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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행복했던 기억들 2

글쎄… 난 언제가 행복했을라나…

어릴 적에는 나 역시 뭐.. 그리 행복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 몰려 다니면서 바보짓을 많이 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껏해야 언뜻언뜻 떠오르는, 엄마와 같이 가는 오후의 시장 나들이… 그리고 핫도그 한 개 정도가 가슴에 따뜻하게 떠오른다.

어릴 적에는.. 초등학교 다닐 적 까지는 어머니와 많이 시간을 보냈었던 것 같다. 자전거도 같이 탄 적이 있었던 것도 같고, 배드민턴도 쳤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 배드민턴에 열중하던 어머닌 결혼 10주년 기념 다이아(가루) 반지를 잃어버리고 만다. 그 이후로 우리 집에서 더 이상 배드민턴은 없었다).

혹시 <짱가>를 기억하시는지.. 그리고 <짱가>가 장렬하게 자폭했던 마지막회가 방영했던 날을 기억들 하시는지… 그 날이 어린이 날이었다. <짱가>의 희생에 눈물을 펑펑 쏟던 나를 보고 (유난히 아들네미가 우는 걸 싫어하셨던) 아버진 이렇게 말씀 하셨다. “이 시키.. 어린이날이라서 참는다..” 어쨌던.. <짱가>와 <케산>, <코난> 덕택에 한동안 행복했었다.

우리 때에는 유달리 미국 드라마들을 TV에서 많이 방영해주었다. 뭐.. 대부분 수퍼맨들 이야기이거나, 빨갱이들 때려잡는 이야기들이었지만… 덕분에 행복했었다. (말하지 않았던가? 난 국기하강식에 눈물을 머금고 숙연해지던 모범생이었다) 특히, <전격 Z 작전>, <수퍼특공대>, <오토맨>, <맥가이버>, <에어울프>, <나이트호크> 덕분에 행복했었다.

대학입시 전문기관과 같은 고등학교에서 3년을 보낸 덕택에 학창시절은 그리 재미있었던 적이 없었다. 대학시절에는 여기저기 뛰어다녔던 생각 밖에 나지 않는다. 열정적으로 이리 저리 몰려 다닌 적도 있었고, 열정적으로 영화 보러 다닌 적도 있었다. … 2학년 때, 처음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필름이 거리에서 야외상영을 했었던 적이 생각난다. 비가 쏟아지던 날이어서 야외행사가 취소 직전까지 갔었는데, 무리해서 강행했던 것이 운좋게 호응이 좋았다. 비가 서서히 멎었고 밤거리에 숨죽이며 앉아서 보던 시민들은 마지막엔 벌떡 일어나서 환호해주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대학 시절엔 호프집에서 생맥주 날라가면서 번 돈을 뺵판 사느라고 많이 썼다. 친구놈에게 빌려서 들은LP 에 뻑간 이후로는 매번 청계천 장안레코드에 들락날락 해가면서 빽판을 사모으고.. 듣곤 했다. 그 때도 나름 행복했었던 것 같다.

애니메이션 일을 시작하면서는… 안타깝지만.. 내가 만든 거 가지고 행복했던 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정신 없이 일에 빠져 있던 바로 그 순간순간 만큼은 행복했다. 그리고 남들이 만든 거 보면서는 무척이나 많이 행복했었다. 특히.. 2달 만에 <슬램덩크> 다음 권이 나올 즈음이 되면, 마음이 벌써부터 들떠서 서점을 며칠이고 들락날락 해가면서 행복해했었다. (뭐 요즘은 인터넷으로 일본 현지 연재를 다 받아 볼 수 있지만.. 그 때만 해도 그럴 수 없었다. 이후 31권째 연재분이 되어서는 하이텔 만창동에서 줄거리 연재를 하긴 했다)

머.. 군대에서는 단 한 순간도 행복한 적이 없었고.

아내가 쓴 것처럼, 결혼하고 나서는 같이 여행을 다녔던 날들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세계 여행 다닐 때도 좋았지만, 제주도로 신혼여행 갔을 때가 더 좋았던 것 같다. 물론 더 멋진 경관도 많이 보고… 어느 가을 성구미 포구로 여행 갔을 때도 재미있었다. 가는 귀가 먹은 동네 약방 아저씨한테 콘돔 달라고 버럭버럭 소리 질러야 했던 기억도 난다.

정말이지 맨땅에서 시작한 이민 생활이어서, 뭔가 조금씩 가지는 게 많아 질수록 행복했다. 이삿짐 센터에서 처음 일당을 받았을 때도 좋았고, 처음 월급봉투라는 걸 받았을 때도 좋았다. 물론 가지는 게 많아질수록 스트레스 역시 늘어나고, 어느 순간 가진 것을 모두 버리게 된다면 더 행복해질 테지만..

하지만… 예전처럼 마구마구 가슴이 설레이거나 하는 적이 없다.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더 이상 <슬램덩크>를 기다렸던 때 만큼 설레이지는 않는다. (아니다.. 있었다!! 지난번 좋은 꿈 꾸고 나서 복권을 산 다음 복권 당첨날에는 그만큼 설레였던 것 같다. 써놓고 보니… 넘 서글퍼진다.)

안그래도 아침에 아내와 같이 새해계획에 대해서 얘기했었는데… 올해엔 뭔가 하나 설레이는 일을 가져 보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