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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유심조

엊그제 운전면허증을 우편으로 받았다. 지난 주 목요일? 금요일? 한국운전면허증을 바꾸려고 갔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신속한 처리로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아마도 이곳에서도 운전면허는 경찰청에서 담당하던가? 다행히 경찰들이라도 이렇게 빨리 움직여주니 마음이 놓인다. 아무튼… 이제 더 이상 한국에서 신분을 증명하는 것이 없어졌다(면허증을 교환하러 갔을 때 제출하고 못받았다). 조금 가슴속에서 싸~해짐을 느낀다. 뭐.. 대신 여기서 신분을 증명할 게 3개나 생겼으니.. (근데 여기서는 신분증을 제출할 일이 그리 많지가 않다. 운전을 하고 다니면 좀 달라질라나?) 자유롭게.. 구속받지 않고 사는 것을 원했으면서도 이런 <맴버십>의 유무에 감정이 움직이는 걸 보면.. 사람은 약한 존재이다..

요즘 다니는 영어학원은 신규이민자나 저소득층을 위한 시립교육기관이다. 영어도 가르치지만, 이곳 젊은이들도 미용기술과 같은 직업교육이나 단과대학강의들을 듣기 위해 많이들 모여들고, 컴퓨터나 수학 같은 교양강의도 있다. 학비도 무척 싼편.. 국가지원을 받는다지만, 6개월에 50불(4만5천원 남짓)이다. 학생들 수준에 따라 세부적인 레벨이 나누어져 있고, 담당교사의 책임하에 수업이 진행되고 진급여부가 평가된다. 전체적으로 겉보기는 좀 추레해 보이지만 실속있는 교육이 진행되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긴 하지만.. 아무래도 ‘싼 학원이라서 이런가???’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반 담당교사”나세르”가 인도인이란 것.. 처음에는 무척 절망스러웠다. 가뜩이나 발음이 후진 내가 인도식 영어발음으로 교정되는 구나.. 싶기도 하고(실제로 나세르와 얘기할 때는 의식적으로 혀를 굴리지 않으려고 한다. 컴퓨터를 ‘컴퓨러’로 한다거나 ‘인터넷’을 이너넷’이라고 한다면 그가 못 알아듣지 않을까하는 조바심 땜에..), 수업도 지나치게 교과서 의존적에다가 강의 중심이라서 서구의 개방적이고 대화 중심의 교육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실망이 컸다. (이후 레벨이 좀 낮은 반에서는 발표와 대화 중심의 교육을 하는 것을 보고, 아마도 우리반 수준은 적어도 자신의 의견 개진은 무리없이 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표현과 단어 중심의 교육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청취능력이다. 내가 가장 안되는 것 중 하나가(그리고 간절히 필요한 것 중 하나가) 현지인과 대화할 때 청취력이다. 어느정도 천천히 얘기해주면 알아듣기는 하지만, 현지인들끼리 마구 떠드는 것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그런데 나세르의 경우, 인도식 발음으로 천천히 얘기하는 데다가, 가끔 교과서를 제대로 읽는 것 조차 하지 못한다. (엊그제는 Ursula라는 이곳 이름을 읽지 못했다) 이런 교사를 어떻게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 그나마 발음교정 자원봉사자를 수업에 동참시키는 것은 바람직 한 것 같긴 하지만.. 게다가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도 대게 중국인이나 인도인들이다. 자유대화시간에도 역시 현지인들의 정확한 발음을 기대하기 어렵다. 때문에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더더욱 알아듣기가 힘이 든다. 그렇다면.. 원주민이 없고 전부 다 이민자로 구성되어 있는 이 나라에서 정확한 발음이란 어떤 것일까? 당연히 뉴스에서 사용되는 영어이다.(때문에 현지인들의 영어는 영국식이 아니라 미국식이다)그리고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영어이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어짜피 내가 앞으로 같이 생활하면서 살아갈 사람들도 중국인과 인도인들이다. 내가 장사를 하건, 직장에 다니건 간에… 중국인들과 인도인들을 배제한 채 무언가를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짜피 중국식 영어나 인도식 영어 역시 내가 알아들을 수 있어야만 한다. 내가 제주도에서 장사를 한다고 했을 때.. 언제까지 제주도 사람들이 내 앞에서 서울말을 써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이런 신규이민자들 끼리 모여서 하는 수업도 그리 나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정말이지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배움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온 후로 소소한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아내는 이 동네가 하위층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고, 사람들이 불친절하고 난폭하다고 하면서 불안해 한다. 며칠전에는 아내의 성화를 못이겨 결국 현관문 열쇠와 각 창문에 보조키를 달았다. 뭐.. 좋다. 조심하면서 사는 것이 나쁠게 무엇있으랴.. 하지만 문제는, 계속 불안해하는 것은 자기 정신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이다.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갈 때.. 어짜피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조심 조심하면서 한발작씩 위를 보며 움직이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이 때 절대 아래를 내려다 보면 안된다. 마음이 공포에 사로잡히면 몸이 움직이지 못하고, 결국 사다리에 평생 매달린 채 살아야 한다. 자신을 사다리에 고정시키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마음 속의 공포가 되는 셈이다.

우리 동네가 저소득층이 사는 동네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나름대로 조용하고, 큰 소리 한 번 나지 않는 동네이다. 아내가 만난 사람들과는 달리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고 잘 웃는 사람들이다. (그러고 보니 아내와 같이 갈 때도 한번 좋은 사람을 만났었다. 큰 개를 키우는 사람인데, 우리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잘못내렸고, 그 집 개가 딸기를 보자 미친듯이 날 뛰었다. 결국 그 사람은 자기 개를 진정시키느라고 자기가 먼저 타고가야 할 엘리베이터를 우리에게 양보했다.) 아내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항상 상냥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었는데, 최근 너무 불안해 하며 표정이 굳어 있어서 안타깝다.

예전에 학교 뒤 달동네에 자취를 하던 때가 문득 생각이 난다. 지지리도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서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연탄 한장 깨뜨린 것에도 죽을 둥 살 둥 싸워댔고, 매일같이 밤에는 철가방 폭주족들과 아침에는 택시 운전사들이 부릉부릉 대며 소란을 피웠다. 워낙에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라서 조금이라도 시비가 붙으면 금새 큰 싸움이 되고 말았다. 그런 곳에 비하면 지금 사는 이 곳은 과천의 빌라단지에 가깝다. 하루종일 조용하고 한가롭게 개를 끌고 산책을 다니는 사람들만 보인다. (너무 조용해서 미안해 망치질을 못할 정도다) 아내는 양재동에 살 때는, 남향에 숯불갈비 냄새가 안올라오는 집이면 어디든지 OK라고 했었다. 난 거기에 조용하기까지 하다면(아..정말이지 서울 강남에는 뭔 놈의 공사가 그리 많은지..) 금상첨화라고 한 기억이 난다. 하지만.. 막상 그런 곳에 도착하니 또 다른 걱정이 생긴다. 사람이란 참으로 간사한 존재다. 그 양재동에 있을 때에도.. 그렇게 불평은 했었지만, 뚝방길이나 시민의 숲을 산책할 때에는 좋은 동네라고 만족했던 적이 있었으니..

우리는 이제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첫관문을 통과하고 있다. 어렵게 이민비자를 얻어냈고, 이곳에서 살기위한 각종 증명과 보호장치들을 얻어나가고 있다. 또한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하나씩 배워가고 있다. 이전보다 많은 것이 좋아졌지만 또 다른 불편함이 눈에 띄고, 금새 내가 지금 있는 현실에 만족스럽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역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얻거나, 단숨에 안정된 위치로 올라갈 수는 없을 것이다. 어렵고 부끄러웠던 과거를 기억하고.. 주어진 현실에 긍정하면서… 어떤 시인의 말처럼.. 긴 호흡, 강한 걸음으로.. 나아가는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