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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토피노 5

오늘은 또 이삿날. 애초에 캠핑장 예약을 다 늦게서야 한 터라 이번 캠핑 동안에는 4개 사이트를 전전해야 하는데, 이번이 그 세번째 사이트로 가는 날이다. 게다가 국립공원은 중간에 일정을 추가한다고 해서 예약비를 따로 더 받지 않는 걸 몰라, 앞으로의 3박은 내 이름으로 예약을 해서 새로 캠핑 등록을 해야한다.

일단 비가 안오니 이번 캠핑 처음으로 바베큐를 꺼내서 피자를 굽는다. 아내가 백종원 레시피를 참조해서 개발한 이 피자는 토마토 소스 대신 그릭 요구르트를 발라 그 위에 양파, 토마토, 페퍼, 치즈 등을 얹어 굽는 것이 특징. 바베큐로 아래를 어느 정도 구운 후 토치로 윗부분의 치즈를 녹인 다음 아르굴라를 얹어서 먹는다. 이사 준비를 좀 하다가 햇볕에 나와 앉아 아침을 먹고 나니 슬슬 사이트를 비워줄 시간이 되었다.

새로운 사이트는 15번. 화장실이 전보다 많이 가까와졌다. 다시 트레일러 설치하고 짐 다시 풀고.. 하하 이제 이사도 경력이 쌓이니 순식간에 싸고 풀고 하는구나. 새 사이트에는 햇볕도 잘 든다. 얼렁 발매트며 의자며 그간 젖은 물품들을 가지고 나와 햇볕 좀 쐰다. 

캠핑장 입구에 가서 새롭게 캠핑 등록을 하면서 스탶 할머니랑 수다를 좀 떨었는데, 밴쿠버 이스트쪽에서 살면서 여름동안 여기로 디스패치 되었단다. 우왓 부럽다고 했더니 여름엔 바빴단다. 그렇지… 디즈니 랜드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처우도 그렇게 안좋다던데, 다른 사람의 노동 환경을 쉽게 예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나서 날이 좋으니 의자를 들고 해변가로 나가 보기로 한다. 그린포인트 해변은 여기 캠퍼들만 출입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딱히 게스트 주차장이 없으니 다른 곳에서 어떻게 올 방법이 없긴하다. 암튼 여름 성수기가 끝나서 그런지, 학생들 방학이 끝나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여기 캠퍼들은 이곳 해변을 그닥 인정을 안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렇게나 멋진 해변을 거의 우리가 전세를 낸 기분이다. 간만에 화창한 날씨를 보니 기분이 저절로 좋아진다. 한참을 걷다가 적당한 곳에 의자를 펴고 앉아서 파도를 구경한다. 예전 ‘꼬마 바이킹 비키’라는 만화영화 주제가 중에서 ‘멀리 있는 저 바다도 무섭지 않아~’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러고 보니 저 멀리에 있는 파도는 왠지 집채만해 보인다. 그게 커다란 포말을 그리면서 부서져 내려오면 해안까지 멀리 밀려 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태평양 이름값을 하려면 좀 더 잔잔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쨌든 저 커다란 파도도 서퍼들이 토피노로 몰리는 이유 중 하나겠지. 썰물인줄 알았는데 파도가 점점 안으로 밀려 들어 오더니 급기야 카메라 삼각대 아래가 물에 잠기고 말았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삼각대 다리가 연장되는 부분마다 물과 흙이 묻어있는 걸 발견한다. 아.. 쒸.. 일을 또 만드는구나. 앞으로 바다에선 항상 삼각대 맨 아랫쪽 다리를 완전히 펴서 사용해야지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궁리를 하다가 플루비오 Pluvio 라고 하는 유클렐레에 있는 식당을 시도해보기로 한다. 토피노, 유클렐레를 통틀어 가장 근사한 요리를 선보이는 것으로 알려진 식당으로 얼마전 에어캐나다 항공사에서 선정한 캐나다 식당 베스트 10에도 선정된 적이 있다고 한다. 지난번에 한번 지나가다가 슬쩍 본 적이 있는데, 외관상으론 전혀 으리뻔쩍하지 않은 것이 깔끔한 분식집 스타일이다. 식당에서 같이 경영하는 숙소 역시 겉으로 보기엔 포천에 있는 펜션보다 초라했다. 뭐 그래도.. 겉으로만 봐선 모르는 것도 많으니까..

암튼 덕분에 점심은 간단하게 칼로리바로 떼우기로. 요 며칠 과식을 했더니 속이 게속 더부룩한 것이 오늘 저녁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있을른지 모르겠다. 

저녁 5시 반에 예약이니까.. 근처에서 가볍게 산책이나 해보자고 한다. 유클렐레 아주 남단에 있는 등대를 주변으로 Wild Pacific Trail이라고 만들어 두었는데, 한 4km 정도되는 환상 loop 산책로로 주상절리대로 둘러싸여 구석구석마다 전망대를 만들어 두었다. 때문에 4km라 하더라도 전망대를 일일이 들리게 되면 꽤 시간이 걸리는 산책로가 되겠다. 2016년에도 친구들과 같이 와서 보고 감탄에 감탄을 감추지 못했었다.  여기 인간들은 어쩌자고 이런 걸 이렇게 잘 보존해두는가. 세금을 많이 걷어서 그런건가? 게다가 인구밀도가 적어서 그런건지 산책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는 경우 없이 쾌적하기 그지 없다. 나이가 드니까 확실히 경치를 보고 감동하는 일이 생기는구나. 다음 번에 한국에 가면 한번 태종대에 가볼까? 처음 반은 그렇게 전망대마다 가서 사진 찍고, 우와와아 감탄하고 그러다가, 시간을 보니.. 어이쿠.. 식당 예약까지 얼마 안남았네 하며 서둘러 나머지 반을 파워워킹으로 마친다.

식당에 도착하니 아직 몇 분 남아서 메뉴판을 구경하고 있자니 잠시 후 주인 아줌마 릴리가 나와서 반갑게 맞아준다. 작은 건물 내부 면적의 반을 오픈형 주방 (그래도 유리창으로 가려져 있다)이 차지 하고 있고, 막상 테이블은 몇 개 없는 것이… 아.. 이 사람들.. 돈 벌려고 장사하는 것이 아니구나 싶다. 주방에선 어떤 아저씨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신중하게 뭔갈 세팅하는데.. 어.. 저 사람.. 홈페이지에서 미역 따는 사진에 있던 그 사람인데 .. 등등 생각을 하면서 창가 테이블에 앉았다. 하지만 유리창은 뽀얗게 틴팅이 되어서 경치라곤 볼 수 없다. 물론 봐 봤자 찻길이겠지만.

아내는 이 집의 와인 테이스팅 메뉴. 나는 계속 속이 더부룩한 관계로 굴 요리와 Lingcod 배추쌈 요리 두 가지에 이탈리안 레드 와인만 시킨다. 처음에 빵과 (사케를 첨가한) 수제버터가 나오는데 우오오오옷.. 맛있다!! 여기 요리사.. 완전 고수다. 버터 하나로 이렇게 놀라움을 주다니. 최근 거듭된 유지방 섭취로 속이 안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버터는 꼭 먹어야 해!! 아주 짙은 고소함이 있는데도 전혀 느끼하지 않다. 그리고 덩달아 나온 스낵 (시치미를 뿌린 방울 토마토와 연어/파프리카) 역시 아주 상큼해서 앞으로의 식사에 대해 기대를 갖게 했다. 곧이어 나온 데일리 해산물 전채도 놀라움의 연속. 광어와 대구살을 살짝 익힌 후 잘게 썰어서 세비체 형식으로 담았다. 레몬즙 베이스 소스에 멜론 같은 뭔가 다른 과일도 첨가해 넣은 듯 싶었는데, 여느 타르타르 요리 처럼 바게트나 프랫 브레드와 같이 나오는게 아니라 이 집에서 만든 검은 칩과 같이 나왔다. 뭔지 물어봤더니 오징어 먹물을 넣었단다. 어쩐지 고소한 해산물 향이 나더라니. 여기에 페어링 된 와인은 펜틱턴 지역의 BC 와인 ‘판당고 Pandango’. 식당 말로는 가능하면 로컬 해산물, 농산물과 로컬 와인을 쓰고자 한다는데, 너무 달콤하지 않으면서됴 식욕을 돋구는 상큼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분명히 테이스팅 메뉴로 주문했는데 와인을 글라스에 가득 채워준다.. 어이쿠, 이렇게 많이 코스로 먹다간 끝에 가서 꽐라 되겠는데.. 싶었는데 나중에 웨이터가 와서는 실수로 너무 많이 채워줬다고 사과한다.

그리고 첫번째 메인 요리로 내가 주문한 굴 요리와 아내의 광어 컨핏이 같이 나왔다. 굴 요리는 모토야키 처럼 껍질째 구운 것이 아니라 따로 버터 팬프라이한 굴에 감자 무스를 얹은 것으로 부드럽지만 진한 굴 향이 살아있는 요리였는데, 그 안에 수제 싸우전드 아일랜드 소스가 들었다해서 의아했더니 머스터드 베이스 소스로 혹시 있을지도 모를 비린내를 잡았다. 오. 머스터드 베이스의 싸우전드 아일랜드 소스는 처음 봤다. 광어 컨핏은 광어의 질감을 살린 채로 작은 케잌처럼 만들었는데, 잘게 다진 광어 세비체와 복숭아와 같이 나왔다. 페어링 와인은 Ava라는 BC 올리버지역의 와인이라는데 백포도주임에도 묵직하고 스모키한 맛이 광어 요리와 어울렸다.

두번째 메인은 아내가 고른 안심 스테이크와 내가 고른 Lingcod. 에이이이이이.. 그렇다니까. 이게 안심 스테이크지. 엊그제 먹은 건 안심이 아니었어. 이렇게 부드럽게 칼이 쑥쑥 들어가야 안심이지. 하하하. 하며 즐거워했다. 어쩌면  이 식당에서는 이 작은 사이즈의 고기를 굽더라도 한 테이블 분량 만큼 따로 따로 구워서 이렇게 부드럽고, The Pointe에선 같은 안심을 쓰더라도 좀 많은 양의 스테이크를 한번에 구운 다음 테이블 마다 잘라서 서빙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쨋건 고기 요리 만큼은 Pluvio의 압승. 특히 이 안심 스테이크만 먹었을 땐 음.. 소스에 좀 더 새콤함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 싶었는데, 페어링된 남프랑스 레드 와인을 마시자 마자 완벽한 조합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에 XO소스를 발라 바짝 구운 케일과 이 지역 야생버섯이 같이 나왔다.

Lingcod 요리 역시 참신함의 연속. XO소스를 발라 구운 절인 배추(백김치의 느낌)와 케일로 버터에 구운 Lingcod를 싸서 나왔는데 여기에 말린 조개관자를 갈아서 뿌려 풍미를 배로 만들었다. 아하하… 이렇게 복잡한 요리가 이토록 스트레이트한 맛이 나다니. 프렌치인지 중화요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잘 구운 생선을 김치에 싸먹는 편안함을 주었다. 

이제껏 얼마 안다녀본 이른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들은 모두 근사한 분위기와 멋진 요리의 향연이었지만, 글쎄.. 그 요리들이 과연 맛있었는지는 그렇게까지 기억에 나질 않았다. 위카닌니시의 포인트 레스토랑만 하더라도, 오.. 정말 사치스러운 경험, 근사한 여행지 파티에 다녀온 느낌이었지만, 이렇게까지 음식 경험 만으로 충격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파인 다이닝 -웨스트 코스트 혹은 프렌치- 식당에 다녀 온 후에 꼭 동네 스시집에 가본다던가 중국집에 가서 외식의 욕구를 채우곤 했는데, 여기 플루비오는, 정말이지 이제껏 가지고 있었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선입견을 깨주는 레스토랑이었다. 그래서인지 부대낀 속이었는데도 엄청나게 먹었다.

코스 메뉴의 디저트는 수제 자두 셔벗과 패스트리 / 무스가 나왔는데 2중으로 된 패스트리 안에는 칼다몬이라는 인도풍 향신료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 때쯤 되자 배가 너무 불러서 (그리고 유지방으로 가득 차서) 나는 그냥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는데 매우 시었다. 요즘은 고소한 커피보다 신 커피가 유행이라더니, 뭐.. 덕분에 술이 확 깬 것 같아서 좋긴 하다만. 

엄청난 외식 경험을 한 것 같아서 아내나 나나 아주 흥분해서 다음날 예약을 또 잡을까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그럴 거면 당일 아침에 전화하기로 하고 일단은 식당을 나섰다. 아이스 박스에 채울 얼음과 내일 아침 준비를 할 페스토 등등을 사서 (그리고 모닥불 쏘시개로 쓸 박스 종이를 좀 집어서)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자기 전에 와인을 한잔 더 하고 자려고 했는데.. 왠지 배가 너무 부글부글 해온다. 아.. 이제 한계구나. 배가 유지방으로 가득찼구나. 그동안 너무 즐겁게 잘 먹고 잘 놀았다. 이것으로 토피노 먹거리 탐방기를 마칩니다. 이어서 토피노 화장실 탐방기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