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학원 일은 재미있냐?”
“재미는 뭐… 닌 뭐, 재미로 사나? 그냥 다 먹고살라꼬 하는 기지……”
“허이고 뭘… 다들 그렇게 앓는 소리들을 하는 건지… 야, 씨바, 누가 들으면, 아주 그냥 광산에서 노가다라도 뛰는 줄 알겠어. 그냥.”
녀석은 대답 없이 한참을 술잔을 달그락거렸다. 식어버린 술국을 한참 노려만 보더니 내뱉듯이 나에게 말했다.
“니는 그라믄 어떤데? 헬조선 뜨니까 그리 좋드나?”
적대감이라는 건 쉽게 발각된다. 그리고 전염된다. 나는 녀석이 사교육 업종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불만이었고, 녀석은 이민을 떠난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마주 앉아 얘기로 풀어야겠다는 갈증은 언젠가부터 계속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래서 취기를 가장해서 바쁘다는 녀석을 억지로 끌어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금방 서로 이빨을 드러낼 줄은 몰랐다.
“그 가서 유쌕인종, 이등씨민으로 사는 거 할 만 하드나 말이다.”
“씨발럼이…… 너 씨발 계급성 한번 졸라 찰지다… 야, 씨바, 우리가 언젠 이등시민 아니었냐? 조선땅에서, 엉? 없는 집에서 태어나서, 엉? 수도권 변두리 위성도시에서 자라면서, 엉? 우리가 도대체, 언제 일등시민인 적 있었어? 너, 새벽에 택시 잡다가 탑승 거부당한적 한번도 없어? 뭘, 씨발, 무슨 외국 나가 살면 죄다 인종차별받을 거라고 걱정하는 것들이, 꼭 조선땅에서 차별받고, 차별하고 지랄하고 사는 건 신경도 안 쓰더라.”
“마. 치아라… 됐다, 마.”
녀석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잔을 비웠다. 오늘 아침에 K 선배와 회의가 잡혀있다며 몸을 사리던 초반과는 달리, 갑자기 소주잔을 연거푸 비우기 시작했다. 나 역시, 자꾸 엇나가기만 하는 녀석과의 대화가 불안했는지, 한동안 말없이 식어버린 술국 건데기들을 집어 먹었다. 그리고 잠시 후 녀석이 또 정적을 깼다.
“느그 아버진 좀 어떻신데?”
몇 해 전, 아버지의 암수술로 급귀국을 했어야 했을 때는, 고교 동창이든 대학친구든 할 것없이 아무에게도 연락을 안한 채 가족들하고만 시간을 보내야 했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녀석이 저으기 섭섭해 했다고 전해들었다.
“에휴… 뭐… 늙어가시는 거지 뭐. 수술 경과도 좋고, 암 전이도 없는 것 같은데… 문제는 계속 끊임없이 여기저기 아프셔. 전립선에 문제가 생겼다가 치아에 문제가 생겼다가, 다시 허리 디스크도 오고…… 하아… 씨바, 이제 그런 거 보니까, 참. 나이 든다는 게… 그냥 만만하게 볼 게 아니더라구. 그냥 죽을 날이 저절로 가까와지는 게 아니라, 죽기 전까지 졸라 자존심 상하고 굴욕적인 일들을 많이 겪어야 하는 것 같더라.”
“하아… 난 증말 니를… 이해를 몬하겠다. 도대체, 니, 뭐할라꼬 그 간 건데? 가족들 다 내핑기치 가지고, 니 거 가서 그케 사니까, 그리 좋드나?”
“아이… 이 씨발새끼가 또… 넌 씨발 그렇게 부모 걱정하는 새끼가, 가출하고, 하지 말라는 학생 운동하다가, 그 씨발 깜빵에 두 번이나 갔었냐?”
“내는 뭐, 수감 생활했던 거, 후회 안 해. 그때는 그럴 만했고, 뭐, 내도 뭐, 내 할 일을 했던 거거든.”
“아휴. 잘났다, 전과자 새끼야. 옛다. 돼지 귀때기나 먹어라, 이 새끼야.”
녀석과 내가 다툴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냥 생각이 달랐고 그러다 보니 서있는 지점이 달랐을 뿐이다. 다만, 서있는 지점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듯이, 녀석이 걱정하는 부분과 내가 걱정하는 부분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서로의 각기 다른 걱정이, 서로의 약점을 건드렸던 것 같다. 가장 아파하는 곳이지만, 나 스스로에게 조차 꽁꽁 감추고 있었던 약점을.
“니… 그카지 말고… (쯧) 마, 쫌, 도와주라, 마. K 형도 니 얘기 마이 하든데. 여 들어와 내랑 같이 일하다가 부모님 가실 때까지 모시면 안 되겠나? 느그 아버지 어무이, 노후 준비도 안 해놨다 아이가… 우리 일이… 일이 쫌 스트레스받고 쫌 그래도, 부모님들 좀 보태드릴 수 있을 만큼은 벌 수 있거든.”
“아이 병신 새끼 ㅋㅋㅋㅋ. 야, 너 기억 안 나냐? 나 글 쓰기 싫어서 이과로 간 공돌이 새끼야. 내가 어떻게 애들 논술을 가르쳐?”
“하아… 일마 이거, 크일났네. 무슨 예비고사, 학력고사 때 얘길 하고 있는 것맹키로. 마. 논술학원이라고 캐서 논술만 가르치는 게 아이고, 진학지도 입시지도하는 게 뭐 줘 패 가면서 공부만 시키면 되는 게 아이라고. 지금. 학생부에 들어갈 ‘서펙’, ‘문꾸’ 하나 만드는 게 얼매나 중요한데?…… 그카지 말고. K 형이랑 내랑 지금, 여 애들 진학지도를 이릏게 쎄트로 할라 카는 거거든. 이번에 2008년도 수능이 완전히 물수능 돼가지고 욕을 바가지로 먹다가 보니까네 올해에는 억수로 어려워진다 카는데, 그라믄 또 애들이 수시 준비를 많이 하려고 카지 않겠나?……. (쯧) 머 별거 없고… 우리 써클 때 영화제 준비하는 거처럼 하믄 되는 거거든, 그냥. 회의하면서 정세 분석하고, 소구 대상층 잡아내고, 접근 전략 / 마케팅 전략 잡아내고… 니 그거 잘했었잖아? 영화사에서도 기획했었다매?”
내가 오해하고 있었다. 난 녀석이 이렇게까지 사교육 비즈니스에 진심으로 대응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녀석의 입버릇대로 단지 먹고살기 위해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야. 하나만 묻자. 솔직하게 말해 봐, 엉? 너 진짜… 사교육에서 일하는 거… 이게, 떳떳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뭐라는데? 야 인마! 그냥 일이라꼬, 일! 그냥 먹고사는 일! 니는 뭐 거 가서 하는 일이 다 뜻뜻한가 보제?”
“그니까 이 새꺄. 쪽팔리지 않냐고. 눈앞에서 애기들 시들어가는 모습 보면서. 그렇게 돈 버는 거 쪽 팔리다고 생각 안 하냐?”
“안 한다, 그른 생각. 우리는 그래도, 이런 교육 기회를 많은 학생들이 다 가져갈 수 있게 할라고, 마, 강남에 저, 따른 학원 들이랑 달라, 우리는. 그래도 가난한 애들도 다 학원 다닐 수 있게 하는 거라고”
“야이 지랄 옘병… 지나가던 모기가 쳐 웃겠다, 새끼야. 강남에서 학원 하는 새끼가 무슨 가난한 학생들 교육 걱정을 해? 너희 씨발 돈 안 받아? 자원봉사하는 거야? 무슨 쌍팔년도 야학하는 얘길 하고 있어?”
“우린 마. 저기 프랜차이즈 학원들보다 반에 반도 안 받고 있거든. 우리가 이릏게라도 안하믄 우짤 긴데? 야 인마, 요즘 애들 인서울 대학 갈 때 다 아빠 찬스 엄마 찬스 없이 갈 수 있는 줄 알아? 이릏게 안하믄 우리 학원 아들이 저기 따른 학원 아들, 몇억씩 내 가면서 컨설팅받는 애들이랑, 어떻게 경쟁해서 대학에 갈 낀데?”
“와. 씨발… 장하다 새끼야. 니가 씨발 정말 애들 생각해서 하는 거냐? 너 씨발 지금, 우리 고3 때 싸이코랑 절라 똑같은 거 알고 있냐? 싸이코한테 대가리 쳐 맞더니, 완전 닮아가냐?”
“하아… 야 인마! 닌 도대체 은제까지 그거 기억하고 살라꼬 카는데? 와 그라노, 진짜? 자꾸 옛날 얘기만 할라 카고… 낸 진즉에 다 잊었다, 마.”
소줏병 두 병이 빈 지 오래 지났지만, 녀석도 나도 더 주문을 하지 않았다. 이제나저제나 얘기가 끝나길 서로 기다린다는 뜻일 게다. 서로 아픈 부위가 찔려서 씩씩거리며 자존심 싸움을 이어갈 뿐, 어차피 합의나 결론이 날 얘기는 아니었다. 그냥, 버릇처럼 소주잔을 달그락거리고 있었다.
“니가…마, 휴… 거 가서 사는 게 편합갑네, 편하기는. 니 모르제? 여서 아들이 어떻게 사는지? 인자 여긴 완전 전쟁이라꼬… 우리 때처럼 네 시간 자면 붙고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지는 학력고사 시절이 아니라꼬. 마, 요즘 그케 공부만 한다 캐서 대학 가고 그카는 시대가 아냐. 그란데… 내가 이런 좆같은 세상 만들었나? IMF 터지가지고, 운동하던 인간들 억수로 학위 딴다고 학교로 돌아갈 때, 난 목포 (교도소)에 있었거든. 김대중 때 다들 전향서 써가 나와 가지고서는, 부모 돈으로 학교에서 가방끈만 늘린 시키들이, 그런 시키들이 정치한다카고 국회 들어가고 내각에 들어가서 이렇게 똥을 싸놓은 거거든. 그란데, 니는 왜 학원 하는 사람한테 그라는데, 엉? 학원 하는 사람들은 힘이 엄서. 그냥, 이 좆같은 시스템 내에서 어떻게든 학생들 진학 지도하면서 아등바등 살아보려는 게 학원 하는 사람들이라고.”
“뭔 씨발 범죄자가 환경 탓하는 소리 하고 있어. 씨발, 그럼 이런 세상을 만들어 놓은 게 누군데? 애들이야? 너나 나 같은 기성세대가 면피하면 안되지. 그런데 씨발 언제까지 그렇게 위기 타령만 하고 살 건데? 니가 씨발 지금, 북한이랑 전쟁위기라고 하면서 반공법 만들던 새끼들이랑 뭐가 다르냐? 세상이 위기일발 속이라고 하면, 그렇게 추잡스럽게 탐욕을 부리는 게 다 용납될 것 같아? 씨발 이 세상이 지옥이라고 하더라도 너나 할 것 없이 하나같이 괴물이 될 필요는 없는 거잖아!”
“아… 씨… 그라모 니는 인자 뭐 하자는 긴데? 그냥 부잣집 아들만 SKY 가고, 난중에 갸들이 졸업해가 쟈들끼리만 대기업 가고, 정치하고 그라자는 기가? 그기 니가 원하는 세상이가?”
“그러면 새끼야. 지금, 이 세상은, 니가 원하던 세상이냐?”
“그기 아이니까, 아들 교육기회를 쩜이라도 평등하게 칼라는 기잖아, 지금!”
“야이 씨발. 너네 학원 애들이, 너네한테 그렇게 해달라고 하디? 인서울 보내달라고 그래? 다 니들이 걔네 부모들 협박해서 애들 모집하는 거 아냐? 마치, 지금, 입시관리 안 하면 애들이 다, 인생에서 아주 씨발 끝장나는 것처럼 협박해서! 야이 씨발 유괴범 새끼들아!”
“야 인마! 갯시키야!!”
녀석이 흥분해서 상을 내려치다가 손에 쥔 소주잔이 깨졌다. 녀석의 손에서 금세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야이. 미친 새끼야. 야, 함 봐봐. 야이 씨발. 상처가 큰데? 야, 응급실 가서 꿰매자. 빨리 일어나.”
“됐다, 마. 치아라”
“아이 병신 새끼… 야 빨리 안 일어나? 얼렁 가서 꿰매게, 좀…”
“마, 됐다니까 아… 쩜…”
녀석은 손바닥을 지혈하며 완강하게 반항을 해봤지만, 이미 소란을 부릴 만큼 부린 상태인 데다가 급기야 소주잔까지 깨고 피까지 흘리고 있었기 때문에, 식당 주인은 어지간히 우리가 나가줬으면 하는 눈치였다. 셔츠를 벗어 녀석의 손을 감싼 후 서둘러 일어났다. 4월 서울의 새벽 공기는 여전히 쌀쌀했다. 녀석을 끌고 심야약국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포기하고 편의점에서 반창고를 사 붙였다. 담배도 한 갑 샀다. 녀석도 나도 담배를 끊은 지 오래되었지만, 왠지 그냥 입에 물고 있기만이라도 하고 싶었다. 지혈을 위해 오른팔을 바짝 들어올린채 담배를 물고 있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지만 참았다.
“그라모 내보고 어쩌라고? 내도 헬조선 뜰까? 내는 안돼, 빨간 줄 끄서져 가지고……”
“뭘 어쩌긴 어째? 그냥 너 하던 거 하고 사세요. 근데, 씨발 염치가 있으면, 과거 운동 경력 팔아먹으면서 살지 말라고. 쪽 팔리지 않냐? 그러니까 요즘 애들이 ‘좌파’ 하면 ‘위선’, ‘내로남불’ 이러는 거 아냐.”
“마, 좌파는 그먼, 돈 쩜 벌면 안 되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벌겠다는 게 욕먹을 일이가? 니가 마, 꼭 내 입에서 이른 말까지 들어야 카겠나?”
“씨발 누가 뭐래? 당연히 죄가 아니지. 하지만 돈 벌겠다고 사람들을 협박하고 다니잖아. 그건 죄야. 그리고, 씨발 누가 너 돈 벌겠다는 거 가지고 뭐라 그래? 좌파라고 자칭하는 거 가지고 그러는 거 아냐? 좌파라고 먹고살 돈을 벌지 말라는게 아니라, 좌파는 새끼야…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돈을 많이 벌어야지 대접받는 이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이잖아. 근데, 이 개좆같은 자본주의 시스템 이용해서 꿀 빨면 안 된다는 거지. 아무도 너 돈 버는 거 가지고 뭐라고 하는 거 아냐. 너나 K 형이나 학창 시절에 꽃병 좀 던졌다고 애들 상대로 스스로 좌파라고 사칭하고 사기 치고 다니는 거. 학부모들 대상으로 협잡하고 다니는 게 꼴 보기 싫은 거라고.”
“협박이 아이라, 그게 현씰이라꼬, 현씰!!……하아. 씨이. 그래. 니 혼자 좌파 많이 해라 그라믄. 그카믄 낸 뭔데? 그냥 “민주시민”이가?”
항상 이런식이다. 녀석과 핏대를 세워가면서 논쟁을 하다가도, 녀석의 절묘한 단어선정과 기습적으로 맞부딪힐 때면 별도리없이 빵터지고 만다.
“…… 풋… ㅋㅋㅋ 크하하하하. 알았다. “민주시민”. 씨발, 손에 새로 생명선 손금 길게 새로 파냈으니까 민주시민으로 벽에 똥칠할 때까지 오래 살아라 새끼야.”
“마. 인자 고만하자… 니는 니대로 살고, 내는 또 내대로 살믄 안 되겠나…… 니 그 말 아나? 손이나 발에 굳은살이 안 생기는 건 몸 쓰는 일을 하거나 운동을 한 적이 없다는 얘기거든. 손이나 발에 굳은살이 있어야 오래 일하거나 걸어도 상채기가 안나는 거거든… 니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꾸 쪼맨한 일에도 신경 쓰고 후회하고 계속 괴로워하는 것도 마찬가진 거야. 니 마음에 굳은살이 없다는 얘긴거거든.”
녀석을 택시를 태워 보내면서,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에게, 녀석에게,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염치”라는 것은, 심산의 고통을 통해 켜켜이 쌓인 굳은살 아래에 묻혀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렇게, 세월의 피곤함이라는 것이 자동적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우정 칼을 들어 굳은살을 헤집어 파내지 않는다면 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