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시설관리에 입사하고 처음 한 달 간은 적응하기 좀 힘들었는데, 아무래도 한 5년간을 (출장 서비스 기사로서) 혼자서 일하는 버릇이 들어서인지, 하루 종일 직장 동료들과 부대끼는 게 버겁더라구. 아니… 동료’들’이 아니라 한 사람을 꼭 집어서 말할 수도 있는데, (날 면접보고 채용한) 빌딩 시설관리팀 팀장이라는 인간을 도무지 상대해내기 힘들더라.
나도 안다. 또라이 질량 보전의 법칙이며, 그 무슨 직장도 완벽할 수 없고, 그 어떤 인간도 완벽할 수는 없다는 걸. 하지만, 이렇게도 사람이 완벽하게 또라이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드는 거야. 20대였다면 난동을 피우고 회사를 뛰쳐나왔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직속 상사 하나가 또라이라는 이유로 사표를 내기에는……
일이 너무 편했다.
그전에 빌딩 시설관리 일에 대해 몰랐었던 건 아니야. 아니, 오히려, 저니맨 달고 7년 정도 경력을 쌓고 나면 미련 없이 빌딩 시설관리 일 쪽으로 경력을 옮겨 볼 생각도 했었으니까.
B 냉동의 주 고객 중에는 ‘BC 주 질병관리센터 (BC CDC)’가 있었는데, 한번은 어느 실험실의 노후한 에어컨을 교체하면서 그 건물 시설 관리팀 직원과 같이 일한 적이 있었거든. 그러면서 시설관리 일이 어떤지에 대해서, 그 일을 하려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정보를 얻기도 했었지 (하지만, 그 친구의 맨 마지막 결론은 “그래도 네가 나보다 두 배는 벌걸?”이긴 했었다). 또, 밴쿠버 종합병원에서 일할 때에도, 각 병동 내 제빙기를 병원 시설관리팀 작업실로 운반해 와서 유지 보수 작업을 했었는데, 그 곳엔 몇 시간이고 모여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는 시설관리 기사들이 있었거든. 그래도 뭐.. ‘저 일은 참 한가하겠구나…’ 정도로 생각을 했었지, 이 정도로 편한 줄은 몰랐던 거야. D 식품에서 일할 때의 노동강도로 비교해보면.. 하루에 한 10~20% 정도만 일을 한다고 봐야 하나? 그렇게 따지니까, 이건 완전 고액 연봉 직장에 다니는 것 같더라구.
사실 일이 없는 건 아니지. 매일매일 점검하고 유지/ 보수해야 하는 설비들이 빌딩 내 가득 차 있긴 해. 그리고, 그 설비들을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 하는 꾸준한 일들이, 시설을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도 잘 알고 있지. 단지, 매일같이 고장난 기계 때문에 어제 부터 화가 나 있는 고객을 상대하고, 고장의 원인을 파악 하기 위해 두세 시간을 소비하고, 고객에게 그 고장이 왜 기계 결함이 아니라 관리 잘못인지 설명하느라 진이 빠지는 것보다는, 적어도 나에게는, 훨씬 훨씬 쉬운 일이었던 거지.
입사 첫날, 사무실에서 다른 동료들과 같이 일하는데, 건물 서류를 검토하던 동료들이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지 않은 채 의자 바퀴를 굴려가면서 이리로 저리로 옮겨 다니는 모습을 보고, 지난 5년간 정신 없이 바빴던 나로서는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래.. 지금 나에게 필요한 업무환경은 바로 이런 널럴함이었던 거야.” 하며 말이야.
처음에는, 일이 너무 편하다 보니까… 이러다가, 또 지루해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들기도 했었다. 그런데.. 나 스스로가 바쁜 것보다 지루한 걸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더라. 한국에서 직장생활 할 때에도 영상 기획물 아이템 발굴부터 시작했었고, 여전히 혼자서도 잘 노는 나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나이 50이 되어서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새롭게 발견하는 부분이 있더라구.
그리고 또 발견한 것 중 하나는, 나라는 사람이 생각보다 다른 사람과 같이 일하는 걸 좋아하는, 아니, 같이 일하는 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점이었어. 이제껏 혼자서 열 내면서 전력질주하다가 결국 번아웃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내가 힘 조절을 못하니 주변에 다른 동료가 “브레이크!!”를 외쳐줬어야 했던 거야. 뭐.. 장황하게 썼지만.. 새 직장이 아주 마음에 든다는 얘기다. 그 증거로.. B 냉동에 다니는 동안엔 거의 주말마다 이력서를 썼지만, G 시설관리로 옮기고 나서는 2년이 넘도록 이력서를 쓴 주말이 두세 번 정도밖에 안되더라.
일이 한가하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그 이전엔 경험하지 못했던 설비들을 다루는 일은 즐거웠어. 예전에 냉동 / 공조 일을 할 때 수리했던 에어컨들은 기껏해야 5톤에서 10톤 정도 용량의 설비였는데, 여기는 단일 건물에 270톤 규모의 칠러 2대를 포함해서 총 600톤이 넘는 공조 설비들이 들어있었거든. 보일러 역시 총 5000MBH 규모고, 그 외 비상 발전시스템 등 별에 별 장난감들이 가득 차 있어서, 거대 우주전함 같은 곳에서 일을 하면 이런 느낌일까 생각도 들었다. 가끔 건물 순찰을 하다 보면, 옥상에서 멋진 일출을 볼 때가 있는데, 그때도 가슴이 펑하고 트이는 느낌을 받으면서 이게 왠 호사스러운 일인가 싶기도 했고.
나를 제외한 현재 시설 관리팀에 있는 직원은 3명인데, 모두 이전 회사에서 고용 승계된 직원들이야. 말하자면, 십여 년 전부터 이 연방정부청사 건물을 관리해 온 사람들이고, 연방정부와 이전 관리회사 (S 건설)의 계약이 끝나고, G 시설관리가 정부와의 계약을 따내면서, 이 건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기존 관리팀을 그대로 재고용했던 거지. 그래서인지, 빌딩 시설 관리팀 전체가 우리 회사 (G 시설관리)보다, 사무실이 들어가 있는 빌딩에 더 소속감을 느끼고 있더라. 이렇게 연방정부 청사 건물과 한 몸으로 이어져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완전 철밥통 직업을 찾은 것 같은 안도감도 들었어.
팀장과 부딪히는 일은 종종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인간이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 건 아직껏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네. 팀장은 수만 가지 악덕을 가졌지만, 다행히 빌딩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자신이 최종 책임을 지려는 미덕은 있었기 때문에, 이해가 안가는 지시라 하더라도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였어.
그리고, 아예 말도 안 되는 업무지시는 끝까지 버텨서 거절하기도 했지. 예를 들어, 팀장은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일에 대해 지적을 받는 걸 못 견뎌 해서, 업무용으로 지급된 법인카드를 사용하기 완전 싫어하 더라구. 단지, 나중에 보고해야 하는 서류작업이 많기 때문이었어. 하지만, 업무용 비품을 급하게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에, 이럴 경우 팀원 중 한 명에게 자비로 구매하게 한 후, 그 비용에 상응하는 금액을 (가짜로 잔업 한 것처럼 근무시간을 조작해서) 잔업 수당으로 지급하기도 하는 거야.
내가 이해하기로는 명백히 횡령에 해당하는 행위 였지만 여기에서는 관행처럼 이루어지고 있어서 처음엔 좀 놀라기도 했었지. 개인적으로 이익을 착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인지 서류 작업을 줄이기 위한 융통성 정도로 받아 들이는 것 같았어. 이게 그가 면접 시 말했던 ‘가족 같은 업무환경’이라는 의미였을지도 모르지.
내게도 이런 지시를 내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내가 그 부품을 사러 가는 동안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교통사고에 대해 회사 보험이 적용된다는 보장이 없다면, 나는 그 일을 할 수가 없다”라는 이유를 들어서 거절했다. 면전에다 대고 “그건 횡령이야”라고 할 용기는 없었어.
또, 자기 힘을 과시하기 위해 내 휴일이나 휴가 신청을 반려하려고 하거나 끝까지 미적미적대더라도, 결국 휴가를 취소하는 일은 없기도 했고, 그냥 그 인간을 인간적으로 인정할 수 없을 뿐이지, 그리고 그 사람 때문에 내 일이 많이 늘어날 뿐이지, 그 외에는 뭔가 개인 시간을 손해를 보거나 하는 건 없었다. 일이 늘어난다고 해도 워낙 널럴한 업무환경이다 보니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어. 그냥, 바보 같은 업무지시를 들은 첫 5분만 기분이 나쁠 뿐.
그래도 처음에는 너무 적응이 안되어 3개월만 어떻게 참아보자… 스스로 다짐하며 하루를 보낸 적도 있었지. 팀장도 팀장이지만, 7,220시간을 다 채운 냉동 트레이드 어프랜티스 연수시간에 아직 미련이 남았었거든. 그래서, 어떻게든 냉동 쪽 자격증을 다시 딸 방법을 찾기도 하고, 영 안되면 휴직을 하더라도 학교로 돌아가려고 했어.
하지만 살다 보니, 또 이렇게 빌딩 시설 관리하는 게 적성에 맞는 것 같더라. 직접 근육을 써서 고장을 고치는 것도 좋아하지만, 고장 진단과 원인 파악까지만 하고 수리기사가 와서 제대로 고칠 때까지 임시방편으로 수습하는 게 내 게으른 성품에 더 잘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가끔씩 터져주는 건물의 문제와 그걸 해결하는 과정 덕택에, 너무 한가하고 지루한 직장에서 종종 발생할 수 있는 자괴감에 부딪히지 않을 수도 있었어. 그래서 차츰 냉동 트레이드에 대한 미련은 사라지더라.
6개월 간의 수습기간을 마치고, 회사의 학비 지원 시스템을 이용해서 ‘4종 파워 엔지니어링 (Power Engineering 4th Class, 한국의 ‘에너지 관리 산업기사’와 유사)’을 공부하기로 했어. 어차피 내가 쌓아왔던 냉동/공조 어프랜티스 수련시간은 회사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인정받을만한 다른 자격증 공부를 회사 돈으로 해야겠다… 하는 심보였던 거지. 다행히, BCIT (BC 주립 공과 대학)에서 이 ‘4종 파워 엔지니어링’ 코스를 온라인으로도 제공하고 있어서, 굳이 학교에 풀타임으로 등하교하지 않아도 학업을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2020년 기준으로 수업료와 교재, 그리고 수험비용 모두 포함해서 총 $2,272.31 정도 비용이 들 것 같았는데, 이 중 $1,500은 회사 지원을 받고, 나머지 $772은 교재를 중고로 되팔아서 (책 값만 $1470이 들었거든) 충당하면 한 푼도 안 들고 자격증을 딸 수도 있을 것 같았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더라 (물론 여기에, 캐나다에선 이렇게 학교를 다니면 그 해 세금 환급을 많이 받을 수 있다).
냉동/공조 기사나 배관공, 전기기사 같은 일반적인 산업기사의 경우에는 어프랜티스 훈련이나 자격증 시험 같은 것을 ITA BC (Industry Training Authority of BC. 한국의 ‘산업인력공단’과 유사)에서 관리를 했는데, 캐나다에서 ‘파워 엔지니어링 코스’는 ‘기술’ 보다 ‘안전’에 더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이 자격증은 Technical Safety BC (한국의 ‘산업안전보건공단’과 유사)에서 관리를 했어.
막상 공부를 하고 시험 준비를 해보니, (물론 ITA에서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Technical Safety BC의 교육 내용과 수험관리가 훨씬 더 현실적이고 체계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예를 들어, 냉동/공조 1, 2, 3년차 수업에서 빠지지 않던 것이 각종 측정 수치 환산이나 계산 공식을 암기하는 일이었는데, 파워 엔지니어링 수업에서는 그런 건 아예 조그마한 책자로 만들어서 미리 배포했고 시험장에도 가지고 들어갈 수 있게 하더라구. 어차피, 현장에서는 스마트 폰을 이용해서 다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숫자나 공식들을 외우는 건 사실 아무 의미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파워 엔지니어링 시험이 더 현실적이었어.
늘그막에 공부를 한다고 하니까, 생각 외로 또라이 팀장이 적극 지원해주더라. 아니 그건 ‘지원’이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이었는데, 마치 고3 수험생을 키우는 부모의 심정으로 나를 돌봐 주는 느낌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어. 가능하면, 각 출신 국가별 문화적 차이에 대해 생각도 안 하고 언급도 안 하려고 하지만, 적어도 내가 이제껏 같이 일했던 이란 사람들의 경우, 이렇게 공부하는 사람들은 특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아. 우연히 만난 예전 직장 동료들 (특히 ‘D 식품’ 동료들)에게 직장에서 책 읽고 공부한다고 하면 그것만으로도 모두 경악할 일이었는데, 저 악랄한 팀장의 칭찬을 받아가면서 공부를 하고 있자니 왠지 엉덩이가 움찔움찔하더라구.
비싼 가격에 걸맞게 30권에 가까운 교과서 들을 쭉 세워놓으면 그 폭이 60~70센티미터가 될 정도로 읽어야 할 양은 많았지만, 공부 자체는 그리 힘든 건 아니었기 때문에 책 하나를 마치는데 한 주, 많으면 두 주 정도면 충분했던 것 같아. 그런 다음 금요일 밤에 집에서 시험을 보고 주말은 쉴 수 있었지.
오히려 처음 공부에 어려움을 줬던 건, (냉동/공조 분야와는 다르게) 이쪽 바닥에서는 SI 단위(미터법)를 쓴다는 것이었어. 아놔… 처음 냉동 공부 시작할 때에 거지같은 미국 놈들 때문에 Imperial 단위 (파운드법)에 적응하느라 개고생 했었는데, 이젠 다시 SI로 돌아가려니, 기압이 8000kpa라고 하면 그게 어느 정도 무거운 건지 짐작도 가지 않더라구. 다행히 파워 엔지니어 수업은, 압력을 계산하거나 그런 일이 많지가 않아서 일단 이해하고만 넘어가도 충분하긴 했었지.
공부하는데 또 하나의 걸림돌은… 코로나였다.
2020년 초반에 코스를 등록할 때만 해도, ‘7월까지는 모든 수업을 다 마치고, 8월은 놀고, 9월에 시험 봐서 자격증 따자’ 라는 계획을 세웠었는데, 3월에 들어서 사태가 심각해지니까 학교들을 죄다 닫더라구. 뭐, 어차피 온라인 수업 아니었나… 하겠지만, 4종 파워 엔지니어링 수업은 원래 A, B 학기로 나뉜 1년 코스인데, 각 학기를 마치면 학기말 시험을 학교에 와서 봐야 했거든. 매 챕터마다 보는 쪽지 시험을 온라인으로 열 번 보고 나면 학기를 마치는데, 이 학기말 시험을 두 번 보고 A, B 학기를 모두 수료해야 학교에서 수료증을 받을 수 있고, 또 이러고 나서야 Technical Safety BC에서 주관하는 자격증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던 거야.
물론 Technical Safety BC와 같은 공공기관은 일찍부터 사무실 문을 닫고 재택근무에 들어갔지만, 사무실을 열었다고 해도 자격증 시험을 보려면 여하튼 학교에서 학기말 시험을 마쳐야 하는 거였는데, 이게 언제 볼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모드로 들어가서 한동안 농땡이를 부렸었지. 마침 코로나 때문에 정부청사 건물이 거의 비어 있어서 농땡이 부리기엔 아주 적당한 시간이기도 했었고.
결국 BCIT에서는 온라인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직장 상사를 감독관으로 지정해서 직장에서 A 학기 시험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는데, 이 사정을 알고 나서 팀장은 또 기고만장해지기도 했었어. 하하하. 원체 내가 자격증 시험공부를 하는 걸 좋아했었는데, 그 성과가 자기 손에 달렸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신이 났겠어. 하루에도 몇 번씩 시험문제가 도착했는지 확인을 하기도 하고, 막상 시험지를 받고서는 BCIT에서 너무 뻣뻣하게 지침이 나와서 기분 나빠 못하겠다고 발뺌을 하기도 하더라.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7월이 되어서야 A 학기를 간신히 수료하긴 했는데, Technical Safety BC는 아직 정상업무를 볼 기미가 안보이더라구. 여러 차례 문의 전화와 메일을 보내봐도 묵묵부답이었고.
그러다가 10월이 되면서, 어렵게 Technical Safety BC와 연락이 닿게 되었어. 연말부터 자격증 시험 예약을 다시 받겠다고 하는데, 이때 당시 이미 적체가 많아서 빨라야 2021년 1월이라고 하더라구. 뭐… 그동안 공부도 놀고 있었고, 막판에 빡세게 공부한다고 해도 B 학기를 마치는데 한 달은 걸릴 것 같아서, 겸사겸사 1월로 예약을 했지. 그리고, B 학기 학기말 시험을 부분적으로 개방된 BCIT 캠퍼스에 가서 치뤘다. 이때가 2020년 11월. 그리고 12월 한 달 동안은 전체 과정을 다시 정리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흥청망청 연말 분위기도 내 보고), 1월이 되자 Technical Safety BC 사무실에 가서 A, B 학기 한꺼번에 시험을 봤고 몇 주 후에 자격증을 받았다.
자격증을 따고 나서 또 마음이 한가해지니까, 코로나로 인해서 재택근무가 일상화되자 ‘앞으로 과연 사무실 근무라는 행위가 얼마나 필요할 것인가’라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에 신경을 쓰게 되더라구. 사실, 너무나 운이 좋아서, 타이밍 좋게 사무실 근무를 하는 직장으로 전직을 하게 되었고, 또 마침 그게 연방정부 예산에서 월급이 나오는 일이라서, 나로서는 코로나 팬데믹 피해를 (자격증 시험 일정 연기를 제외하곤) 전혀 입지 않을 수 있었던 거지. 하지만, 가끔 B 냉동에서 아직 일하는 옛 동료 얘길 들어보면, 밴쿠버 다운타운 레스토랑 비즈니스가 거의 궤멸적인 타격을 입어 B 냉동 고객이 많이 줄었고, 동시에 기사들도 일감을 거의 못 받고 놀고 있다고 하더라구. 그런데, 사무실까지 필요 없는 시대가 오면, 공조 서비스는 물론이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시설관리 일이 과연 필요 있을까? 이런 답도 없는 걱정을 하고 있자니, 팀장이 와서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더라. “걱정 말아라. 국가 실업률이 높아지면 캐나다 연방정부에서 제일 처음에 하는 일이 뭔지 아냐? 바로 연방 공무원들 책상을 싹 바꿔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