쳐 레코딩을 해 온 의 메모리 뱅크가 의 신경 회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거죠.

Cultural Techno (‘문화용 안드로이드’라고 번역을 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렇다면 ‘전투용 안드로이드’ 혹은 ‘쾌락용 안드로이드’도 이 시대에 있다는 뜻이겠죠)로서 은, 인간의 생활이나 성장, 사람들 간의 관계가 어떻게 호모 사피엔스의 문화에 영향을 주었는지 생각해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걸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자신의 존재가 어떤 건지 생각해왔겠죠. 의 메모리 박스에서 이 거울로 자신을 바라보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이는 등장인물이 자신의 존재 내면을 살피는데 자주 사용되는 영화적 관습입니다.

디디의 성장과 이별, 엠마의 노화와 사망, 에이다와의 만남과 이별을 거치면서, 호모 사피엔스와는 달리 늙지도 죽지도 않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이 즐겨 입었던 티셔츠와 함께 극 중에 계속 흐르던 영화 <릴리슈슈의 모든 것> 오프닝 곡 <Glide>는, 애벌레 단계가 끝나면 나비로서 성장하기보다는, 그냥 바람처럼 세상을 떠돌고 싶다는 의 마음을 반영합니다. 미카의 가정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건, 영원히 늙지 않을 몸뚱이가 아니라, 미카 가족에 대한 자신의 기억, 자신에 대한 가족들의 기억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카이라에게 “마지막에 아무것도 없어도 상관없어요”라고 담담하게 말하던 은 이어서 “공(空)이 없이 색(色)은 존재하지 않아요 (There’s no something without nothing)”라고 말합니다

의 기억을 되짚어가다가 양이 (가사 관리와 미카의 양육이라는 제조 목적에서 벗어나)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낸 여성이 있다는 걸 발견한 제이크는, 그녀가 의 ‘알파’ 메모리 뱅크에 있는 에이다의 복제인간이라는 걸 알아냅니다. 클론 에이다와 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제이크는 이 테크노라는 자기 존재에 대해 힘들어한 적이 있었냐고, 혹시 이 인간이 되고 싶어 한 적이 있었냐고 묻다가 비웃음을 삽니다. “그거 참 인간스러운 질문이네요. 그렇죠? 인간들은 항상 다른 존재들이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요. 인간이 뭐 대수라고 말이에요.”라면서요. 차 한 잔을 마시더라도, 찻잎을 볶고, 뜨거운 물의 대류 속에서 찻잎들이 춤을 추듯 움직이는 걸 구경하는 Authentist 제이크는, 정작 테크노 사피엔스의 존재는 인간이 되기 위한 애벌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에, 은 어떤 레벨로서의 존재에 대해서는 별 의미를 못 찾지 않았을까 싶어요. 양에게 있어서 존재한다는 것은, 그냥 아이를 깨우고, 같이 걷고, 대화하고, 싸우다 화해하는 과정 전체였던 것이겠죠. 아내에게 있어서 휴가가, 일정 계획 잡고, 쇼핑하고, 짐 싸고, 운전하면서 거리 구경하고, 그러면서 남편과 싸우고, 더위를 피해서 식당에 들어가고 이런 모든 과정인 것처럼요.

그렇다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것에는 우열이 있을까요? ‘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차맛에 대해 설명하다가 “최고의 차를 찾는 사나이에 대한 다큐멘터리 (아마도 All in this tea (2007 https://www.imdb.com/title/tt1015968/?ref_=ttpl_pl_tt)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을 언급하던 제이크는, 그 영화에서 주인공이 친구와 대화하는 장면을 설명합니다. 그 다큐의 주인공 말로는 최고의 차 맛을 설명하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웠던 이유가, 거기에는 적당한 언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거죠. 차의 신비한 성질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길이 없으니 최고의 차를 찾기가 힘들다는 얘기입니다. 그러자 옆에서 차를 마시던 그 친구가 말했다죠.

“음.. 맞아. 근데 이런 걸 상상해볼 수는 있어. 말하자면, 자네가 어떤 숲 속을 걷고 있는데, 숲 길에는 낙엽들이 깔려 있어. 그리고, 비가 막 그쳤는데, 방금까지 비가 와서 축축해진 길을, 자네가 걷고 있는 거지. 그런데 그 모든 느낌들이 이 차 한 잔에 다 들어있는 거야 (Yes, but I imagine things like you are walking through a forest, and there are leaves on the ground, and it just had rained, and the rain has stopped, and it’s damp, and you walk, and somehow, that is all in this tea).”

삶이란 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P.S #1.  처음에는 무슨 중국 고전 인용이라고 생각해서 검색을 해봤지만 딱히 나오는 게 없네요. 아마도 코고나다 감독의 오리지널인 것 같습니다. “There’s no something without nothing.” 서양 사람들에게 ‘여백의 미’라는 걸 설명할 때 종종 골치 아팠었는데, 이보다 더 근사한 문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P.S #2. 술자리에서 허튼소리들을 나눌 정도로 모두 거나하게 취하게 되면 꼭 듣는 질문이 “다시 태어나도 상대방과 또 결혼할 것인가?” 하는 질문인데, 아내는 항상 “난 다음 세상엔 아메바로 태어날 거야” 라며 단칼에 자릅니다. ‘아메바’가 짝이 필요 없이 무성 생식하는 생물인 건 나중에 알았어요.

P.S #3. 그래도 제 캠핑은 텐트를 세우고 난 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