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에 갔을 때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갈 일이 있었다. 3년 전 대장암으로 수술을 받으셨고, 그 후로도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을 하셨던 아버지께서는, 그 후로도 무슨 새로운 염증이나 궤양 등이 발견 될 때 마다, 이것이 혹시 암이 전이된 것이 아닐지 걱정을 해야 했고, 이 때 역시 우리 가족 초미의 관심사는 과연 암 전이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몸에 칼을 대지 않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하고 계셨고, 우리 식구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자칭 한국 최대규모의 대학병원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건물은 웅장했으나, 당시 아버지의 질환을 담당한 병동은 (당연스럽겠지만) 그 커다란 건물의 지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고, 그 비좁고 어둑어둑한 공간 속에 저마다 불안을 안고 찾은 환자들이 가득했다. 밀려드는 환자들과 정신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속에서 수속을 받는 간호사들에게 친절을 기대하기는 어려웠고, 대기실의 의자 수는 대기환자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으며, 묵묵히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든 환자들의 얼굴에는 불안과 근심이 가득했다. 그래.. 그런 꼬락서니가 보기 싫어서…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병이 커질 때까지는 병원에 가기를 주저하는 것일 게다.
왜 동네병원을 안가고 굳이 저렇게 대학병원에만 모여있을까…??? 라는 의문을 예전에 가졌던 적도 있었지만, 사실 동네 병원에 갔다가 어이없는 오진과 독한 약 처방만 계속 받다가 죽음 직전까지 병을 키워본 사람들이라면, 혹은 그런 사람들을 단 한 명이라도 알고 있다면, 용감하게 자신의 몸을 동네 병원에 맏기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어느덧 아버지의 이름이 다급하게(정말 다급하게!! 병원에서는 사람 이름을 왜 항상 그리 다급하게 부르는 것일까.. 듣는 사람 놀라게) 불려졌고, 아버지를 모시고 들어간 작은 진찰실에는, 환자의 얼굴은 쳐다 보지도 않고 잔뜩 두꺼운 서류철과 컴퓨터 모니터만 번갈아 보고 있는, 하얀 가운을 걸친 노인네와 책상 한 개, 책상 맞은 편에 푹신한 의자 하나와 그 옆에 작은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의사 선,생,님께 인사를 마친 아버진 아무 말없이 작은 의자에 앉으셨고, 내가 그 옆의 푹신한 의자에 앉을라 치니 눈짓으로 주의를 줬다. 컴퓨터만 보고 있는 의사와 의사의 선,고,를 잠자코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 도대체 저 푹신한 의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해하던 나를 둘러싸고 잠시의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또 한 사람의 젊은 의사가 진찰실에 들어오면서 그 의자의 용도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아마도 이 놈은 레지던트 정도 되고, 저 앞에 컴퓨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영감은 담당 과목 교수 정도 되리라. 의사가 한 명 더 늘었지만 아무도 환자와 환자의 보호자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없다. 무슨 실험들을 했는지 몰라도 컴퓨터 모니터와 서류를 번갈아 보면서 ‘자신들의 언어’로 뭐라고 뭐라고 얘기를 한다. 그렇게 5분 정도가 흘렀나… 마침내 교수가 아버지를 (처음으로!) 쳐다보면서 한마디 하는데, “일단은 약을 더 드셔보시구요…… 약을 더 드셔보세요..” (서류를 뒤적이다가) “그리고 당뇨가 있으시니까.. 아무래도 수술하시는게 좋을 것 같은데요? 당뇨가 있으시니까요.”
그걸로 끝이었다. 맞은 편의 젊은 의사는 교수가 한 말을 열심히 받아 적는다(그 정도는 나도 말하겠다, 이 놈아 그걸 뭐 대단한 거라고 적고 앉아 있냐. 약 먹고 수술 받으라는 말은 누군 못하냐). 아버지가 수술 문제는 좀 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자, 교수는 끄응 짧은 한숨을 내뱉고, 그럼 그렇게 하자고 한다. 결국 참다 못한 내가 끼어들어, 지난번 검사결과에서 과연 암 전이가 있는 것인지를 물어보자 교수의 말은…
“음.. 이 결과만 놓고 봤을 때는.. 암 전이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네요..”
가족 전체가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조금이나마 좋은 쪽으로 해석이 되자 아주 기쁜 마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너무 기뻐서 환자카드를 챙겨오는 것을 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기쁨 속에서도 여전히 찜찜했던 것은, 환자에 대한 관심이나 예의를 조금도 보여주지 않고 자신의 면피를 위해 말의 수위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교수에게도 조금 화가 났고, 그런 교수 앞에서 절대 약자로서 비굴해야만 하는 나 자신과 ,그런 어이없을 정도로 무책임한 말 한마디라도 당시엔 굉장히 기쁘고 고마웠다는 사실이 서글퍼졌다. 물론.. 이해는 한다.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이 인간의 병에 대해 100% 확신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또 자칫 말을 잘못하게 되면 오진이다 의료사고다 해서 시끄러워지기 때문에 아무리 의사라도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그렇게 까지 싸가지 없이 굴어야 했을까?
김규항이 말했듯이, 의사라는 직업 뒤에 항상 ‘선생님’이라는 존경의 호칭이 붙는 것은 단지 그들이 우리보다 더 많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 만이 아니다. 인터넷이 광범위하게 발달한 현재, 어떤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지식의 양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이 인간을, 환자를 대하는 자세에서, 그들에 대한 존경의 여부가 결정이 된다. 환자들이란 기본적으로 아픔을 갖고 있고, 또한 그 아픔이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하게 될지 모르는 불안도 갖고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몹시 불안정한 상태인데, 이런 그들에게 보여주는 친절과 예의야 말로 의사들을 의사라고 부르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된다. 게다가 의사들 앞에서 환자들이야 말로 ‘절대 약자’ 아닌가? 자신의 운명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환자들 앞에서 보이는 최선의 예의와 친절은 바로 우리가 존경할 수 있는 “품격”이 되는 것이고 그 품격을 가진 의사들이야 말로, ‘의사놈’이 아니라 ‘의사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며칠 전, 대학 갓 신입생으로 보이는 여자 손님이 컴퓨터를 들고 왔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하면서.. 내일 당장 숙제를 제출해야 한다고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사실, 모든 손님들은 자신들만의 문제가 있고, 누군가가 그 문제를 (적어도 자기한테 만큼은)최대한 빨리 해결해 주길 바라지만, 수리의뢰 순서대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 나로서는 누구 한 사람에게 특혜를 베풀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냉정하게 말했다. 빨라야 내일이나 될 수 있다고. 그리고 바이러스 감염의 경우 치료 가능성을 보증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쩌면 하드 드라이브 내용을 싹 지우고 새로 운영체제를 설치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되면 컴퓨터에 저장된 데이터는 모두 잃게 될 것이라고 했다. 냉정한 최악의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들은 손님은 얼굴이 시뻘겋게 되어가지고, 자기 친구가 자기한테 다른 수리센터 전화번호도 소개해 주었고 시간이 없기 때문에 다른 곳에 알아보겠다고 하고 나갔다. 이 정도의 반응에 대해서는 이미 익숙해진 터라 그러라고 하면서 몇몇 군데를 추천해주었다.
10여분이 지났을까? 그 손님이 다시 컴퓨터를 들고 들어왔다. 어쩔 수 없다면 그렇게 하자고 한다. 데이터를 다른 곳에 저장해 두었는지를 묻자 나에게 복구를 해달라고 한다. 나는 그게 가능하다면 복구를 하겠다고 했다. 손님은 ‘가능하다면’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나는 데이터 복구라는 것도 여러 가지 돌발상황이 있는 거라서, 확실하게 할 수 있다 없다를 보장할 수 없는 문제이며, 데이터 백업은 100% 컴퓨터 사용자의 책임이라고 했다. 그러자마자, 대학 갓 입학한 (그리고 처음 숙제를 준비하는 것이 자명해 보이는) 손님은 두 눈에서 눈물을 주루룩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냥 최선을 다해서 복구를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손님은 내일 제출해야 하는 숙제가 거기에 있고… 횡설수설하면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여자를 울리는 비열한 인간을 쳐다보듯이 나를 쳐다보고…
이민을 와서… 그동안 하고 싶어서 벌려왔던 ‘순돌이 아빠’ 노릇을 하면서, 이렇게 까지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 순간이 없었다. 별에 별 미친 손님들, 말도 안되는 고객 불만사항, 무지에서 비롯된 땡깡들을 1년여 겪고 났더니.. 나 역시 그 의사놈들과 똑같아 졌다. 수리를 의뢰 받을 때는 무엇보다 먼저 책임회피와 나 자신에 대한 보호를 생각하게 되었고, 어느새 내가 뭘 위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냥 하루하루를 관성으로 보내게 되었다. 수리는 그냥, 돈 받고 고장난 기계를 고치는 일일 뿐, 내가 굳이 누군가의 걱정을 덜어줘야 한다거나, 누군가를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은.. 잊어버린 것인지, 더 이상 생각 안하려고 노력하게 된 것인지…
물론 변명의 여지는 아직 있다. 사실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데이터 복구의 경우 워낙에 복잡한 조건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가능성을 장담할 수가 없다. 예전에 손님들을 위로한답시고 ‘문제없어, 걱정 말아, 내가 다 찾아줄게’ 하다가 정작 폴더 구성이 개인정보 보호가 되어있어서 하나도 복구를 할 수 없었던 적이 있었고, 못하면 못한다고 미리 말을 할 것이지 괜히 시간만 날렸다고 욕을 욕을 먹은 적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런 고객 불평들은 사실 수리비를 깎으려는 사전 포석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컴퓨터 수리를 부탁하러 오는 모든 손님들이 저마다 각각의 사연들을 가지고 오는데, 그런 얘길 일일이 들어 주고 감동해주고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막말로 신속하고 정확한 서비스가 고객을 더 만족시킬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싸가지 없이 말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이미 불안한 마음으로 도움을 요청하러 찾아 온 사람들에게, 땍땍거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백번을 반성한 후에 오늘, 어떤 손님이 2년 정도 된 노트북 배터리가 더 이상 충전이 안된다고 한다. 보통 2년 정도 쓰게 되면, 막 쓰는 사람이라면 배터리의 수명이 다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미리 그런 사실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배터리의 문제는 품질보증기간이라 하더라도 무상수리가 안된다는 얘기를 미리 해야 했다. 이 역시 나 자신을 미리 보호하고자 하는 말이었지만, 이번에는 내 경험과 내 친구들의 경험을 말해가면서, 내가 상대방의 상황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손님과 이 얘기 저 예기 수다를 떨던 중에 문제는 배터리가 아니라 충전기의 전선 어느 부분이 끊어진 거라는 것을 발견했다. 손님과 아무 대화 없이 묵묵히 컴퓨터만을 점검했다면, 백날이 걸려도 발견하지 못했을 상황이었다.
어쩌면.. 그 병원 그 자리에 앉아 있던 교수 영감도, 처음부터 그렇게 불친절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높은 사회적 지위를 위해서 의사가 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아픈 사람들을 돕기 위해 처음에는 의료의 길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한 명 두 명..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트집잡는 환자들을 만나고, 무슨 제안을 하더라도 ‘이 인간이 또 내 주머니를 거덜 내려고 하나보다’라는 오해를 사게 되자, 결국 그가 선택한 길은 최대한의 침묵뿐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만일 그렇다면, 만일 그렇다면, 나는 그 역시 뒷통수에 번개를 맞는 듯한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자신이 처음에 뭣하러 의료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되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서류뭉치와 컴퓨터 데이터가 아닌,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서 치료의 길을 찾을 수 있는 의사가 되었으면 한다. 그렇다면 나도 이제 의사놈이라고 부르지 않고 의사 선생님이라고 불러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