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arly Archives: 2008

20세

난 20세 되던 날 뭘 했었나? 겨울이었고 누군가가 축하해주긴 했었던 것 같다. 샴페인도 있었고 꽃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나름 쿨하게 보이려고 말을 줄였었다. 20세 되던 해, 사실 난 겁나는게 없었다. 독단과 독선으로 욕도 많이 먹었었지만 (그보다 500배 쯤 더 많게 술버릇 때문에 지탄을 받았었지만), 일에 대한 성실함을 인정받았었고,나름 재능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정말이지 무서운 것이 없었다. 그냥 영화를 하면서 산다는 것, 감독을 하든지 비디오 가게를 하든지, 평생 영화를 좋아하면서 살면 행복하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렇게 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성급한 결론이었다. 뭐.. 성급했다고 해서 지금와서 크게 후회한다거나 그것 때문에 인생이 꼬였다거나 그런 거는 아니지만, 그 당시 얇팍한 애정과 덜 여문 판단력, 그리고 일천한 인생경험.. 그런 것들이 오히려 내가 내린 성급한 결론에 더욱 더 걍팍한 지지를 더했고, 내가 가질 수 있는 더 많은 선택의 여지를 스스로 저버리게 만들었다. 이제 와서 그 때 내가 그랬으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처럼 싱거운 일이 없지만, 여하튼 나의 20세는 그렇게 덜 여물고 덜 성숙한 나의 결정에 대한 지지로 시작했다. 
소매업에 종사하다보니. 고등학교 갓 졸업하고 사회경력을 시작하는 어린 친구들과 같이 일하는 기회가 많다. 지구 저편에 내가 30년간 살아온 나라에서는 저 나이 때 아이들이 인생의 미래가 걸린 시험에 밤을 새고 있는데, 이곳 아이들은 시간당 만원에서 만 오천원 돈을 받아가며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보통 그런 애들을 보면 기특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그런데, 막상 몇몇 (정말로) 똑똑한 애들이 말도 안되는 손님 불평을 감내하거나, 재고 채우기로 무료한 하루를 보내는 것을 보면, 왜 저리 인생을 낭비하고 있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최근 친하게 지내는 몇몇 애기들이 20세 생일을 맞았다고 해서 생일기념 헤드락을 한번 해주고 나서 20대 계획 세워둔게 뭐 있는지 물어보았다. 나름 꼰대짓을 해보려고 작심을 하고 “시간낭비 말고 부모님들한테 일단 도움을 받아 대학에 가라”라고 잔소리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막상 본인들 한테 대답을 듣고 나니 허탈해 졌다. 
“음… 일단은 부모님 집을 나와서 독립을 하고, 돈을 좀 모은 후에..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겠다”
제길.. 난 왜 그렇게 인생을 성급하게 결정했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새로운 인생관을 가져보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었는데, 결국은 “한번 늦춰지면 인생의 실패자가 된다”라는 경제개발 식의 성급한 가치관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었다. 영화를 사랑했던 만큼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남은 인생을 사랑했다면, 그렇게 성급하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주변에 재수를 모잘라 3수 4수하고 학교 들어와서도 열심히 살고 있던 동급생들이 많았는데, 왜 나는 그렇게 성급했어야 했었을까.
하나 뿐인 조카가 이제 초등학교 입학을 한다. 대부분의 또래 가정에서 그럴 것처럼, 조카네 집에서도 어떤 학교가 조카에게 가장 어울릴지 고민을 한다. 만일 그게, 혹여나 조카가 다른 또래에 비해 뒤쳐질까 걱정하는 거라면, 정말로 진심으로 걱정말라고 위로하고 싶어진다. 지구 반대편에는 1 ~ 2년 정도 뒤쳐지는 건 개의치 않고, 자기 인생을 열심히 즐기는 친구들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자신의 인생을 사랑한다는 것은, 혹은 자식의 인생을 존중한다는 것은, 남들이 어떻게 살든 상관없이 나와 자식의 미래에 애정과 자신을 가지고, 몇 번의 실패든 두려워 하지말고, 그냥 이것 저것 인생을 즐겨 보는 것이었다.